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만화이야기
그것은 어쩌면 희망의 씨앗일지도,『강철의 연금술사』
일종의 결과론이긴 하지만, 히트작에는 이유가 있다. 딱히 취향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히트작은 마음이나 머리 어딘가를 깊숙하게 건드린다. 『헬로우 블랙잭』은 주인공의 지나친 열혈에 짜증을 내면서도, 한편으로 감동하고 한편으로 지식을 얻는다.
일종의 결과론이긴 하지만, 히트작에는 이유가 있다. 딱히 취향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히트작은 마음이나 머리 어딘가를
깊숙하게 건드린다. 『헬로우 블랙잭』은 주인공의 지나친 열혈에 짜증을 내면서도, 한편으로 감동하고 한편으로 지식을 얻는다. 늘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원피스』나 『헌터X헌터』가 새로 나오면 늘 사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문화상품에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나름의 매력이 존재한다.
제49회 소학관 만화상을 수상하고, 이미 1000만 부를 돌파한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 역시 최근 일본을 뒤흔든 히트작이다.
성인만화에서 『헬로우 블랙잭』이 선두라면, 소년만화에서는 『강철의 연금술사』다. 연금술사인 에드와 알 형제는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하여 ‘인체연성’을 시도했다가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왼쪽 다리를 잃은 에드는 자신의 오른팔을 대가로 육체를 잃어버린 알의 영혼을 금속 갑옷에 정착시킨다. 에드형제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국가연금술사가 되어 현자의 돌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닌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전형적인 소년만화의 구성을 따른다. 어떤 목표가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난한 모험에 나선다. 원피스를
찾아 최고의 해적이 되겠다는 『원피스』도, 아버지를 찾기 위해 헌터가 된 『헌터X헌터』도, 『샤먼 킹』도, 『나루토』도 모두 일종의 성장모험담이다. 그런데 『강철의 연금술사』는 전형적인 구성을 취하는 동시에,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 에드와 알은 이미 지옥을 보아버린 소년들이다. 그들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그 대가를 치렀다. 그들은 기존의 영화나 만화에서 많이 보았던 ‘미친 과학자’에 속한다. 미친 과학자들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사적인 이유에서 금기를 뛰어넘는다. 시체를 이용하여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그들은 신에게 도전한다.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말처럼, “눈앞에 가능성이 있으니까 시험해 봤다. 아무리 그게 금기라는 걸 알고 있어도 시험해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죄악을 저지르고, 그 대가로 고통의 길을 걷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인간, 죽음, 금기 등등 다소 복잡하고 난해한 테마를 드라마틱하게 다루어서 성인과 만화평론가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그 뿌리는 분명하게 소년만화에 있다. 『원피스』가 소녀만화의 극한을 달려간다면, 『강철의 연금술사』는 성인의 테마를 끌어들여 소년만화를 풍성하게 한다.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제목이 말하듯, 이 만화의 주된 소재는 연금술이다. 실재하는 연금술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아랍을 거쳐 유럽에 전해진 일종의 화학기술이다. 헬레니즘시대의 일부 학자들은, 모든 물질은 4원소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비율을 적절하게 바꿈으로써 다른 금속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구리나 철 같은 금속으로 금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장 고난도로 여겼다. 많은 연금술사들이 일반 금속을 금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연금술의 핵심이라고 할 ‘현자의 돌’을 찾아내지도 못했다. 연금술은 사기라고 비난받기도 했지만, 연금술에서 사용된 수많은 약품과 실험도구와 방법 등은 근대의 화학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갈릴레오나 뉴톤 같은 과학자들은 한때 연금술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연금술을 끌어들이면서, 판타지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만화 속에서 연금술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행하는 마술적인 과학이다. 다른 모양으로 사물을 변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무한대의 창조를 뜻하지 않는다. ‘연금술이란 물질 내에 존재하는 법칙과 흐름을 알고 분해하여 재구축하는 것’이고, 과학자인 연금술사는 ‘이 세상 모든 물질의 창조원리를 해명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연금술의 기본은 등가교환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1 대 1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뭔가를 얻으려면 그것과 동등한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들의 영혼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에도.
아라카와 히로무는 『강철의 연금술사』를 통하여, ‘자신의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고,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이 비록 거대한 진리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행동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질러 놓았으면 자신이 치워야 하고, 거짓말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일종의 자업자득인 것이다. 에드와 알은 전국을 떠돌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자신의 실험을 위하여 가족을 도구로 쓴 남자가 있고, 자신의 연금술이 살육의 도구로 쓰인 것을 참회하며 시골의 의사로 살아가는 남자도 있다. 에드와 알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잘 알고 있다. 이미 그 대가를 치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것을 짊어져야 함을 알고 있다. 그건 에드와 알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업이다.
‘스승님은 말했다. 이 세계도 법칙에 따라 흐르고 순환한다. 사람이 죽는 것도 그 흐름의 하나. 흐름을 받아들여라. 다 이해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해 못했으니까 그 때 엄마를...그리고 지금도 어쩔 수 없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어. 난 바보야. 그 때부터 하나도 성장한 게 없어.’ 그렇게 알은 자책한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연금술사를 칭송하고, 그의 능력을 무서워해도 에드와 알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아무리 개니 악마니 욕을 먹어도....우린 악마도 아니고 신은 더더욱 아니야. 인간이란 말야! 겨우 여자애 하나 구해줄 수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야....”
그래서 에드와 알은 끊임없이 떠돌아다닌다. 그들의 육체를 되살리기 위해서, 타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하지만 현자의 돌의 비밀은 오히려,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순수한 선도, 순수한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은 존재하는 것이다. “피는 피를, 증오는 증오를 부추겨. 부풀어오른 강대한 에너지는 이 땅에 뿌리내리고 피의 문양을 새긴다. 몇 번을 되풀이해도 학습을 몰라. 인간이란 어리석고 슬픈 생물이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인간에게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 에드의 연금술은, 그런 희망의 씨앗이기도 하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소년만화의 영역을 뛰어넘어, 세계와 인생의 법칙을 설명하려 한다. 그것은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교훈에는 의의가 없다. 인간은 어떤 희생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으므로’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반복하는 것 같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그 반복을 통해서 조금씩이라도 기어가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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