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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시대를 예리하고 파고드는 만화 - 『동경이문』

르네상스는 흔히 인간예찬이라고 불린다.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다. 신에게의 복종에서 벗어난 인간은, 근대적인 이성과 합리주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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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흔히 인간예찬이라고 불린다.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다. 신에게의 복종에서 벗어난 인간은, 근대적인 이성과 합리주의를 발견했다. 근대인의 신념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세계를 발견했고, 세계의 주인으로 설 수 있다. 그게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시절엔 그렇게 믿었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에서, 두려움에 떨던 이들은 드라큘라의 정체와 이름을 알게 되자 ‘이제 드라큘라는 무섭지 않다,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알지 못하는 것, 인식으로 포착하지 못한 것들은 두려운 존재이지만 이름, 즉 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후에는 당연히 제압할 수 있고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근대인들은 과거의 모든 것, 특히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진 것들을 미신이나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동양으로 진출했다.

중세에서 근대로 차근차근 수순을 밟아갔던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거의 강제로 근대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853년 페리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전한 후, 일본은 개방을 시작하고 급속하게 근대화로 나아갔다. 그리고 1867년 메이지유신이 이루어짐으로써, 일본은 근대 국가로서의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게 되었다. 오노 후유미가 쓰고, 카지와라 니키가 그린 『동경이문』은 그로부터 29년 후의 이야기다. 근대화의 물결이 한창인 19세기 말의 동경은 중세와 근대, 미신과 과학, 왕정과 민주주의가 마구 뒤섞인 혼란기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진흙탕 위에 에도를 세운 후, 근대의 물결이 밀려든 동경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동경이문』은 중세와 근대, 요괴와 자동차가 함께 존재하는 기묘한 공간을 유려하게 보여준다. 동경에 요괴와 살인마가 나온다는 소문들이 떠돈다. 온몸이 불타오르는 화염마인이나 손에 칼을 달고 다가오는 사람을 베어버리는 야미고젠, 그 외에도 다양한 요괴들이 등장한다. 제도일보 기자인 히라카와는 아사쿠사의 거리 광대인 만조를 찾아가, 함께 요괴들의 정체를 추적한다. 야미고젠에게 습격당한 사람을 찾아가 취재를 하던 히라카와와 만조는, 전 섭정이었던 다카츠카사 공작 가문의 호주 승계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남인 나오시와 차남인 츠네히로, 둘 중에서 누가 호주가 되는지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

원작자인 오노 후유미는 『십이국기』, 『시귀』의 작가로 유명하다. 새로운 시공간을 창출해내는 재능만이 아니라, 색다른 흡혈귀의 존재를 보여주는 공포소설 『시귀』에서 보여주듯이 심리묘사도 뛰어나다. 『동경이문』의 나오시와 츠네히로의 캐릭터 역시 발군이다. 명문가의 자제라는 부담감과 함께, 서로 갖고 있는 경쟁의식과 두려움 그리고 희미한 형제애까지 잡아내는 필력이 만화에서도 보여진다. 『달과 물의 밤』의 작가인 카지와라 니키의 그림은, 섬세하고 유약한 듯 하면서도 야미고젠이나 인형사의 표현에서 보이듯 아주 옹골찬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근대라는 외강내약의 시대를 현저하고 예리하게 드러낸다. 『동경이문』은 글과 그림의 조화가 아주 돋보이는 만화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인형사의 입을 빌려, 『동경이문』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 봐도 신기해. 올바른 것은 밤인지, 낮인지. 아니면 둘 다 맞는 거고, 낮과 밤이 반복되는 것이 바른 것인지. 낮과 밤, 빛과 어둠이 반복되는 것이 바른 거라면, 사람의 마음 또한 그렇다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않나?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둠에 떨어지는 것은 아무도 칭찬하지 않잖아. 사람은 낮으로만 존재하는 것, 그것만이 옳다고들 하니까.” “질투 같은 건 있잖아요.” “그런 건 사람 마음에 지는 황혼에 지나지 않아. 어둠이란 더 캄캄하고, 그리고 조용한 거야. …… 아아, 어쩌면 아무도 빛이 무엇인지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군. 모두가 낮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게 밤이었는지도 몰라. 가스등에 비친 거리를 낮으로 착각하듯이.....만약 어둠에 물들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지 않아? 그 자는 역시 귀신처럼 보일까? 혹시 보살처럼 보이지는 않을까?.....난 그저 견딜 수 없이 어둠에 끌리는 것뿐이야. 사람 마음의 어둠에.”

『동경이문』은 근대의 빛이 투영된 근대 도시에 여전히 남아있는 비이성과 어둠을 이야기한다. 이미 근대가 훌쩍 지나가고, 포스트모던조차 낡은 유행이 되어버린 21세기에 바라보는 『동경이문』은 오히려 의미심장하다. 동경인들은, 화염마인이나 야미고젠을 여전히 믿고 있다. 아니 그들의 생각이나 판단은, 오히려 과거의 사상에 더욱 기울어져 있다. 근대의 이성과 합리주의에 동의는 하지만, 그들의 삶, 세계에는 그것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캄캄한 어둠은 사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거니까 말야”라는 말처럼, 근대적 이성과 합리주의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새로운 시대가 온 척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낡고 기분나쁜 것들이 그 모양을 바꾸어 우글거리고 있었던 건 아닐 걸까? 새롭고 좋은 세상이 오지 않는다면, 대체 뭘 위한 개혁인 건지....시대의 힘도 당해내지 못하는데 사람은 뭣 때문에 시대에 말려드는 것일까. 그저 살다가 가는, 그 정도 가치밖에 없는 걸까.”

『동경이문』은 혼란의 시대를 예리하고 파고드는 만화다. 그 답이 어찌 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만조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다. “사대는 좋아지든 나빠지든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변하는 거라구요.” 변하는 시대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이다. 혼란스러운 혼돈은, 언제나 변함없는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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