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만화이야기
『배가본드』로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고향은 역시 농구다. 농구 불모지였던 일본에 농구 열풍을 일으킨 『슬램 덩크』는 세월이 흘러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명작이다. 그러나 『슬램 덩크』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엄청난 아쉬움이 있다. 『슬램 덩크』의 마지막은 너무나, 너무나도 아쉽다. 그렇게 한 번의 전국대회로 마감해버린 『슬램 덩크』의 마지막 권을 덮고 나면, 강백호와 서태웅의 모습을 더 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는다. 다크 호스에서 진정한 농구선수로 성장한 강백호를 보고 싶고, NBA를 목표로 전진하는 서태웅을 보고 싶다. 걸작인 『배가본드』를 보면서도, 그 갈증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같은 농구를 소재로 한 『리얼』로 약간의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리얼』은, 예상과 다르게 휠체어 농구를 소재로 하고 있었다. 표지를 넘기면, 휠체어를 타고 달리는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농구 코트를 달리는 소년의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강백호를 연상시키는 노미야가 보인다. 레게 파마를 한 험악해 보이는 얼굴이다. 성격은 강백호와 비슷하지만, 노미야의 여정은 강백호가 아니라 정대만을 닮았다. 제이슨 키드라고 자칭하는 노미야는 농구를 그만 둔 후, 모든 것이 망가졌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놈이 되었다. 가장 끔찍한 사건은, 거리에서 헌팅한 여자아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질주하다가 벌어졌다. 사고가 나고, 나츠미라는 이름의 소녀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노미야는 병원의 나츠미를 찾아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노미야는 휠체어를 타고 농구를 하고 있는 키요하루를 만난다. 농구공을 보는 순간, '나에게 패스해 줘'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그들은 만난다. 키요하루의 삶은, 노미야보다도 굴곡이 심했다. 피아노를 강요하던 아버지에게 반항하여 단거리 경주를 택한 키요하루. 겨우 아버지도 그를 인정하게 된 순간, 병마가 그를 덮친다. 골육종으로 다리를 절단하고, 키요하루는 농구를 한다. 노미야는 키요하루를 만나면서 농구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키요하루 역시 자신이 쌓아두었던 벽을 조금씩 허물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한 소년이 더 있다. 얼굴도 잘 생기고, 농구도 잘 하고, 여자에게 인기도 있고, 언제나 최고였던 다카하시. 야비하게 약자를 괴롭히며 군림하던 다카하시는, 어느 날 자전거를 훔쳐타고 달아나다가 덤프트럭과 부딪친다. 결과는 하반신 마비. 자신은 A레벨이라고 믿고 있었던 다카하시는, 자신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음을 알게 된다. 고통과 굴욕 속에서, 다카하시는 몇 번이나 죽으려 한다. 하지만 삶이란 그렇게 쉽게, 자기 마음대로 날아가버리는 것이 아니다. 다카하시는 다시 노미야를 만나게 된다.
3권까지 나온 『리얼』은 이제 시작이다.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될 다카하시는 아직 휠체어에 제대로 앉지도 못한다. 그들이 함께, 혹은 라이벌이 되어 펼칠 농구 시합이 열리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리얼』은 이제 첫 걸음일 뿐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일까? 『슬램 덩크』에서 강백호가 농구공을 잡고, 본격적으로 시합에 뛰어들기까지의 전초전이 지금 『리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단지 그것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리얼』을 볼 필요가 있다. 『리얼』은 농구만화인 동시에, 장애인 만화다. 아니 아마도 장애인이 우선일 것이다. 『리얼』은 장애인의 마음이, 현실이 무엇인지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키요하루는 달리기를 택한 후,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아버지도 그것을 인정하고, 아들을 격려한다. 육상 선생은 "네가 강해졌기 때문에 스스로 피아노를 관두고, 육상을 고른 거다. 아버지도 머잖아 강해진다. 네가 선택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해준다. 맞다. 그 말이, 정말로 맞다. 그런데 그걸 병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휠체어를 타고 달리는 것뿐이라면. 그래서 키요하루는 휠체어 농구를 한다.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 승부욕이 없는 동료들을 질책한다. 그건 가면이다. "지금의 그 얼굴은 키요하루 자신이 만들어낸 가면처럼 보여.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이라는 말처럼.
하지만 승리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승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당하게 노력했을 때 그 성과로 안겨지는 승리는. 키요하루가 다시 농구팀을 이끌고, 그 승리를 향해 다가갈 때 동료들도 함께 느낀다. 그 승리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물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늘 키요하루를 못마땅해 하는 동료가 말한다. "승리 따윈 아무도 기대하지 않아. '장애에도 불구하고, 밝게 긍정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건 그것 뿐이야....진지한 것도 좋지만 적당히 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차피 '장애자' 스포츠에 불과해." 그것 역시 현실이다. '정상인'들이 원하는 것은, 그 정도다. 하지만 '비정상인'들이 원하는 것 역시, '정상인'과 똑같다. 그들 역시 정당하게 승리하고 싶다. 그 쾌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그래서 말한다. "이기고 싶어. 나도"라고.
노미야는 비장애인이지만, 나츠미의 노력을 본 후에 비로소 깨닫는다. "좀더 제대로 된 인간이 되고 싶어"라고, 울면서 되뇌인다. 그렇게 키요하루도, 다카하시도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리얼』은 그 현실을 보여줄 것이다. 엄청나게 박력이 더해진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그림으로. 휠체어 농구가 이토록 박력 있는 것임을, 『배가본드』의 칼싸움 이상인 것을 『리얼』을 보고야 알았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너무나도 많고,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어느 새 거장의 품격을 갖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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