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아 나오는 <애인> 시사회를 막 보고 왔습니다. 좋은 영화였냐고요? 아뇨.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애인> 은 결코 잘 만든 영화도 아니고 좋은 영화도 아니며 재미있는 영화도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전 극장 안에서 맨 정신으로 버티느라 무척 힘겨웠습니다. 물론 재미란 비교적 주관적이니 제 말을 꼭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인> 에서 가장 큰 계산착오는 ‘쿨’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쿨’함이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지 의식적으로 파면 영 어색해집니다. 의식적으로 판다고 해도 그 ‘쿨’함에 대한 감각은 처음부터 갖추고 있어야 한단 말이죠. 예를 들어 <와니와 준하>와 <사랑니>는 작정하고 쿨해지려고 한 영화지만 아마 그 영화의 쿨함은 혼전 동거와 폴리가미(polygamy, 복혼)에 대해 쿨한 척 하는 게 더 이상 쿨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도 꽤 오래 버틸 겁니다. 두 영화 모두 현실과 ‘쿨함’ 사이의 어느 점에서 놀아야 유치하지 않게 보이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유감스럽게도 <애인> 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쿨한 도회풍의 연애 영화를 만들고 싶긴 한데, 자기네들이 이런 걸 생각하고 실연하고 있다는 게 너무 대견해 하는 듯한 티가 역력하거든요. 그 때문에 영화는 낡은 나들이옷을 입고 서울 구경 나온 두메 아가씨처럼 촌스럽게 보입니다. 뭐, 그런 식의 접근법이 나름대로 귀여울 수도 있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러려면 세월이 조금 더 흘러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애인> 은 상대적으로 여전히 ‘쿨한’ 영화입니다. 여기서 이 영화와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는 건 매스컴이죠.

한 장면 들겠습니다. <애인> 에서 ‘와! 우린 정말 쿨해!’라고 외치는 부분 중 하나가 두 이름 없는 주인공들의 첫 번째 정사 장면 끝 부분입니다. 남자 주인공이 질외 사정을 하거든요. 하긴 처음 만났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몸이 뜨거워져 붙었으니 콘돔을 가져왔을 리 만무합니다. 그렇다고 그냥 사정을 해버리는 건 위험 부담이 있죠. 그 결과 그 사람이 택한 것이 질외 사정입니다. 그건 그렇게까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논리적인 해결책입니다. 집에 가져오지 않은 보도 자료에서도 그 장면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이 장면을 매스컴에서는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요? 제목을 들어보시겠어요? “성현아의 ‘애인’, 정액 노출 파격영상 쇼킹!”

모르겠군요. 전 남녀 성기가 노출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 통념상 터부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깨져서는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는 걸 이해는 하고 있죠. 그런데 정액 자체가 등장하는 것도 심각한 터부였나요? 언제부터요? 왜 터부죠? 물론 애들에게 보여줄 구경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성년자 관람불가이고 ‘벗는 영화’를 작정한 작품인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터부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터부는 ‘정액노출 파격 영상 쇼킹!’이라는 제목을 달기 위해 그들이 급조한 것 같습니다. 터부가 있어야 느낌표를 찍고 별 게 아닌 것에도 대단히 야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죠. 이 경우 황색 언론은 작정하고 자기네들의 촌스러움을 과장하게 됩니다. 그래야 밥벌이의 영역이 넓어지기 때문이지요. 그 때문에 섹스를 파는 황색 언론과 순결주의를 내세우는 보수주의자들은 한 배를 타고 있습니다. 사실 둘은 같은 사람들일 수도 있어요.

전 시사회 뒤에 있었던 기자 간담회에는 가지 않았지만 일행이 그 중 일부를 찍은 동영상과 녹음 파일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주연 배우인 성현아도 이 점을 굉장히 언짢게 생각하는 모양인지, 그에 대해 꽤 길게 이야기하더군요. 나름대로 좋은 각본이라고 생각해서 전문가답게 영화 줄거리에 맞는 장면을 찍었는데, 그걸 침소봉대해서 유치찬란하게 굴고 있으니 당사자가 기분 좋을 리가 없겠죠. 사전 준비 없이 즉석으로 한 말이라 그렇게까지 정리가 된 답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의미와 감정은 충분히 통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성현아는 무척 쿨해보였어요. 출연한 영화는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