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캠프] 신체 노출사고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별 재미도 없는 해프닝을 공중파에서 벌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제 게시판에 도배되며 더 가치 있는 토론과 이슈와 잡담과 넋두리를 몰아내는 건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저번에 일어난 [음악캠프] 노출사고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할 의무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내키는 일은 아니고 사실 꽤 귀찮지만요.
우선 노출의 허용 가능성을 검토해봅시다. 한국 사회에서 성인 남성이 전신 누드를 합법적으로 선보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단지 정도와 방법, 장소의 문제죠.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영화입니다. 성인 대상의 영화라면 전신 노출이 있는 영화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얼마 전에 개봉된 [몽상가들]이죠. 이전엔 검열로 잘려나갔을 영화들도 DVD를 통해 무삭제로 재출시 되고 있는데, [여왕 마고]가 그런 영화들 중 하나죠. 영화제라면 약간 더 과격한 장면들도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영화제나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는 [섹스와 루시아]의 경우는 클로즈업된 남자 성기가 발기되는 장면까지 담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별 문제 없습니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미성년자가 관람 불가능하니까요. 이런 영화를 보고 불편함을 호소하는 관객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에서 그 정도 노출은 기대하고 있어야죠. 문제될 건 없습니다. 몰래 훔쳐다본 미성년자들은? 걔들이야 알고 봤겠죠.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미성년자 관객들 앞에서 이런 식의 노출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있는 걸까? 네,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방한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는 폴 라이트풋의 경쾌한 무용작품인 [Sh-Boom]을 공연했습니다. 그 중엔 남자 무용수가 나체로 춤을 추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죠. 어두운 조명 때문에 멀리서는 구분이 조금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전신 노출인 건 분명했습니다. 그 공연이 성인전용으로 구분된 것도 아니었고요. 제가 기억하기에도 제 주변엔 교복입고 온 예원 학생들이 부글거렸습니다. 충격을 받았을까요? 아뇨, 그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엄청난 갈채를 받았습니다. 정말 멋진 공연이었고 진짜 재미있었어요. 그걸 비난하는 기사도 본 적 없습니다. 한국에서 전신 누드로 공연한 무용단이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뿐도 아니었고요. 조금 뒤에 공연된 프렐조카주 발레단의 [봄의 제전]에서는 여자 무용수가 훤한 조명 속에서 나체로 뛰어다녔지요.
그럼 왜 이 사람들은 노출이 허용되는 걸까? 고급예술이어서? 어느 정도 맞습니다. 고급 예술이어서 모든 게 허용된다는 원칙론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사회 통념의 문제지요. 고급예술로 인정받으면 운신의 폭이 넓어집니다. 관객들 역시 관대해지고요. 역사 초기부터 그랬어요. 뻔뻔스러운 포르노 소재로 걸작들을 그려냈던 베네치아 화파 화가들을 생각해보세요.
그러나 더 중요한 건 태도의 문제입니다. 관객들은 [Sh-Boom]의 남성 댄서들에게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겐 오히려 그 댄서들은 못 보일 부분까지 관객들의 시선에 공개된,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들이었지요. 그게 그 댄서의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야무지게 옷을 차려 입은 여자 무용수들과 노출된 남성 무용수의 대조요. 노출이 연약함, 솔직함, 자연스러움을 표출하는 도구로 사용될 경우, 숙련된 관객들은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노출에는 저항과 반항, 공격의 의미도 있습니다. 특히 남성누드는요. 그래서 종종 시위에서 노출이 무기로 선택되는 것이죠. 이 역시 꼭 거부당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보는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예술가나 시위자들이 늘 관객들이 원하는 것만 주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원칙은 존재하지 않죠. 그러나 여기엔 한 가지 단서가 따릅니다.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본론으로 들어가죠. 이번 노출 사건에는 세 가지 정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공중파 방송에서 아랫도릴 벗고 뛰는 건 실정법 위반입니다. 실정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시스템에 속해있다면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죠. 그건 그 쪽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뭐, 전 당사자들도 그 정도는 계산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법률 위반을 떠나, 이번 행동엔 상당한 수준의 폭력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벗고 뛰는 외국 밴드들의 예를 들 경우가 아닙니다. 그런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극에 준비가 되어 있지요. 그렇다면 그런 식의 공연은 이미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동의를 얻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번 음악캠프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지요. 공중파로 생중계되고 있었고 그에 대비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전 자주 등장하는 바바리맨 비유를 조금 더 다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바바리맨의 불쾌함이 노출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 물건이 뭐가 그렇게 엄청나다고 볼 때마다 그렇게 대단한 충격이 될까요? 바바리맨들의 불쾌함은 노출 자체가 아니라 그 노출의 의미입니다. “이걸 보여줌으로서 너를 모욕하고 엿 먹이겠어”라는 의미 말이죠. 벗은 몸 자체야 쉽게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모욕적인 폭력으로 남죠. 이들의 행위가 전국민을 상대로 한 성폭력으로 인식되는 것도 이치가 맞습니다. 분명 이 친구들은 누군가를 ‘엿먹이러’ 나왔을테니 말이죠. 그게 방송국이건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건. 단지 이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 행위의 의미는 더 컸습니다.
세 번째는, 이 해프닝이 의미있거나 재미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전 여기서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저항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런 신선한 맛이 없어요. 오히려 제가 본 건 별 생각없이 자신이 속해 있는 소집단의 몇 줄짜리 가치관에 굴종하는 둔한 젊은이들뿐입니다. 해프닝 자체도 재미없습니다. 자기네들을 21세기의 시드 비셔스 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에 어울리는 태도라도 보여주어야죠. 이 친구들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냥 흐릿하기만 합니다. 결국 별 성과도 없이 쓸데없는 음모론이나 만들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해나 끼치고 있는 거죠. 민폐가 큽니다.
전 이들의 동기나 목적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린 모두 각자가 속해 있는 작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그네들도 그럴 권리가 있죠. 하지만 별 재미도 없는 해프닝을 공중파에서 벌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제 게시판에 도배되며 더 가치 있는 토론과 이슈와 잡담과 넋두리를 몰아내는 건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부디 자기네들에게 어울리는 망각 속으로 빨리 사라져 버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