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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좇는 사람들 - 『일리아드』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잃어버린 문명이나 수수께끼의 괴수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 어린이 잡지에 실린, 다소 조잡한 내용의 모험담이나 역사의 수수께끼를 읽으면서 가슴이 설레어본 경험이 누구나에게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잃어버린 문명이나 수수께끼의 괴수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 어린이 잡지에 실린, 다소 조잡한 내용의 모험담이나 역사의 수수께끼를 읽으면서 가슴이 설레어본 경험이 누구나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대부분은 그 ‘허황된’ 꿈을 잃어버린다. 사실 그렇다. 그런 수수께끼의 유적이나 괴수, UFO 이야기의 태반은 거짓말이나 농담이다. 『일리어드』(글 토슈사이 가라쿠, 그림 우오토 오사무)의 주인공인 이리야는 ‘세계모험가열전-꿈을 이룬 사람들’이라는 전집에서, 한 권만은 절대로 팔지 않으려고 한다. 책의 제목은 바로 『무대륙을 찾아서-처치워드』다. 이유는 단 하나, 처치워드가 사기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는 모험가가 아니라 사기꾼이 될 것이라며.
그렇다면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말한 플라톤은 어떨까? 플라톤이 쓴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등에는 아틀란티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9천년 전에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뒤편에 커다란 섬이 있었고, 동서로는 리비아에서 이집트 접경 지역까지, 북으로는 유럽의 티레니아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한 왕국이 존재했다고. 그 섬은 대지진과 대홍수가 일어나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하지만 플라톤 이외에는, 당대의 누구도 아틀란티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그저 자신의 상상을 글로 남긴 것일까? 이후 마야에서 한 수도사가 발견한 ‘트로아노 고사본’ 등에도 아틀란티스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논란의 여지가 많다. 처치워드의 무 대륙 이야기처럼, 아틀란티스 역시 전설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를 발견하기 전까지, 트로이의 모든 것은 역사가 아니라 전설이었다. 거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 단지 전설로, 신화로 치부되는 것은 아닐까? 슐리만은 신화와 전설을 믿었고, 자신의 꿈을 성인이 되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신들의 신화를, 인간의 역사로 바꾸어낸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꿈을 잃지 않았던 슐리만이 트로이를 발견한 후, 다음 목표가 아틀란티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숨겨진 역사에 도전한 슐리만의 시도는 암흑 속에 감추어진 존재의 노여움을 샀고, 결국 암살당했다면? 『일리어드』는 그런 전설과 추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화다.
하인리히 슐리만의 손자 파울은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2년 10월 당시의 권위지인 뉴욕 아메리칸이라는 신문에 수기를 발표했다. 할아버지인 하인리히의 다음 목표는 아틀란티스였다. 하인리히가 트로이에서 발견한 아테네 신의 형상을 한 항아리에는 페니키아 문자로 ‘아틀란티스왕 크로노스부터’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파울은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연재하겠다고 했지만 중단되었고, 그의 수기는 위작으로 비난받았다. 얼마 후 파울은 발칸에서 스파이 혐의로 사살당한다. 『일리어드』는 그 의문의 사건에서 출발한다. 내전이 벌어진 크로아티아에서 오래된 호텔이 파괴되고, 부서진 벽에서 파울의 일기가 발견된다. 일기를 입수한 독일의 사업가 빌헬름은 세계 부호들의 지원으로 아틀란티스를 찾기 위한 극비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아틀란티스를 찾는 일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파울은 기원전부터 존재해 온 암살집단이 아틀란티스의 정체를 밝히려는 사람, 즉 조부인 하인리히는 물론 플라톤도 암살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파울 자신까지도. 그 생각처럼 빌헬름 역시 누군가에게 암살을 당한다.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빌헬름의 딸 유리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도쿄에서 골동품점을 경영하는 이리야 슈우조를 찾아간다. 모험가이자 고고학자인 이리야 슈우조는 아더왕의 묘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가 사기꾼으로 몰려 현장에서 은퇴한 인물이다. 결국 이리야는 유리와 함께 아틀란티스를 찾아나서게 된다.
『일리어드』는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과 학설들을 허구와 교묘하게 엮어낸다. 예를 들어 마리크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실제로 존재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존재하는 동방견문록이 아니다. 발칸 반도의 드브로브닉으로 간 이리야는 유괴된 유리를 구하기 위하여, 범인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살라만다’와 함께 ‘영원한 불의 교회’에 잠들어 있는 ‘동쪽에서 귀환한 분’의 고문서가 무엇인가 알아내야만 한다. 동쪽에서 귀환한 분은 바로 마르코 폴로. 마르코 폴로는 제노바에서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혔고, 그 때 루스티첼로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그것을 기록한 책이 바로 동방견문록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의 말이 태반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고, 허풍이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빼고 다른 판본을 내기도 했다. 그러니 마르코 폴로가 본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루스티첼로가 쓴 최초의 판본을 구해야 한다. 이리야가 찾아야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일리어드』는 실제와 허구를 엮으면서, 아틀란티스를 찾아가는 여정을 매력적으로 묘사한다.
『일리어드』는 『스프리건』처럼 액션과 모험이 주가 되는 만화가 아니다. 『일리어드』가 주력하는 것은, 단지 어떤 수수께끼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수수께끼를 둘러싼 다양한 입장과 증거들을 추론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성경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창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종파가 있다. 성경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가 아니라, 일곱 개의 악령으로부터 해방된 여자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일곱 개의 악령이란 일곱 단의 입회식을 치르던 수메르인의 이슈타르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수메르인의 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여기서 『일리어드』는 하나의 단서를 제시한다. 수메르인들은 암소로 변신한다는 지모신(地母神) 이슈타르를 섬겼다. 그렇다면 소를 섬기던 민족, 국가는 또 어디에 있을까. 플라톤은 자신의 글에서 포세이돈을 모신 신전에 성스러운 암소가 풀어져 있는 아틀란티스의 풍경을 묘사했다. 그렇다면 아틀란티스가 가라앉을 때 빠져나온 사람들이 바로 수메르인이 아니었을까? 그 중 일부는 남미 대륙으로 향하여 마야 문명을 만들었고.
일리어드와 오딧세이를 쓴 호메로스는, 어린이가 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여 심장이 멈추어버렸다고 한다. 그게 정말이건, 아니건 ‘수수께끼’란 것은 인간의 인생을 바꿔버릴만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고,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슐리만은 “그대의 꿈을 믿으시오.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치있는 일은 꿈을 쫓는 것말고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유리의 아버지 빌헬름 역시 “성공하기 위해 안전한 길을 선택하느니, 실패했을 때 절대 후회하지 않을 길”을 택했다. 『일리어드』는 자신의 꿈을 쫓아, 과거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액션이나 모험의 쾌감보다는,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과정 그 자체가 더욱 흥미로운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