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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련된 육체와 고도의 기술이 만든 감동적인 쇼, 프로레슬링 - 『태양의 드롭킥과 달의 스플렉스』
70년대까지 인기가 좋았던 프로레슬링은 순식간에 몰락했다. 최고의 스타였던 김일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장영철은 언론에 “레슬링은 쇼다”라고 폭로를 했다.
70년대까지 인기가 좋았던 프로레슬링은 순식간에 몰락했다. 최고의 스타였던 김일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장영철은 언론에 “레슬링은 쇼다”라고 폭로를 했다. 김일의 박치기에 환호했던 대중은 그 드라마틱한 명승부들이 모두 ‘쇼’였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미리 승부가 결정된 채 치고받는 ‘가짜’ 대결을 벌인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배신감을 느낀 프로레슬링 팬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80년대 후반에는 (지금은 WWE로 바뀐) 미국의 프로레슬링 단체 WWF의 비디오가 출시되면서 헐크 호건, 마초맨 랜디 새비지, 브렛 하트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 프로레슬링의 인기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외국에서는 대체로 프로레슬링을 엔터테인먼트 쇼로 보고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WWE에는 시합의 스토리라인을 짜는 각본가가 수십 명 있다고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레슬러들의 캐릭터(기믹)를 짜고, 누구와 누구를 대립시킬 것인가 등을 고안하는 것이다.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누가 이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서는 프로레슬링을 남자들의 ‘소프 오페라’ 같은 것으로 바라본다. 프로레슬링에는 남자들이 원하는 폭력, 섹스, 권력 등이 모두 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 권모술수를 부리고, 한 여성을 두고 각축을 벌이고, 때로는 단순한 질투와 욕심 때문에 과도한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폭력과 섹스의 드라마를 근육질 넘치는 남자들의 ‘기술’과 함께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미국의 프로레슬링이다.
분명한 것은, 프로레슬링이 쇼지만 또한 ‘리얼’이란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끊임없이 다듬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아주 위험한 상황들을 돌파해야만 한다. 즉, 서커스 같은 것이다. 적절하게 위험을 피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있지만, 자칫하면 목숨을 잃거나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육체를 고도로 활용한 남자들의 격정적인 육체 드라마가 바로 프로레슬링인 것이다. 물론 구성이 너무 단순해서 단지 머리 빈 노동자들의 저급한 취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육체의 향연에는 뭔가 끌리는 구석이 있다.
철저하게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미국의 프로레슬링과 달리, 일본의 프로레슬링은 ‘투혼’에 큰 의미를 둔다. 승부가 결정되어 있는 것은 동일하지만, 일본의 프로레슬링에는 열혈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동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는 기교를 극단적으로 과장하여 거의 서커스를 보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요즘에는 이종격투기가 인기를 끌면서, 특히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의 열기가 식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 어떤 승부가 벌어질지 모르는, 99%의 실력과 1%의 우연이 작용하여 명승부를 이끌어내는 이종격투기의 매력 또한 엄청나다. 하지만 프로레슬링과 이종격투기는 육체를 이용한 승부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구성 원리는 현저하게 다르다. 즐기는 관점 자체가 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 프로레슬링과 이종격투기를 모두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폄하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프로레슬링은 감동적인 쇼로, 이종격투기는 드라마틱한 스포츠로 볼 수는 없는 걸까?
마침 오치아이 유스케의 『태양의 드롭킥과 달의 스플렉스』이 나왔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심판을 지냈고, 경기의 시나리오에도 관여했던 미스터 다카하시가 쓴 『도쿄 데인저러스 보이』를 원작으로 한 『태양의 드롭킥과 달의 스플렉스』는 프로레슬링과 이종격투기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만화다. 미스터 다카하시는 모든 프로레슬링이 쇼라고 폭로하여 화제를 모은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스터 다카하시가 말한 ‘쇼’의 의미는 결코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쇼기 때문에 프로레슬링의 가치가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레슬링은 쇼지만, 최고로 단련된 육체와 고도로 완성된 기술이 뒷받침된 쇼’라는 것이다.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아키나카는 돈을 벌기 위해 프로레슬링의 무대에 뛰어든다. 어릴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운동을 해야만 했던 아키나카는 시합을 앞두고 승부가 이미 결정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반면, 쿠사카베는 너무나 프로레슬링을 사랑하지만 회사의 명령으로 이종격투기 무대에 나가 의외의 승리를 거둔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은 서로 무대를 바꿔야 한다. 아키나카는 이종격투기 대회에 나가 단지 상대를 이기는 것에만 몰두해야 하고, 쿠사카베는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프로레슬링의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면 된다. 하지만 아키나카에게는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다. 관객을 열광시키는, 승자의 아우라가 존재하는 것이다.
프로레슬링에 열광하는 관객에게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 때로는 악역에게 환호하기도 한다. WWE의 스티브 오스틴은 악역 전문으로 출발했고, 정상에 올라서도 악동 이미지로 한몫했다. 승부에 진 선수라도, 그가 모든 열정을 링 위에서 불살랐다면 기꺼이 박수를 보내는 것이 프로레슬링의 팬이다. 누구는 프로레슬링을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에 비유했다. 당시의 사무라이는 단지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상대의 허점을 노려 한칼에 상대를 베어버리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었다. 상대가 칼을 내려치면 그것을 받아준다. 서로 자신의 기량을 끝까지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마지막에 승부를 낸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였다. 프로레슬링에서는 자신의 기술을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의 기술을 멋지게 받아주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상대의 기술에 나가떨어져 상대를 돋보이게 하고 끈질기게 다시 일어나 자신의 기술을 화려하게 펼치는 것. 그것이 프로레슬링의 기본법칙이다.
물론 이종격투기에도 그런 열정이 있다. 하지만 상대를 노려보다가 암바 한 번에 경기가 끝나버리는 경우는 프로레슬링에 없다. 프로레슬링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최근 일본 프로레슬링이 이종격투기에 밀리고 있는 것은 과거의 투혼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후까지 자신을 불태우고 멋지게 지는 경기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관객들은 아찔한 한판으로 끝나는 이종격투기에 열광하고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에 취한 것이다. 하지만 프로레슬링과 이종격투기는 결국 똑같은 즐거움에서 시작된 엔터테인먼트다.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화려하고 아찔한 것인지, 승부란 얼마나 미묘하고 드라마틱한 것인지. 그리고 프로레슬링과 이종격투기는 쇼와 스포츠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이종격투기이건, 프로레슬링이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절실한 직업이고 삶이다. 『태양의 드롭킥과 달의 스플렉스』은 그런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스포츠 만화의 감동에도 충실하다. 프로레슬링의 입장에서 본 것이라 해도 『태양의 드롭킥과 달의 스플렉스』은 이종격투기와 프로레슬링 어느 하나에라도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봐야 할 만화다. 그 세계의 진면목을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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