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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출>은 너무 쿨하다

허진호의 방식은 예전과 같았습니다. 불륜이라는 통속적인 소재를 차분하고 예쁜 스타일로 쿨하게 다룬 거죠. 나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전 이전 영화들에서 느꼈던 감흥을 <외출>에서 느끼지 못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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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건 세련됨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1990년대까지 한국 관객들이 자국의 영화 작품들에 만족하지 못했던 건 작품성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당시 한국 영화들은 촌스러웠습니다.

촌스러움은 상대적입니다. 몇 개월 전, 전 여성 영화제에서 김수용 감독의 <어느 여배우의 고백>을 보았습니다. 그 영화는 솔직히 무지 촌스러웠습니다. 요새 영화감독이라면 놀림 당할까봐 외면하고 회피할 모든 과장된 멜로드라마와 우스꽝스러운 설정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지요. 하지만 김수용 감독 자신의 회상에 따르면, 당시 업계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지나치게 쿨해서 관객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예술영화’로 비추어졌던 모양입니다. 당시엔 <어느 여배우의 고백>이 관객들보다 앞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전 80년대에 십대 시절을 보냈는데요, 단 한 번도 주변의 문화적 환경에 만족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 영화들은 미칠 것처럼 촌스러웠고, 할리우드도 그렇게까지 낫지 않았습니다. 특히 <스크린>이나 <로드쇼>가 전파했던 그네들의 ‘십대’ 문화는요. 전 정말 그 때 두 손 모아 제발 이 시기가 지나가 달라고 빌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저 뿐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느 순간 관객들의 기대치가 만들어지는 상품의 세련된 정도를 넘어선 것입니다. 물론 80년대가 그렇게까지 세련된 시기가 아니었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90년대 말 이후 한국 영화들이 관객들을 만족시켰던 건 기본적으로 그들이 관객들이 새로 쌓은 취향에 맞는 세련된 물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거의 홀로코스트 수준으로 중견 감독들을 쓸어 내버린 지금의 영화판을 설명할 수는 없지요.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때깔과 쿨한 스타일입니다. 그 감각을 익히지 못하면 당연히 퇴출될 수밖에 없지요.

이건 당연한 발전입니다. 냉소적으로 볼 일도 아니고요. 내용과 스타일은 쉽게 분리될 수 없지요. 구닥다리 스타일로는 구닥다리 스토리밖에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성공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변두리의 낡은 사진관을 무대로 한 구닥다리 신파 멜로드라마였던 그의 영화는 설정과는 달리 굉장히 쿨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냥 신파로 남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런 쿨한 접근법이었습니다. 쓸데없이 감정 과잉으로 날려버릴 수 있었던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이 살아날 수 있게 도왔던 일등공신도 바로 그런 쿨함이었지요. 그건 그의 다음 작품인 <봄날은 간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쿨함은 허진호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무기였습니다.

며칠 전에 허진호의 세 번째 장편인 <외출>을 보았습니다. 허진호의 방식은 예전과 같았습니다. 불륜이라는 통속적인 소재를 차분하고 예쁜 스타일로 쿨하게 다룬 거죠. 나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전 이전 영화들에서 느꼈던 감흥을 <외출>에서 느끼지 못했던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순간 그 쿨함이 내용을 넘어서버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허진호는 이전 영화에서 그런 쿨함을 깨트리는 데에도 능했습니다. 예를 들어 <봄날은 간다>는 쿨한 영화였지만 아직도 사랑의 불변성을 믿으며 옛 여자친구에게 매달리는 유지태의 캐릭터는 결코 쿨하다고 할 수 없었죠. 허진호의 이전 영화들이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던 건 이 두 요소들이 적당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충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출>에는 그런 긴장감이 없습니다. 종종 터져 나오는 인간적 감정들도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게 관리되어 있어요. 보긴 좋습니다. 예쁘고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영화의 손예진과 배용준은 지금까지 제가 본 사람들 중 가장 고스톱을 예쁘고 깔끔하게 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예쁘게 구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죠.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깔끔할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린 애플 컴퓨터가 아니에요. 어느 순간부터 이 멜로드라마가 설정의 아이러니를 살릴 수 없게 된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들의 관계가 너무 깔끔해서 불륜의 죄책감을 느낄 수가 없으니까요. 오히려 이런 이야기는 김수용이 잘 만들었던 60년대식 멜로드라마 스타일이 더 잘 맞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아직 한국 영화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웰메이드 영화’의 종착역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허진호의 경우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 것 같아요. 예쁜 외양이 내용을 누르고 주제를 희석하는 단계 말이죠. 전 이게 계속 되는 내리막길이 아니길 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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