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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기 힘든, 엉망진창 재미있는 소동들 -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 『헤븐』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부닥친다. 좋은 사람들도 있고, 나쁜 사람들도 있다. 짜증나는 사람들도 있고, 보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들도 있다. 그건 보기 나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사람이, 누군가에겐 짜증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부닥친다. 좋은 사람들도 있고, 나쁜 사람들도 있다. 짜증나는 사람들도 있고, 보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들도 있다. 그건 보기 나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사람이, 누군가에겐 짜증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혹시, 약간 생각을 바꿔보면 짜증나는 사람이나 일도 즐겁게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힘들고 지겨워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웃어줄 수 있다. 아무리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사람을 한없이 괴롭혀도 내가 당하는 일만 아니라면 마구 웃어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가해자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 악의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옭아매는 것을 보는 일은 결코 즐겁지 않다. 하지만 그냥 캐릭터 자체가 괴상하고, 타인에게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정도라면 말썽꾼들도 얼마든지 즐겁게 받아줄 수 있다. 사사키 노리코의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사사키 노리코의 만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얼마 전 애장판으로 나온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다.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에 나오는 주요 인물 중에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 아프리카를 동경하는 우루시하라 교수를 비롯하여 늘 무감각한 세이코, 쥐를 무서워하는 닛카이도 등등. 마사키가 가장 정상적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비정상’적인 인물들 틈에서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역시 만만치 않다.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는 그 수많은 인물들이 생활하는 H대학 수의학과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소동을 그린다. 소동의 대부분은 우루시하라 등의 문제적 인물들 때문에 벌어지고, 나머지는 수의학과에 반드시 있어야 할 여러 동물들 때문에 벌어진다.
마사키와 닛카이도가 운명처럼 H대학 수의학과에 들어가게 된 것은 동물 때문이다. 고등학교 하교길에 우연히 우루시하라 교수를 만나고, 시베리안 허스키 새끼 한 마리를 받게 된다. 마사키와 닛카이도는 강아지에게 꼬마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수의학과에 진학한다. 마사키의 집에는 꼬마말고도 동물들이 많이 있다. 고양이 미케, 수탉 병돌이 그리고 이름 없는 쥐들.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는 이 이상한 사람들과 다종다양한 동물들이 펼치는 정신없는 시트콤이다. 정말 황당하고, 정말 재미있다. 동물의 감정까지 드러내는 섬세한 표정묘사와 기발한 상황들의 전개는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의 재미를 한층 배가시킨다.
이미 말했듯이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은 주로 우루시하라, 세이코, 마사키의 할머니 등이다. 우루시하라는 전후의 혼란을 틈타 수의학과에 들어와 교수까지 하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 이력에 걸맞게 우루시하라는 연구나 수업보다는 뭔가 재미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옥상에 물을 뿌려 스케이트장을 만들기도 하고, 개썰매 대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 마사키와 닛카이도에게 바람총을 만들라는 이상한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우루시하라 때문에 다른 교수와 학생들은 언제나 희생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된다. 하지만 절대 우루시하라 교수를 미워할 수는 없다. 우루시하라의 장난은, 동물인 꼬마나 미케가 치는 악의 없는 장난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동물이 아니라 교수가 치는 장난이기에 여파가 심하고, 때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뒤끝은 없다.
『헤븐』도 마찬가지다. 헤븐의 무대는 공동묘지 옆에 위치한 프랑스 레스토랑 로윈디시다. 쿠로스 카나코란 여사장은 우루시하라의 여성판이다. 사장이면서 손님들 틈에서 항의를 하기도 하고, 직원들 식사를 만든다며 유통기한이 넘은 재료를 태연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겪으며 직원들이 알게 된 것은, 생존경쟁의 진리였다. 초식동물 위에 육식동물이 있는 것처럼, 약육강식의 피라미드에서 쿠로스 사장이 최상위에 있다는 것. 사장에게 반기를 들었던 주방장이 마침내 깨달은 게 그 진리였다. 사장은 직원들을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인 것이다. 그 욕망 때문에 고생하고 피해를 입는 것은 직원들이지만, 그래도 쿠로스를 욕하기는 힘들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먹는 게 잘못이 아닌 것처럼…….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와 『헤븐』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사사키 노리코의 작품 중에 『못말리는 간호사』라는 작품이 있다. 이 만화에서도 우루시하라와 쿠로스에 비견할 만한 인물이 있다. 하지만 『못말리는 간호사』의 재미는 좀 떨어진다. 그 이유는 직업이 간호사라는 점이다. 간호사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환자를 제압할 수는 있지만, 의사들에게는 절대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우루시하라와 쿠로스는 절대권력자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야 만다. 그렇게 벌어지는 소동이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와 『헤븐』의 즐거움이다. 악의 없는 권력자의 갖가지 소동은 무해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반면 『못말리는 간호사』의 무대는 병원이다.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위험한 공간이다. 간호사의 실수나 장난은 바로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다. 무해한 장난도,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칼날이 된다. 그래서 『못말리는 간호사』의 장난은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고, 화목과 사랑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대신 폭소와 황당함도 좀 줄어들고. 그러나 개썰매장을 엉망으로 만든다고 해서 절망에 빠지지는 않는다. 레스토랑이 공동묘지 옆에 있는 게 썰렁하긴 하지만,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와 『헤븐』이 보여주는 것은, 무해한 포복절도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기 힘든, 엉망진창의 소동들. 그리고 악의 없는 소악당들. 그게 더욱 즐겁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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