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기적, 팝업북
부제바로 그렇기 때문에 로버트 사부다의 팝업북들은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책일 수도 있습니다. “팝업북은 책이라기보다는 장난감이다”라고 무시하는 건 어리석습니다. 사부다의 책들이 의미하는 건 바로 책이라는 것도 장난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제가 최근에 읽은 책은 로버트 사부다가 ‘만든’ 두 편의 팝업북입니다. 『오즈의 마법사』와 『공룡의 비밀』요. (케이트 그리너웨이상을 수상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국내판은 절판되었더군요) ‘썼다’라고 쓰지 않고 ‘만들다’라고 했는데, 사부다의 경우 ‘쓴다’는 표현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의 책에서 글로 쓰인 텍스트는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2차원 상태에서 갑자기 3차원의 구조물로 휙 부풀어 오르는 책 위의 그림들입니다. 텍스트는 이런 작은 기적을 위한 핑계에 불과해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팝업북의 개념은 굉장히 혁명적입니다.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그 혁명성이 쉽게 인식되지 않을 뿐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책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책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진 텍스트들을 담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책은 1차원적입니다. 글자만으로 구성된 모든 책들은 글이 쓰인 한 줄의 테이프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모스 부호를 사용한다면 점과 짧은 선으로 구성된 진짜 1차원적인 구조물로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요.
삽화가 등장하면서 책은 2차원적이 됩니다. 1차원의 매체로 4차원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더듬거리는 시도가 2차원의 그림들에 의해 도움을 받죠. 많은 어른들은 그림이 들어간 책들을 유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만화책처럼 처음부터 그림이 주가 된 책을 읽는 좋아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진지한 독서’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죠. 슬슬 계급이 형성됩니다. 1차원의 문장들을 이용해 4차원의 세계를 재구성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유치하고 능력이 부족합니다.
팝업북은 거기에 차원을 두 개 더합니다. 우선 책장을 펼치면 그림이 3차원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도로시의 오두막집이 책장 위에서 마술처럼 갑자기 건설되고 오즈의 기구가 눈 앞에서 부풀어 오르며 떠오릅니다. 티라노 사우르스가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독자들을 공격하고 공룡 화석이 솟아오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시간의 차원을 담고 있습니다. 책장을 펼치는 것만으로 우리는 동적인 드라마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 모든 기적들은 그 자체의 쾌락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당연히 최근까지 어른들은 즐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어린애들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시기를 지나치면 1차원적인 문장의 띠가 기다리는 어른들의 회색 세계로 진입해야 했지요. 물론 그 회색세계는 별 재미가 없기 때문에 어른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로버트 사부다의 팝업북들은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책일 수도 있습니다. “팝업북은 책이라기보다는 장난감이다”라고 무시하는 건 어리석습니다. 사부다의 책들이 의미하는 건 바로 책이라는 것도 장난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진정한 애서가들은 책들이 단순한 텍스트의 뭉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때엔 텍스트보다 중요한 것은 책의 모양이나 그림 또는 먼지투성이 종이가 풍기는 고유의 향기일 수도 있습니다. 책에서 중요한 것이 텍스트뿐이라면 서재는 심심하고 따분할 것입니다. 진정한 애서가들은 언제나 책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냈습니다. 사부다는 거기에서 조금만 더 나아간 것뿐이죠.
최근 해외에선 성인들을 위한 팝업북들이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몇몇 책들은 더 이상 어린 독자들을 타겟으로 내세우고 있지도 않다고 하더군요. 당연한 순서입니다. 유익하기도 하고요. 모든 매체들은 자신의 가능성의 극한을 탐색할 자격이 있습니다. 책들도 예외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