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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지향적이어서 더욱 가치가 있는 만화 - 『스나이퍼』
인터넷 서점에서 『스나이퍼』의 표지를 처음 봤을 때, 70년대 만화라고 생각했다. 1, 2권을 읽을 때만 해도 그런 기분이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스나이퍼』의 표지를 처음 봤을 때, 70년대 만화라고 생각했다. 1, 2권을 읽을 때만 해도 그런 기분이었다. 전형적인 극화체의 그림. 한때 전문 킬러였던 중년 남자가 깊은 산속의 온천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벌어지는 작은 이야기들. 세상은 잔혹하지만, 모든 시공으로부터 이탈된 듯한 비경의 온천장 츠바키야의 사람들은 순수하다. 한 마디로 『스나이퍼』의 모든 것이 고색창연했다. 하지만 『스나이퍼』는 지금도 나오고 있는, 21세기의 만화다. 대체 작가는 이 낡은 틀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려 하는 것일까. 그게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됐다.
히지카타 유호가 쓰고, 마츠모리 타다시가 그린 『스나이퍼』는 전직 킬러가 주인공이다. 새롭게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겐은 모든 과거와 결별하고 온천의 종업원으로 들어간다. 남편을 잃고 온천장을 경영하는 사장 사에코와 한때 3류 건달이었지만 이제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배인 스데키치. 한때 불량소녀였지만 이제는 최고의 게이샤를 향하여 나아가는 고유키, 가족 동반자살에서 혼자 살아났지만 밝게 살아가는 종업원 유미, 미혼모이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키미에. 그리고 한때 유명한 스트리퍼였지만 지금은 농사를 지으며 홀로 살아가는 토모코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홀로 산 속에서 살아가는 남자 마츠조. 겐은 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새롭게 인생을 배운다.
아마도 주인공을 전직 킬러로 설정한 이유 하나는, 킬러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킬러는 한 순간에 목표를 해치워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직감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신의 본능에 모든 것을 맡기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강인함이 있어야 한다. 겐은 츠바키야에서도 일종의 해결사 노릇을 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일종의 패배자라는 것이다. 결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 없는, 언제나 세상의 빛을 두려워해야만 하는 직업. 자신의 정체를, 자신조차 알 수 없는 킬러. 겐은 과거의 자신을 지우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커다란 포부나 욕망 없이, 단지 살아가는 것 자체를 목표로.
『스나이퍼』의 인물들은 대체로, 열심히 자신과 싸우고 있다. 사에코는 온천의 경영자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다. 유미는 언제나 밝지만, 치열하게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싸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겐과 가장 흡사한 인물은 토모코다. 츠바키야에서 여체 장식을 하던 토모코는, 일종의 사회부적응자다. ‘나한테는 취해 있을 때가 진짜 세상이고, 제정신일 때가 꿈속인 것 같아요… 그래서 타인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는 거고…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것도 귀찮고… 그런 나라도 때때로 누군가의 일이 걱정되고 측은해서 참견쟁이가 되곤 하죠.’ 토모코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자연에 맞추어 살아가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저 유유자적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 토모코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철저한 프로 의식을 가지고, 프로로서의 할 일을 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스나이퍼』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스나이퍼』는 끊임없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질문을 던진다. 처음 『스나이퍼』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뭔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적인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하다가, 차츰 뭔가 거대하고 극적인 상황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그런데 『스나이퍼』는 권수를 거듭할수록, 더욱 더 인간 자체에, 더 사소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뭔가 그럴듯한 말 하나씩을 읊조린다. ‘나는 알고 있다. 이 땅 위의 인간들의 저마다의 고독과 절망을.’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는 건 쾌락이다.’ ‘남자들의 본질은 싸움과 영역 다툼과 전쟁이니까.’ ‘인간은 누구든 인생의 견본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런 ‘교훈’은 대부분 고리타분하다. 가슴을 울리면서도, 어딘가 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스나이퍼』는 과거의 가치가 사라지거나 희미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과거의 가치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다. 『스나이퍼』는 명백하게 과거지향적인 작품이지만,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모든 것이 앞으로만 빠르게 질주해갈 때, 홀로 뒤돌아보는 것은 중요할 뿐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겐은 여관 종업원들과 함께 지방 복서의 은퇴식을 보러 간다. ‘감동했다. 이름도 모르는 삼류 복서가 10번에 걸친 종소리를 들으며 흘리는 눈물에. 난 복싱이 좋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확실하게 끝난 듯한…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스나이퍼』를 보고 있으면, 정말 그런 기분이 든다. 프로야구의 스타가 아니라, 연봉 350만 엔짜리 투수에게 응원을 보내는 겐처럼, 그런 고리타분한 가치관으로, 그런 시대착오적인 변방에서 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