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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전쟁> 변호

허버트 조지 웰즈의 『우주전쟁』 은 여전히 가장 훌륭한 SF 중 하나지만 이 소설이 사용한 개념은 순식간에 낡아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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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제가 받아본 오리지널 <우주전쟁> DVD의 부록에 따르면 원작자 허버트 조지 웰즈는 『우주전쟁』 이 제대로 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랬다나 봐요. “내 소설은 현대를 무대로 각색될 수 없어요. 어쩔 수 없이 시대물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건 인기를 끌 리가 없어요.”

그건 맞는 말이었습니다. 허버트 조지 웰즈의 『우주전쟁』 은 여전히 가장 훌륭한 SF 중 하나지만 이 소설이 사용한 개념은 순식간에 낡아버렸습니다. 지구를 침공한 화성인들은 지력이 있는 문명인보다는 짐승처럼 행동하고 그들이 타고 온 우주선은 19세기 지구인들이 군대에서 만든 과장된 무기 같으며 결정적으로 그들은 지구의 박테리아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한 시대물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요? 전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런 각색을 시도한 저예산 영화가 하나 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가장 유명한 세 편의 각색물 (오슨 웰즈의 라디오극, 조지 팔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는 모두 ‘현대’를 무대로 택하고 있습니다. 그게 더 원작에 충실한 접근법이기 때문이죠. 『우주전쟁』 이 그렇게 강렬한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남길 수 있었던 건, 그 소설이 독자들의 살고 있는 바로 그 세계의 파괴를 다루었기 때문이니까요. 영화를 새로 만든다면 그들이 사는 그 시대의 그 세상을 무대로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당연히 이 작품들은 두 개의 점 사이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신기하고 복고적인 기계들로 가득 찬 19세기냐 아니면 건조하고 살벌한 ‘현재’냐의 문제죠.

세 작품들은 모두 중도의 해결책을 택했습니다. 웰즈와 팔 버전에서는 화성인들이 나오지만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침략 외계인들이 온 행성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세 편 모두 외계인들은 박테리아 때문에 죽습니다. 팔 버전에는 트라이포드가 나오지 않지만 웰즈와 스필버그 버전에는 나옵니다.

이 해결책들 중 완벽한 건 없습니다. 모두 그냥 제작 시기 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걸 선택한 것뿐이데 그게 다 절충적입니다. 조지 팔이 트라이포드를 쓰지 않은 건 제작비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스필버그는 그럴 돈이 있었고요. 물론 그 괴물의 존재는 지금의 관객들에게 무척이나 비논리적으로 보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박테리아 때문에 외계 침략자들이 모두 죽는 안티 클라이막스도 바꾸지 않았는걸요. 하긴 그걸 바꾼다면 <우주전쟁> 영화가 아니겠지요. 업그레이드시킨다고 그걸 컴퓨터 바이러스로 만들어도 나아질 건 업습니다. 이미 그런 트릭을 쓴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영화가 나왔고 그 영화의 질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 중 과학적 상상력과 ‘현대적인’ 스토리가 완벽하게 결합된 작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근사한 작품임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청취자나 관객들은 모두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하지요.

이 딜레마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만들지 않으면 되는 것이죠. 지나치게 손쉬운 답변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린 SF와 과학의 연결지점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허버트 조지 웰즈는 『우주전쟁』 을 과학자의 관점에서 접근했고 그의 추론과 상상은 당시엔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되고 우리가 기술의 발전 방향과 화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웰즈의 비전은 조금씩 우리 시대에서 벗어났습니다.

SF는 여기서 재미있는 저장고 역할을 합니다. 퇴물이 되고 버려지는 과학적 아이디어와 이론들은 옛 시대의 SF에 기생하며 여전히 생생한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꼭 그 SF가 우리가 아는 SF 장르물이 아니어도 됩니다. 단테의 『신곡』은 중세의 SF였습니다. 그는 그가 당연히 진리라고 믿었던 중세 유럽인의 우주를 그의 시 『신곡』에 담았던 것이죠. 현대 독자들 중 단테의 우주가 실제라고 믿는 사람은 없지만 그가 그리는 천국과 연옥과 지옥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에게 강한 영향을 끼칩니다.

결국 과학이란 인간의 발명품입니다. 조금 더 과장되게 정의를 넓힌다면 인문학적인 창조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차가운 방정식의 다발이라고 생각하는 이 시스템은 소설이나 시처럼 우리의 갈망과 희망과 증오와 분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게 도가 지나치면 지금 우리나라가 홍역처럼 겪고 있는 특정 사회 이슈처럼 변질되어 버리지만요. 여기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선 참견하지 말고 입이나 닥치고 있는 것’인 것 같으니 말이죠.

적어도 옛 시대의 SF를 읽는 건 이보다 생산적입니다. 낡은 아이디어들과 이론들은 가치있는 옛 소설들 속에서 그 세계를 구성하는 시와 신화가 됩니다. 우린 그것들이 사실이라고 믿지 않으면서도 그것의 아름다움을 예술작품 감상하듯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옛날 책들의 독서는 과학 교육에도 훌륭한 교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런 책들은 독자들에게 과학이라고 딱지가 붙은 것들이 모두 진리가 아니고 참과 거짓이 그렇게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걸 알려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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