몇 개월 전에 전 우주전쟁을 다룬 가벼운 경장편을 써서 전에 쓴 다른 단편들과 묶어 책으로 낸 적 있습니다. 그래놓고 지금까지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리뷰를 수집하고 있어요. 그렇게 재미있는 일은 아니죠. 일단 민망하잖아요.
모니터링을 하는 동안 확인한 건, 자주 듣는 이야기 하나가 이번에도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불평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곧장 말해 꽤 많은 사람들이 제 이야기의 ‘문화적 인용’을 힘겹게 느끼고 있거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염두에 두고 책을 더듬더듬 다시 읽어 봤는데 (출판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자기 책 다시 읽는 게 얼마나 지겨운 일인지 아세요?) 제가 내린 결론은 이전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느낄 구석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는 거죠.
자기가 쓴 글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냐고요? 하지만 이건 그렇게까지 주관성이 깊이 개입될 문제는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제 책엔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읽은 책들을 나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독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겐 그 짤막한 리스트가 특별히 친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그런 독자들을 일부러 노리고 쓴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고 그 책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고 해도 문맥상 그 책들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나머지도 마찬가지예요. 알면 좋지만 몰라도 내용 따라가고 그 언급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엔 거의 문제가 없어요. 적어도 이번 책에서는요.
이렇게 냉큼 결론을 내리고 혼자 의기양양해 하고 있는데, 다른 뭔가가 제 머리를 휙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건 언젠가 달시 파켓의 한국영화 사이트인 Koreanfilm.org의 게시판에서 읽었던 한국 영화 영어 자막에 대한 불평이었어요. 그 불평에 따르면 한국 영화를 영어 자막으로 번역하는 사람들은 ‘너는 이나영보다 더 예뻐’와 같은 단어를 ‘넌 줄리아 로버츠보다 더 예뻐’로 고쳐 옮겨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걸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무익하기까지 한 짓이죠. 그대로 번역한다고 해도 문맥상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은 이나영이 한국의 예쁜 여자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눈치 챌 수 있습니다. 더 궁금한 사람은 이름을 암기했다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볼 수도 있겠죠. 그럼 그 호기심 있는 관객들에겐 예쁜 얼굴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겁니다.
이 자명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이나영을 줄리아 로버츠로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 멋대로 이것과 앞에 언급한 걸 하나로 묶어 우리가 잘 눈치 채지 못하는 하나의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해보려 시도합니다. 곧장 말해 우린 특정 책이나 영화가 주는 모든 정보가 독자나 관객들의 지식 안에서 ‘닫혀있길’ 바란다는 것이죠.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이 시도가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추려면 이 두 가지에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더 많은 사례를 드는 게 먼저지만 그것까지는 귀찮아서 못하고요.
이 두 가지에 그럴싸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가설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우리나라에서 의미 있는 ‘일반 독자’를 가상할 수 있을 정도로 교양이 표준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작가들은 그 ‘일반 독자’의 지식 또는 교양 수준에 맞추어 어떤 것이 현학의 영역이고 어떤 것이 일반 지식의 영역인지 분명히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두 영역 이외의 지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일까?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일반 교양이라는 것은 존재합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책임 있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하는 것들 말이죠. 그래서 학교라는 것이 존재하는 겁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이 머릿속에 담게 되는 표준 지식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져갑니다. 여러분은 프랑스 철학자들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고 커스텀 오토바이에 푹 빠져 있을 수도 있고 호러 영화광일 수도 있고 액션 피규어 수집가일 수도 있으며 오페라나 발레 애호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평균 교양은 결코 같을 수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평균적인 ‘일반 교양’은 여전히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걸 입시 위주 교육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집단주의 사회의 당연한 현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건 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독자들이나 관객들이 ‘평균적인 교양인’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현실이 중요하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다 전 한 가지 쓸 만한 아이러니를 발견했습니다. ‘일반 교양에 대한 무지의 권리’라는 것이죠. 인간의 두뇌와 기억과 관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존중받는 교양인으로서 사람들이 당연히 ‘일반 교양’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무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죠. 사람들이 그 빈자리를 자신만의 관심사와 지식으로 채우고 그걸 당연히 생각한다면, 우리의 문화 세계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각주가 배고파요! 각주를 달아줘!’라는 항의 메일을 더 안 받아도 되겠지요.
---------------------------
[편집자주]달시 파켓 : 매사추세츠 출신의 미국인. 1999년에 만든 한국 영화 사이트 <코리안필름>(www.koreanfilm.org)으로 유명하다. 현재 영국의 <스크린 인터내셔널>에서 한국통신원 일을 하고 있으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영어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