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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일본 음반 산업의 세계 - 『엔카의 혼』

일본의 엔카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트로트쯤이 된다. 한때 최고 인기를 누리던 대중가요였지만, 서구 음악이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의 음햑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나이 든 사람의 추억을 되살리는 음악 정도로 취급받는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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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엔카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트로트쯤이 된다. 한때 최고 인기를 누리던 대중가요였지만, 서구 음악이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의 음햑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나이 든 사람의 추억을 되살리는 음악 정도로 취급받는 장르. 아무리 전통을 소중히 하고, 때론 과도할 정도의 의미부여를 하는 일본이지만 젊은 세대에게 엔카란 고리타분하고 칙칙한 옛 노래일뿐이다.

하지만 『엔카의 혼』의 코시카와 타츠는, 2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엔카가 최고의 노래라고 믿는 청년이다. 외롭거나 기운이 빠질 때는 미조라 히바리의 노래를 부르고, 모든 악기 중에서 최고는 인간의 성대라고 확신한다. 테이토 레코드사에 들어간 이유도, 점점 젊은 세대에게 외면받고 있는 엔카를 부흥시키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엔카 가수인 코사카 미하루의 음반을 제작하는 것. 1년간 영업사원으로 일한 후 제작부로 발령이 나지만, 안타깝게도 타츠의 새로운 부서인 제2 제작부는 록 음악을 제작하는 곳이다. 기타나 드럼 연주를 감상할 줄도 모르는, 엔카가 최고라고 믿는 타츠는 어떤 록 음반을 만들어낼 것인가.

타카타 야스히코의 『엔카의 혼』은 레코드 디렉터가 바라본 대중음악의 세계를 그린 만화다. 레코드 디렉터는 뮤지션을 발굴하고 스카우트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작사가와 작곡가를 섭외하고, 스튜디오 녹음작업을 총괄하는 직업이다. 하나의 음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것이 레코드 디렉터의 임무이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총력을 쏟는 뮤지션과는 때로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음악을 직접 만드는 프로듀서처럼 음악의 창조적인 면을 전담하지는 않지만, 레코드 디렉터 역시 음악을 잘 알지 못하면 할 수가 없다. 예술과 산업, 작품과 상품 모든 면을 동시에 생각하고 나아가야 하는 레코딩 디렉터는 결코 만만한 임무가 아니다.

상사인 마키에게 레코딩 디렉터의 모든 것을 배우 나가는 타츠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여 도중하차하려는 가수, 한때 최고의 엔카 가수였지만 10여년간 하나의 히트곡도 내지 못한 퇴물 엔카 가수, 능력은 있지만 친구들과 함께 만든 엉터리 밴드와의 의리 때문에 흔들리는 가수, 인기있는 성우에서 아이돌 가수로 발돋움하려고 하는 가수 등 장르를 막론하고 많은 뮤지션들과 협업을 하며 음악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엔카가 최고이고, 목소리가 노래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타츠였지만, 장르에 상관없이, 모든 음악은 동일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진심을 담아 노래를 부르면, 악기를 연주하면 듣는 사람에게 전해지기 마련이다. 엔카밖에 몰랐던 타츠는 음악산업과 음악의 모든 것을 몸으로 배워가면서,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한다.

『엔카의 혼』을 보게 된 이유는, 일본 음악산업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름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데, 한참을 보다 보니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검사 마루쵸』. 그제야 작가 이름을 보니, 같은 작가였다. 마루쵸와 타츠라는 인물의 성격이 거의 비슷하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향하여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는 타입의 남자. 고지식하고, 열혈이며, 신념을 굽히지는 않지만 자신의 잘못이나 편견은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묵묵히,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가고 마침내 인정을 받는다.

타카타 야스히코의 세계는, 너무나 긍정적이다. 『검사 마루쵸』처럼 아무리 잔혹한 세상사를 다룬다 하더라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결코 손쉽게 타협하지는 않지만, 절대로 눈을 감지는 않는다. 진심으로,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렇게 마루쵸도, 타츠도 성공을 거둔다. 그들의 마음이 통한다, 이 잔혹한 세상에. 하지만 사실 답답하다. 『엔카의 혼』을 보다 보면, 과연 그럴까, 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간단하게, 타츠의 진심은 통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타카타 야스히코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나는 믿기 힘들다. 이 세상의 호의를.

그럼에도 『엔카의 혼』은 무척 흥미롭게 읽힌다. 타카타 야스히코의 장점은, 마루쵸나 타츠처럼 무척 성실하다는 것이다. 『검사 마루쵸』가 검사의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냈듯이, 『엔카의 혼』 역시 음악산업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가수가 어떻게 데뷔를 하게 되는지, 음반을 내는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 어떻게 하는지 등등 다양한 상황이 펼쳐진다. 단지 음반산업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만이 아니라, 샐러리맨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시마 과장』 못지 않게 사실적으로 충실하게 보여준다. 음반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기본이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진정으로 담아낸다. 『엔카의 혼』을 보고 있으면, 아니 타카타 야스히코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이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살고 있구나, 란 것을 절로 느끼게 된다. 그런 성실함이, 타카타 야스히코의 만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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