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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주는 교훈

‘우린 그냥 인간만 신경 쓰면 돼!’라고 외치면 모든 문제들은 해결됩니다. 적어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방정식들은 훨씬 해결하기 쉬워지죠. 하지만 문제는 결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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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워스 이인조 Tamworth Two에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이들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돼지들입니다. 1998년, 5개월된 새끼 돼지들이었던 이들은 도살장행 트럭에 옮겨 타는 동안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돼지의 주인은 이들을 찾으려 했지만 그동안 그들의 명성은 점점 커져만 갔어요. 사람들은 그들에게 부치와 선댄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그들을 응원했습니다. 마침내 돼지들은 잡혔지만 주인은 매스컴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차마 그들을 막 다룰 수 없었어요. 결국 그들은 수명이 남아 있는 동안 도살장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았고 지금은 켄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유는 쟁취하는 자들의 것이다!’라는 멋진 교훈과 함께 여러 권의 그림책, 기념품, 노래,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BBC 텔레비전 영화를 남겼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는 이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그래도 한 번쯤 비교해볼만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먹이를 찾으러 서울 시내로 들어온 멧돼지 한 마리가 시민 두 명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히고 도주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지요. 맨 처음엔 생포를 시도했지만 저항이 심해서 결국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곧 이 멧돼지는 박제로 만들어질 예정이라는군요.

이 둘의 이야기를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성격이 다르니까요. 부치와 선댄스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 했습니다. 그들은 5개월짜리 아기 돼지들이었어요. 귀여웠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능력도 없었지요. 하지만 서울 시내에 뛰어든 멧돼지는 위험한 야수였습니다. 경찰에겐 멧돼지보다 시민들의 안전이 더 중요하지요. 물론 아무도 안 다치고 멧돼지도 자연으로 돌아갔다면 모두 좋았겠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좋게만 풀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이 두 경우가 재미있는 건, 동물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관점이 얼마나 자의적인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이 다른 대접을 받은 데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위에 제가 설명했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자의적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보다 원초적인 이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일단 인간이라는 동물은 자연세계에서 가장 힘이 셉니다. 육체적으로 힘이 센 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이 큰 시스템의 창조자이고 일부분인 거죠. 그 결과 우린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마땅히 기본권을 보장받고 일정한 경제적 수준을 유지하며 살다가 자연사할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권리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요? 동물들도 대상이 된다면 그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믿은 권리는 과연 자연스러운 것입니까? 도대체 자연사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동물들이 얼마나 된답니까?

‘우린 그냥 인간만 신경 쓰면 돼!’라고 외치면 모든 문제들은 해결됩니다. 적어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방정식들은 훨씬 해결하기 쉬워지죠. 하지만 문제는 결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살생이라는 문제에 대해 수천 년 동안 고민해왔고 수많은 종교들이 그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종교의 담당이었던 것이 최근엔 자연보호론자와 동물권리운동가들에게 넘어갔고요. 이들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려운 것이, 이제는 우리의 생명줄을 잡고 있는 환경 문제와 이들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 문제를 잊는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남죠. 전 고양이 새끼를 불태워 죽이거나 길가는 고양이들에게 못총을 쏘는 사람들과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러고 싶지 않을 걸요. 우린 살생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동정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적어도 그런 게 있는 사회에서 우린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여기엔 분명한 해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좋은 뉴스입니다. 해결할 문제가 없는 세계에서는 독재와 우둔함만이 지배합니다. 결코 풀리지 않을 법한 이 문제들을 조금씩 곱씹는 동안 우리 정신의 영역은 확장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겠지만(전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은 모두에게 더 나아질 수 있을 거고요. 그러기 위해서 우린 딱 하나만 거부하면 됩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태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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