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는 일종의 감옥입니다
장르라는 건 어떻게 보면 감옥과 같습니다. 장르팬들은 죄수들이고요. 장르 안에서 자연스러운 사람들은 그들이 갇혀 있는 장르의 문제점이나 한계를 쉽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세뇌되는 것이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SF 장르를 싫어했습니다. 체질도 아니었고요. 그런데도 그는 두 편이나 되는 굉장히 아름다운 SF 영화의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아이러니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린 존 포드가 SF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관심도 두지 않았고 만든 적도 없으니까요. 어떤 예술가가 특정 장르에 대한 혐오감이나 거부감을 표기하고 사람들이 그걸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 예술가가 장르 안에 일단 몸을 담가야 합니다. 타르코프스키는 그 짓을 두 번이나 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린 그의 거부감을 기억하는 거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지 않냐고요?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죠. 타르코프스키에겐 현실도피적인 SF 장르물은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정치적인 문제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작품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겠죠. 만들고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요.
여기서 중요한 건 그렇게 만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장르 내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솔라리스>는 그냥 좋은 영화 정도가 아닙니다. 몇몇 부분에선 선두주자지요. 조지 루카스가 <스타 워즈>를 통해 주차장에 깔려 있는 먼지투성이 고물차와 같은 우주선들이 가득 한 낡은 우주를 선보이기 훨씬 이전에 타르코프스키는 고장 난 낡은 기계들로 가득 한 허름한 모텔과 같은 우주정거장을 선보였습니다. 지금은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표현 방식이지만 당시엔 거의 전복적이었어요. 그렇다면 타르코프스키는 어떻게 그 아이디어를 냈던 걸까요? 간단합니다. 그는 장르 감독이 아니었고 거기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장르 감독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있었던 겁니다.
장르라는 건 어떻게 보면 감옥과 같습니다. 장르팬들은 죄수들이고요. 장르 안에서 자연스러운 사람들은 그들이 갇혀 있는 장르의 문제점이나 한계를 쉽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세뇌되는 것이죠. <스타 트렉>을 십여 년 정도 보다 보면 모든 외계인들이 분장한 할리우드 배우처럼 생겼고 둘이 섹스를 하면 자연스럽게 혼혈종이 생기는 우주를 당연시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경우 국외자들은 종종 훌륭한 자극이 되어줍니다. 물론 장르를 무시하면서 돈 때문에 억지로 만드는 사람들까지 다 도움이 되는 건 아닙니다. 타르코프스키만 해도 SF에 대해 잔뜩 투덜거리긴 했지만 자기와 장르에 맞는 테크닉과 표현 방법을 개발했고 나중에 한 번 더 돌아오기까지 한 걸 보면 말만큼 싫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그 정도로 성실한 예술가라면 장르의 문을 열 정도는 아니더라도 장르팬들이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국외자 감독들이 만든 흥미로운 SF영화들로 가득했던 60년대 세계영화계와 비슷한 현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장르는 호러입니다. 5,6년 전까지는 거의 사멸한 것으로 여겨졌던 한국 호러 영화가 갑자기 붐을 타면서 수많은 외부인들이 장르 안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호러 전문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안병기 한 명뿐입니다. 신인이나 외부인들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이들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장르는 결코 손쉬운 것이 아니니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오만에 걸려 넘어집니다. (이 장르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장르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장화, 홍련>의 김지운처럼요.) 간신히 이게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인식하고 일어난 뒤에는 테크닉에 걸려 넘어지죠. <와니와 준하>의 감독인 김용균의 신작 <분홍신>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분홍신>은 거의 완벽한 외양을 과시했던 <와니와 준하>와는 달리 일관성 부족과 클리셰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하는데, 그건 이 영화가 “호러니까 당연히 그래야 할 거야”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충분히 자신이 도달할 수 있었던 예술적 완성도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냥 알아서 감옥 속에 뛰어든 것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는 동안 장르의 가능성도 반쯤 날아가 버렸고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레드 아이>를 무시한다면, 전 올해 두 편의 한국 호러 영화를 봤습니다. <분홍신>은 그냥 그랬고 <여고괴담 4: 목소리>는 괜찮았습니다. 앞으로 두 편이 더 남았어요. <가발>과 <첼로>요. 남은 두 편이 안정되거나 안이한 호러 영화가 될지, 아니면 외부인의 시점에서 장르의 표현폭을 넓히는 작품이 나올지, 아니면 장르의 허울만 빌린 전혀 엉뚱한 영화가 나올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영화가 좋다면 전 어느 쪽이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전 단지 그들이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