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녀'가 일깨워주는 공포감
전 그게 생각 외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적어도 우리가 이렇게 방 안에서 ‘당연한 일이지’라고 생각하는 일들 중 실제 일이 닥치면 먹히지 않는 게 상당히 많습니다.
오늘 전 그 악명 높은 ‘개똥녀’ 사진을 보고 심한 공포감에 사로 잡혔습니다.
아, 물론 전 그 사람을 옹호할 생각이 없습니다. 전 휴대 전화나 디지털 카메라 같은 건 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그런 사람을 보았다면 저도 화가 나서 사진을 찍어 올렸을 지도 모릅니다. 자기 개가 지하철에서 설사를 한 게 꼭 그 사람 잘못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럴 때를 대비해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고 그걸 꺼내는 데 실패했다고 해도 뒤처리를 하는 성의를 보여주는 게 상식적인 예의죠. 짜증을 내며 나간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잘 한 게 없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저 역시 그런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지금 전 개를 키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키운 적이 있었고 단거리지만 전철을 같이 탄 적도 있었어요. 지하철 안은 아니지만 남의 집 앞에서 개의 배설물 때문에 애를 먹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애완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특정 상황에서 언제나 상식적으로 굴 수 있느냐의 문제죠.
전 그게 생각 외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적어도 우리가 이렇게 방 안에서 ‘당연한 일이지’라고 생각하는 일들 중 실제 일이 닥치면 먹히지 않는 게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전 몇 년 전에 강남의 모 아이스크림 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오다가 그만 다른 사람을 밀어 그 사람이 막 산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린 적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우물거리고 밖으로 나온 뒤에야 제가 마땅히 그 사람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줘야 했다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그 땐 당황해서 그런 게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돌아가 보니 누구인지 얼굴을 구별할 수 없었고요. 가끔 전 그 사람이 그날 겪은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큰일은 아니었으니 오래 가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겠죠.
그 개똥녀 사건도 그런 요소가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런 경우 예의와 성의는 그게 당연한 일이어서가 아니라 그게 자신에게 덜 손해 가는 일이기 때문에 취하는 것이니까요. 아마 그 사람도 같은 일을 조금 다른 상황에서 겪었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수도 있겠죠. 조금 더 머리가 빨리 돌아가,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 전화 때문에 전 국민의 사진기자화 현상이 벌어졌다는 걸 깨닫고 적당히 예의를 취하며 배설물을 취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전 이 한 가지 사건으로 그 사람을 100퍼센트 알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판단을 위한 참고 자료는 될 수 있겠지만요.
하여간 그 사람에겐 이미 늦었습니다. 인터넷 이곳 저곳에 맨 얼굴의 사진이 떠돌고 있으니 그 사람의 개인 신상이 밝혀지고 불쾌한 일들이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초상권은 침해 당했고 인터넷에 부글거리는 욕설들은 오래 전부터 수위를 넘었습니다. 옥션에서 이 사람을 경매에 붙이는 일까지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보통 때 같으면 모두가 저지르는 간단한 경범죄 수준으로 끝날 일이 디지털 사진과 인터넷 덕분에 전 국민의 인민재판이 된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전 그 사람을 변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아요.(다들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그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랍니까?) 하지만 언젠가 이런 일들이 지금 열심히 분노하며 험상궂은 리플들을 남기는 저나 여러분에게 닥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여전히 품고 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일어난 몇 분간의 우발적인 소동 때문에 수십 년간 우리가 쌓아올린 삶이 재평가되고 비난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말이죠.
물론 제가 이런 글을 쓴다고 사태가 특별히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익명으로 리플을 담고 남을 공격하는 건 쉬운 일입니다. 너무 쉬워요. 이 사진 뒤에 달린 수백만의 리플들을 쓴 사람들 중 그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상식 이하의 일을 했다고 자신을 곱씹어본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게 또 인터넷이라는 베헤못이 살아 움직이는 방식이기도 하죠. 전 여러분이나 제가 여기에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서운 세상이니 그냥 무서워하며 살아야죠. 제가 이 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여러분에게 그런 공포감을 일깨워주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