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DVD를 보고...
여기서 재미있는 건 영화쟁이들의 ‘결정판’에 대한 집착이 영화의 자존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판에서 감독이 자기 비전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최종 버전을 발표하는 건 예상 외로 어려운 일입니다.
드디어 <친절한 금자씨>의 서서히 흑백 되는 버전을 봤습니다. DTS 밖에 사운드가 안 나오는지 몰라서 한동안 애 먹었어요. 그래도 문제 해결하고 보긴 봤습니다. 눈치 채지 못하는 동안 서서히 화면이 채도를 잃어가는 게 꽤 재미있더군요. 나름대로 이야기와 어울린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이 버전은 극장에서도 상영했습니다. 하지만 DVD가 감상의 기회를 넓혀준 건 사실이지요. 요샌 다른 버전을 제공해주는 게 DVD의 또 다른 목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극장 개봉판과 각본판, 확장판 ∙∙∙∙∙∙. 감독판은 감독이 원하는 궁극의 버전을 제공해준다는 순수한 목표라도 있지만 요새 나오는 확장판들은 그런 의도도 없습니다. 가장 유명한 확장판 시리즈인 <반지의 제왕>이 대표적인 예죠. 확장판은 분명 재미있는 버전이지만 절대판은 아닙니다. 그냥 극장판과는 조금 길고 다른 버전일 뿐이지요.
결국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겐 선택할 수 있는 텍스트가 늘어난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반지의 제왕>이라는 소재가 언급될 때, 우린 어느 쪽을 다루어야 할까요? 다른 예술가들이 하나의 작품을 재해석하는 거라면 그러려니 이해할 수 있지만, 작가 자신이 두 개의 버전을 내놓았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요?
여기에 대해서 영화판에서는 수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논란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 난 지금 제 의견은 ‘뭐, 그럴 수도 있지.’ 정도입니다. 컬러 버전 <친절한 금자씨>도 괜찮고 반쯤 흑백 버전 <친절한 금자씨>도 나름대로 멋이 있습니다. 하나만 택할 이유는 없어요. 그렇다고 내용이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영화판 밖을 떠나면 이런 예가 정말 무궁무진 합니다. 조지 버나드 쇼는 어떤가요? 그의 희곡은 종종 무대에 오를 때 삭제될 수 있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희곡 『피그말리온』 이나 『인간과 초인』은 무대 버전보다 더 길고 상세합니다. 그렇다면 버나드 쇼의 책들은 연극으로 그 작품을 먼저 접한 독자들에게 일종의 확장판 역할을 하지요.
종종 작가들은 원래 썼던 결말을 고치거나 다른 결말을 따로 쓰기도 합니다. 크리스티의 소설 『3막의 살인』은 영국판과 미국판이 결말이 다르죠. 범인은 같지만 동기가 다른 겁니다. 하긴 어느 쪽이건 상관없는 플롯이기는 했어요. 톨스토이의 『악마』는 결말이 두 개입니다. 주인공이 자살하는 결말을 썼다가 나중에 주인공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결말을 따로 썼지요. 톨스토이는 후자가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전 전자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괜히 아무런 죄도 없는 엉뚱한 사람을 죽이느니, 혼자 죽는 게 낫지 않겠어요? 상관없습니다. 이 중편을 수록한 책들은 대부분 두 결말 모두를 수록하고 있으니 독자는 언제나 맘에 드는 결말을 선택할 수 있지요. 음악은 어떤가요? 말러의 1번 교향곡에서 꽃의 악장을 삽입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연주자의 취향 문제입니다. 악장이 하나 더 추가되면서 곡은 달라지지만 그렇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본 적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예가 하나 둘이겠어요?
여기서 재미있는 건 영화쟁이들의 ‘결정판’에 대한 집착이 영화의 자존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판에서 감독이 자기 비전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최종 버전을 발표하는 건 예상 외로 어려운 일입니다. 완벽한 최종 편집권이 주어지는 일은 거의 없고 늘 제작자와 검열관들이 가위를 들고 기다리고 있지요. ‘감독판’은 이 세계의 예술가들도 자신의 비전을 가능한 한 완벽한 모양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네도 소설가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을만한 예술가라는 거죠.
요즘 나오는 확장판의 행렬은 영화계 사람들이 이런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일 겁니다. 더 이상 원론적인 의문에 답을 제공해주기 위해 순수성에 목을 맬 필요가 없는 것이죠. 다양한 판본은 그들이 만든 세계를 확장시켜 줄 뿐만 아니라 해석 역시 넓혀줍니다. 아무도 잃는 게 없는 거죠. 물론 진짜 목적은 돈독 오른 자본주의자들이 다양한 판본으로 팬들에게서 돈을 갈취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게 험악하게만 생각할 필요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