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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기자상'을 보여주는 만화 - 『크레이지 독』
얼마 전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대한 PD수첩의 보도를 둘러싼 사건은, 진실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PD수첩의 강압적인 취재가 있었다는 말이 돌자마자, PD수첩은 궁지에 몰렸다.
얼마 전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대한 PD수첩의 보도를 둘러싼 사건은, 진실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PD수첩의 강압적인 취재가 있었다는 말이 돌자마자, PD수첩은 궁지에 몰렸다. 당장 광고가 끊어지고, 징계를 먹고, 중단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취재 내용이 사실이라는 증언들이 나오면서, PD수첩은 기사회생했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조작이라는 것이 판명되었고, 서울대에서 조사위원회를 가동하여 직접 조작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된 진실이란 무엇일까? 논문이 조작이었다는 것? 아니면 애초에 황우석 교수의 업적이 너무 과장되었다는 것?
기자는 단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추적해야 하는, 반드시 밝혀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직업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라면, 과연 정당한 것일까? 기자가 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로지 진실일까, 아니면 피해자 혹은 희생자를 위한 무엇일까. 진실이지만, 그것이 한 사람을 지옥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단지 공익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을 생매장해도 좋은 것일까?
사루와타리 테츠야의 『크레이지 독』 1권에서 한 여고생이 살해당한다. 주변 사람들의 탐문에서 여고생의 일상에 매춘과 마약이 얽혀있다는 증언이 나온다. 신문에서는 그 증언에 의거하여, 똑같은 보도를 반복한다. 열혈기자인 사오토메 분야도 상사에게 같은 방향의 기사를 쓰라는 압력을 받는다. ‘신문이란 건 그 정도의 임팩트가 있어야 잘 팔린다. 요즘 신문은 언론보도기관이라기보다 종합정보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팔리지 않으면 땡전 한 푼도 안 돼.’ 그러나 상사의 명령을 거부하는 사오토메 분야의 입장은 확고하다. ‘부수만 늘어난다면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진실을 왜곡해서 최대한 재미있게 쓰라는 겁니까. 신문이 권위주의에 빠지면 썩게 된다. 신문기자는 인권을 존중하고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한 사명감에 불타야 한다고 가르친 건 당신이잖아요.’ 결국 주변의 증언은, 오해와 음모에 의한 것임이 밝혀진다. 분야를 제외한 다른 기자들은 사실(증언)에 의거한 기사를 썼지만, 진실과는 전혀 다른 작문을 쓴 것이다.
『크레이지 독』은 사오토메 분야를 한 마리의 고독한 늑대로 그린다. 신문사라는 거대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결코 조직의 룰에 따르지 않는 늑대. 분야와 가장 닮은 영화 주인공을 꼽는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더티 해리』의 해리 캘러핸이 떠오른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라면 어떤 폭력도 서슴치 않는 해리는 경찰조직의 골칫덩이다. 그는 경찰조직도, 매스컴도, 흉악범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법이 포기한, 아니 법이 두려워하는 어떤 인간에게도 목숨을 걸고 덤벼든다.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사를 검열하는 상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공생관계인 경찰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썩어빠진 세상은 이런 바보를 필요로 하고 있거든. 손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이런 바보를’ 이라는 말처럼, 분야는 자신이 믿는 정의와 진실에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폭력도 아끼지 않는다.
사루와타리 테츠야의 대표작은 『고교철권전 터프』 등이다. 일본 만화계에서 손꼽히는 ‘무술’ 전문가다. 사루와타리의 작품은 남자들의 피와 땀 냄새로 가득하다. 그들은 경기장이건 거리이건 상관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친다. 그리고 승부를 겨룬다. 온갖 무술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이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나온다. 남자의 육체와 싸움을 그리는 데 있어서, 사루와타리는 일류다. 『크레이지 독』은 이종격투의 세계를 사회 전체로 확장한 것 같은 만화다. 분야의 대결 상대는 진실을 가로막는 모든 것이다.
『크레이지 독』에는 온갖 추악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노숙자 폭행, 가정내 폭력과 노인 학대, 경찰과 병원의 비리 등 개인과 조직이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사실 『크레이지 독』에 나오는 사건들이 현실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크레이지 독』은 기자의 취재보다는, 기자의 싸움에 더 치중한다.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범죄들이 치밀하게 묘사되고 그 의미를 파헤치기보다는, 일단 충격적인 사건을 던지고 분야가 좌충우돌하며 싸우는 것으로 풀리고 해결된다. 끔찍한 사건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단순하다. 하지만 사루와타리는 남자들의 싸움을 극단적으로 묘사했던 격투만화들처럼, 『크레이지 독』에서는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극단적인 아수라장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격투만화처럼 상대를 때려눕힐 때까지 질주한다. 격투만화의 형식으로 그려진, 사회고발만화라고나 할까.
사오토메 분야 역시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누구보다도 정의감이 넘치는 신문기자, 란 의외로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분야는 이상형이다. 남자가 원하는 최강의 남자가 바키를 통해 그려지듯이, 분야는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기자다. 조직에 충성하면서 부수를 늘리는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실만을 쫓는 기자. ‘그의 척도는 단지 거짓인가, 진실인가’ 하나뿐이고, 그것을 ‘목숨을 걸고 관철’한다. 분야 같은 기자가 현실에 다수 존재한다면, 이 세상의 정의와 진실이 이토록 무기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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