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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압도하는 만화 - 『브레임』

앙코르와트에 가본 적이 있다. 폐허가 된 사원에는, 거대한 나무가 돌 틈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사원과 나무는 이미 하나의 생명체였다. 모든 것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간의 흐름이 어떤 것인지, 약간은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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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에 가본 적이 있다. 폐허가 된 사원에는, 거대한 나무가 돌 틈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사원과 나무는 이미 하나의 생명체였다. 모든 것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간의 흐름이 어떤 것인지, 약간은 실감할 수 있다. 좁은 돌계단을 오른 후, 앙코르와트를 내려다보았을 때 어딘가 낯선 느낌이었다. 언젠가, 누군가, 나처럼 앙코르와트를 내려다보며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오래 전 앙코르와트는 고대 유적이 아니라, 생활의 공간으로서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앙코르와트를 보며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 많은 시간이 흐르고, 우리들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이 거대한 건축물들을 대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도를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를, 영국의 스톤 헨지를 바라보고 뭔가 해석을 내리려 하지만, 우리는 그 건축물들이 세워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고대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역사는 반드시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의 불가사의라는 말처럼, 과거에도 이미 위대한 문명들이 존재했었다. 또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문명이, 혹은 아틀란티스나 무우 대륙 같은 전설의 문명이 정말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을 역사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돌로 만들어진 과거 문명의 흔적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관점 안에서 해석하려 한다. 우리의 사고 틀과 과학 지식 안에서.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루어놓은 문명이 한순간에 파괴된 후, 문명의 세례를 받지 못한 후대인이 지금의 건축물이나 기계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두려움일까, 경이일까.

니헤이 츠토무의 『브레임』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지하의 건축물. 세이프가드와 규소생물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싸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그러나 자기 자신도 정확히 목적을 알지 못하는 키리이의 존재. 『브레임』의 모든 것은 수수께끼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과거에 거대한, 위대한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 수직으로 파고 내려간 지하 건축물을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어떤 기계의 흔적이 없어도, 단지 그 건축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실감한다. 건축은 한 시대의 총화라고 한다. 그 말이 맞다. 위대한 건축물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니헤이 츠토무의 『브레임』을 봐도 알 수 있다. 건축학과를 나왔다는 니헤이의 그림은, 보는 이를 황홀경에 빠트린다.

『브레임』은 아무런 대사 없이, 단지 그림만으로 진행되는 지면이 많다. 키리이가 거대한 구조물을 걸어가는 장면이나 규소생물과의 싸움에서는 모든 것을 그림만으로 보여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만화를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르는 이유 하나는, 그림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만화를 비교할 때, 일본의 만화가 컷과 컷의 연출과 편집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에 비해, 미국 만화는 그림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말한다. 컷 하나의 예술성에 거의 목숨을 건다. 그래서 그래픽 노블의 대부분은 컬러로 출판된다. 하지만 일본 만화의 그림 역시 하나의 예술이다. 『총몽』 『아키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이 보여주는 그림은, 그래픽 노블에 견주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브레임』도 마찬가지이지만, 『브레임』은 이야기보다 그림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브레임』의 이야기는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공간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은 물론, 시간 조차도 애매하다. 어딘가로 움직이는데 몇천 시간 정도가 예사로 흘러간다. 『브레임』의 시공간은 우리의 지각능력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키리이는 왜 그 곳에 있는 것인지, 통치국이란 무엇인지, 왜 과거의 문명이 종말을 고한 것인지 하나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자기 증식을 거듭하는 생물과 기계들, 기억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인간들을 만나는 키리이의 목적은 네트 단말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찾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그것은 결말까지 나아가도 마찬가지다. 결말이 난 후에도, 한참을 망설이게 된다. 『브레임』은 모호한 상징들로 가득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험이다. 사실 『브레임』의 이야기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쉽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성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무엇인 선이고 악인지 알 수가 없다. 『브레임』은 다른 공간의 이야기이고, 무한한 꿈을 걷는 우리의 또 다른 자아처럼 보인다. 키리이가 찾는 ‘인간’은,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동일한 것으로 느껴진다.

『브레임』은 이야기가 모호하지만, 압도적인 그림의 느낌 때문에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약간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그 그림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혹시 『브레임』을 다 보고 나서 너무나 궁금하다면, 『노이즈』란 작품에서 약간의 단서를 잡을 수 있다. 니헤이 츠토무가 신인상을 받은 동명의 『브레임』이란 작품과 『노이즈』 두 편이 실려 있다. 『노이즈』는 장편으로 만들어진 『브레임』의 전사(前史)를 보여준다. 아이들이 사라지고, 카오스에서 규소생물을 만들어내려는 종교집단이 등장한다. 그리고 멸망까지. 니헤이 츠토무의 관심이 무엇인지, 『브레임』이란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를 『노이즈』를 통해서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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