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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잘려도,심장에 말뚝이 박혀도 살아남는 뱀파이어 - 『헬싱』

공포물의 캐릭터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존재는 흡혈귀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단지 정신력만으로도 인간을 자신의 노예로 부릴 수 있는 불멸의 존재. ‘피를 빠는 자’의 전설이나 민담은 트란실바니아를 비롯한 전세계에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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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물의 캐릭터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존재는 흡혈귀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단지 정신력만으로도 인간을 자신의 노예로 부릴 수 있는 불멸의 존재. ‘피를 빠는 자’의 전설이나 민담은 트란실바니아를 비롯한 전세계에 전해져왔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모라비아 등 동구권에 가장 많았고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멕시코와 록키 산맥의 인디언들에게도 흡혈귀의 전설이 있었다. 브람 스토커가 고딕 소설『드라큘라』를 통하여 민담과 전설 속의 흡혈귀에게 무한한 생명을 부여한 후 ‘뱀파이어’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에게 접근했다. 해외에서는 흡혈귀를 다룬 소설이 많지만 국내는 주로 영화와 만화를 통하여 소개되었다.

1970년대에는 크리스토퍼 리가 출연한 일련의 드라큘라 영화가 인기를 끌었고,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해외에서 뱀파이어 신드롬을 일으켰던 앤 라이스의 소설 시리즈 <뱀파이어 연대기>의 한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다. 외계에서 온 뱀파이어를 그린 토비 후퍼의 <뱀파이어>, 고대 마야문명의 유적이 뱀파이어의 소굴로 쓰이는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의 <황혼에서 새벽까지>, 햇빛 속을 걸어다니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존 카펜터의 <슬레이어> 등 독특한 개성과 능력 그리고 약점을 지닌 흡혈귀들이 다양한 영화를 통하여 소개되었다. 전세계의 흡혈귀 전설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영화 속 흡혈귀의 모습도 저마다 다르다. 서로 다른 흡혈귀의 모습을 만나는 것도 흡혈귀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한 즐거움이다.

그런 점에서 히라노 코우타의『헬싱』은 고전적이면서도, 파격적이다. 고전적이라는 의미는, 브람 스토커의『드라큘라』의 원형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드라큘라는 거대한 성에 살고 있는 밤의 영주이며, 들개와 박쥐로 변신할 수 있고, 타인을 노려보는 것만으로 그를 조종할 수 있다. 그것은『헬싱』의 주인공인 아카드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면모다. 무엇보다 아카드의 풍모는 ‘고딕’이라는 말에 딱 어울린다. 검은 망토로 둘러싸인 헬싱의 자태는,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잔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아카드의 무기는 고전적인 이빨만이 아니라, ‘란체스터 대성당에 있는 은십자가를 녹여서 만든 13mm 폭열철망탄’을 사용하는 커다란 권총이다. 그는 목을 잘려도, 심장에 말뚝이 박혀도 살아난다. 수백 년을 살아온 아카드는 새로운 뱀파이어들을 질타한다. ‘고귀함도, 신념도, 이성도 없’다고.

뱀파이어를 이용하여 뱀파이어를 죽인다는 설정은『뱀파이어 헌터 D』『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에서도 이미 보인 것이다. 하지만『헬싱』의 아카드는 조금 입장이 다르다. D나 사야는 태생부터가 뱀파이어를 사냥할 운명이었지만 아카드는 그냥 뱀파이어였다. 인간을 사냥하고, 자신의 성안에서 살아가는 뱀파이어 귀족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아카드는 영국 왕립국교 기사단을 관장하는 헬싱가에게 복종하게 된다. 자신의 영지를 모두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여인까지 떠나보낸 후 최강의 뱀파이어 사냥꾼이 된 것이다. 그리고 헬싱이 원하는 모든 것을 파멸시킨다. 그는 괴물이기 때문에. 히라노 코우타는『헬싱』에서 그 ‘폭력성’을 파고든다. “가장 두려운 점은 그 폭력성에 관한 힘이다. 더 슬픈 일은 흡혈귀 자신들이 그 힘을 잘 알고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노력 없이도 그 힘을 얻어 사용하는 폭군이지……. 흡혈귀는 지성을 갖고 있다. 피를 빠는 괴물이지만 최악이라고 할 수 있지”라는 말처럼.

히라노 코우타는『헬싱』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드’하게 그린다. 상황은 극단적이고, 모든 인물들은 광신적이며, 폭력 묘사는 고어의 극한까지 치고 달려간다. 헬싱의 수장인 인테그라는 악마와 싸우는 악마가 되어야만 한다. 특수부대원들을 앞에 두고 아카드는 명령을 요구한다. “살인은 너의 의지야. 명령을 내려, 왕립 3교 기사단 국장 인테그라!” 그 무고한 인간들을 죽이는 것은 자신이지만, 그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아카드는 인테그라를 포함한 모두가 괴물이 되기를 원한다. 한계를 넘고, 체념을 넘어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밀어붙인다. 왕립국교 기사단 통칭 '헬싱‘이 싸우는 대상은 뱀파이어만이 아니다. 영국 국교를 이단이라고 몰아붙이는 바티칸 특무국 제 13과 이스칼리오테 기관과도 힘을 겨뤄야 한다. 이스칼리오테 최고의 암살자인 안데르센 신부는 아카드와 일대 일로 붙어도 막상막하인 ’괴물‘이다. 여기에 그 이상의 집단이 등장한다. 밀레니엄, 히틀러의 제3제국이 비밀리에 조직한 ’괴물‘ 집단이다. 히틀러가 죽은 후에도 그 의지를 받들어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한 공작을 편다. 흡혈귀를 만들고, 좀비를 만들어내면서. 그들의 목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계정복이 아니다. 밀레니엄을 이끄는 '총통 대행'은 “나는 전쟁을 아주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다. 공포의 극한을 안겨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목적이다.

히라노 코우타는『헬싱』의 극단적인 인물과 상황을 무척이나 즐기면서 그려낸다. 공포와 하드고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헬싱』에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카드가 발렌타인 형제와 싸울 때의 그림은 특히 인상적이다. 아카드가 선사하는 어둠의 공포가 적을 덮치고, 물어뜯는 광경의 묘사는 섬뜩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 정도의 묘사가 거듭되면서, 이 장면의 여운이 곧 사라지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바로『헬싱』의 묘미다. 걸작인『베르세르크』는 하드고어한 묘사와 함께,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만화 자체가 거대한 세게의 모든 것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히라노 코우타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너무나 느린 속도로, 거의 1년에 한 권 정도의 속도로 나아가기 때문에 이제 겨우 5권이 나온『헬싱』에는 아직 세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계가 만들어질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캐릭터의 개성과 상황의 드라마틱한 묘사 같은 세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단순한 열정이, 최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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