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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 시리즈가 우리에게 남긴 것

<논스톱> 시리즈의 공식적인 사망이 선고되었습니다. <논스톱 5>가 끝난 뒤 시작되는 일일 시트콤인 <레인보우 로망스>에는 <논스톱 6>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지 않지요. MBC는 지난 6년 동안 7시 시간대를 지배했던 <논스톱> 프랜차이즈를 포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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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 시리즈의 공식적인 사망이 선고되었습니다. <논스톱 5>가 끝난 뒤 시작되는 일일 시트콤인 <레인보우 로망스>에는 <논스톱 6>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지 않지요. MBC는 지난 6년 동안 7시 시간대를 지배했던 <논스톱> 프랜차이즈를 포기한 것입니다. 이는 당연하지만 위험스러운 모험입니다. <논스톱> 시리즈의 약발이 닳았다는 소리는 5부 초기에서부터 들려온 소리지만 그래도 이 상표를 포기한다는 건 맥도널드에서 빅맥을 포기하고 샐러드를 내놓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어요.

이 모험은 성공할까요? 글쎄요. 아직 뭐라고 하기엔 이릅니다. 제가 본 <레인보우 로망스>의 첫 회는 시시했지만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모르는 시리즈의 첫 회라는 걸 고려해보면 그 정도의 질은 당연하죠. 일단 <레인보우 로망스>에는 어느 정도 시간을 주고 고인이 된 <논스톱>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합시다.

일단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논스톱>의 성취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논스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일일 시트콤을 만드는 게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쉽게 잊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종영된 <논스톱 5>만 해도 256회나 되는 에피소드를 생산했는데, 이 정도면 웬만한 미국 텔레비전 시트콤의 10년 분량입니다. 이 사람들은 취향이 뻔한 십대 아이들의 비위를 맞춘다는 좁은 목표 속에서 연기 경험도 별로 없고 가능성도 확신할 수 없는 신인들을 데리고 아무 이야기나 무작정 찍어대면서도 지난 6년 동안 천 편이 훨씬 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분량은 다시 미국식으로 계산하면 한 사람의 수명과 맞먹습니다.

네, 이들은 다들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뻔한 짝짓기 게임으로 끝날 수밖에 없고요. 그러나 이걸 가지고 제작진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설정의 생산성엔 한계가 있는 법이고 원래 이런 시리즈의 성격을 규정하는 건 제작진이 아니라 그걸 보는 시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 이 형편없는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일을 해낸 사람들에게 일단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사실은 <논스톱>이 기본적으로 보수성으로 회귀하는 시리즈였고 바로 그것이 이 시리즈의 성공 요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사용한 ‘보수성’이란 단어에는 정치적 의미가 없습니다. 있을 수도 없고요. <논스톱>은 그만큼이나 비정치적인 시리즈였으니까요. 제가 하려는 말은 이런 것입니다. <논스톱>이 7시 시간대를 평정하기 전엔 공중파 3사에서는 비슷한 시간대에 각자만의 시트콤을 풀었습니다. MBC 역시 비슷한 시리즈들을 그 시간대에 풀면서 고만고만한 실험들을 해왔고요. 그러다 <논스톱>이 등장하자 모든 실험들은 멈추었고 7시 시간대의 시트콤들은 모두 <논스톱> 하나로 통일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만큼 <논스톱>이 셌던 거죠. 하지만 왜? 이 시리즈엔 뭔가 새로운 것이 있었던 걸까요? 아뇨, 정반대였습니다. <논스톱>의 성공 원인은 신선함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성공요인은 고도로 세련된 진부함이었습니다. <논스톱>은 7시 무렵에 텔레비전 앞에 달라붙을 수 있는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것들만 골라 보여주었습니다. <논스톱>의 등장은 7시 시간대 시트콤들에 대한 일종의 반혁명이었습니다.

안전함만을 추구하는 <논스톱>의 성격은 이 시리즈의 장수 비결이기도 했습니다. <논스톱>의 고정 시청자들은 이 시리즈의 스토리 전개에 목을 매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저도 포함됩니다만) <논스톱>은 일종의 배경음악이며 환경이었습니다. 이런 팬들에게 <논스톱>의 가장 큰 의무는 ‘거기 그대로 있어라’였습니다.

그리고 그건 정말로 먹혔습니다. 사람들이 약발이 닳았다고 생각하는 <논스톱 5>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논스톱 5>의 질이 다른 시리즈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도 조금 웃깁니다. 요새 <뉴 논스톱>과 <논스톱 3>의 재방송을 볼 수 있어서 하는 말인데, 이들 시리즈엔 그렇게 대단한 질적 차이는 없습니다. ‘연예 인력 배출’에도 특별히 실적이 딸리는 건 아니고요. 구혜선, 홍수아, 한효주, 강경준, 박진우는 <논스톱 5> 이후에도 모두 열심히 뛰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레인보우 로망스>가 이런 <논스톱>의 위치와 경험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입니다. 일단 <레인보우 로망스>는 하이브리드의 위치를 취했습니다. 여전히 <논스톱>식 학교 코미디이면서 부모 없이 자라는 삼남매를 주인공으로 한 보다 진지한 가족 드라마의 형태도 취하겠다는 거죠.

아까 시간을 주고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솔직히 이런 식의 태도를 유지하다가는 ‘현실적인’ 설정은 무시되고 그냥 <논스톱> 식 코미디에 안주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진짜 <논스톱>도 아닌 아주 어정쩡한 흐름을 타 버릴 가능성이 크죠. <논스톱>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완벽한 현실 도피적인 오락에 있었습니다. 이런 식의 태도로는 결코 그 순수성에 도달하지 못해요.

제가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은 가족드라마와 현실 문제를 적극적인 코미디 도구로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무게 있는 주제는 그냥 심각하게 다루어야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런 주제일수록 예의무시하고 날카로운 유머로 공격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작용과 항의가 심해도요. 만약 <레인보우 로망스>가 심각함을 위장한 시시한 감상주의에서 벗어나 진짜 무게 있는 유머의 펀치를 날릴 수 있다면 <논스톱>의 유산은 그 파괴와 도전 속에서 가치 있는 어떤 것으로 남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날이 과연 오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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