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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제가 기다리는 건 <친절한 금자씨>의 해외 비평입니다.

요새 제가 기다리는 건 <친절한 금자씨>의 해외 비평입니다. 국내 비평의 방향은 뻔합니다. <올드보이>때보다 미적지근할 것이고 심심한 결말에 실망했다는 식이겠죠. 사실 저도 그렇게 썼습니다. 하지만 전 이와는 다른 관점으로 이 영화를 바라볼 비평가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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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들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우린 흥미롭지만 굉장히 당연한 현상과 접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영화에 대한 국내 비평과 해외 비평의 간극이 상당히 크다는 거죠.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장화, 홍련>과 같은 영화들은 국내에서는 미적지근한 평을 받았지만 해외에서는 엄청난 호응을 얻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장화, 홍련>의 경우는 오히려 외국에서 재평가되었다고도 할 수 있죠. <올드보이>와 같은 영화는 엉겁결에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가 되어 국내에서는 거의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격찬을 받았지만, 외국 비평계에서는 보다 찬반이 엇갈렸습니다. 반대로 개봉될 때마다 국내 관객들의 무시와 날카로운 비평의 대상이 되었던 김기덕의 영화는 해외 아트하우스 영화팬들에게 비교적 잘 팔리는 편이고 비평가들도 호의적입니다. 홍상수의 영화들처럼 영어권에서는 무덤덤한 평을 받지만 프랑스어권에서는 열광적인 팬들을 만들어내는 작품들도 있지요.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엽기적인 그녀>의 경우, 한국 관객들은 그 영화에서 오래 전부터 아주 익숙해진 지겨운 틀을 봅니다. 그 영화를 즐길 수는 있지만, 그 진부함이 무시될 수 있는 건 아니죠. 하지만 문화적 틀이 제거된 백지 상태에서 <엽기적인 그녀>를 보는 외국 관객들은 고약하고 폭력적인 코미디와 지고지순 러브 스토리가 멋대로 연결된 아주 신선한 영화를 보게 됩니다. 영화는 그대로지만 전혀 새로운 비평과 관점이 추가되는 거죠.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정확한 걸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엽기적인 그녀>를 진부할 틀에 박힌 따분한 영화로 보는 건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엽기적인 그녀>에서 무언가 새로운 걸 보고 읽는 외국 관객의 경험을 무시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죠. 그 둘의 상호작용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오히려 영화 자체보다 더 큰 의미가 있죠.

<장화, 홍련>이나 <올드보이>의 경우는 해외의 비평이 오히려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둘 다 해외에서 양극을 오가는 평을 받았지만 그게 오히려 정상적이었죠. <장화, 홍련>은 숙련된 장르 애호가들의 보다 성의 있는 분석을 받았고, <올드보이>의 경우는 ‘국민적 행사’에 관심이 없는 비평가들의 냉정한 칼날을 맞았습니다. 게으른 몇몇 국내 저널리스트들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올드보이>의 부정적인 평을 읽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 극단적인 평의 분포도는 오히려 박찬욱 영화에 더 잘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감독 자신도 그런 반응을 기대했을 거고요. 사방에 피와 절단된 신체부분과 금기들이 흘러넘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런 반응이 없으면 재미가 없죠.

종종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대사들이 외국어로 넘어가면서 구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 박철수의 <녹색의자>의 어색한 대사들을 맨 정신으로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백보 양보해서 감독과 작가가 일종의 소격효과를 노렸다고 인정해도요. 하지만 그게 한국어를 모르거나 뉘앙스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관객들에게 영어 자막을 통해 전달되었다면? 아마 국내 비평과 해외 비평의 차이를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한국 관객들과 외국 관객들은 전혀 다른 두 개의 작품을 감상하게 되지요. 이런 경우 솔직히 전 후자들이 조금 부럽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더 나은 작품을 보는 게 낫죠. 그게 꼭 감독의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요. 아니, 오히려 감독의 의도가 더 잘 먹힐 수도 있겠군요.

이야기는 조금 더 계속 이어질 수 있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한국 영화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뒤로, 우린 우리의 영화를 해외에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점을 수입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일방적인 수출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면 상호교류의 과정이었던 셈이죠. 이 경우 비평적 관점의 순수성을 지키는 건 재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비생산적인 낭비입니다. 우리가 그쪽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최대한으로 얻어야 합니다.

요새 제가 기다리는 건 <친절한 금자씨>의 해외 비평입니다. 국내 비평의 방향은 뻔합니다. <올드보이>때보다 미적지근할 것이고 심심한 결말에 실망했다는 식이겠죠. 사실 저도 그렇게 썼습니다. 하지만 전 이와는 다른 관점으로 이 영화를 바라볼 비평가들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국내보다는 해외에 더 많이 나올 것 같아요. 특히 <올드보이>를 가차없이 혹평한 비평가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요? “그럴 줄 알았어, 거품이었다고!”라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연결고리와 해석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겠죠. 어느 쪽이건 이들의 비평은 이전 영화인 <올드보이>에 대한 그들의 입장과 연결되어 있을테니, 국내 비평보다는 더 재미있을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드보이>와 같은 영화에 준 국내 매스컴의 일방적인 호평은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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