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짜릿한 청춘 연애물 - 『미유키』

이미 오래 전 만화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미유키』와『일곱빛깔 무지개』가 완결됐다. 완결편인『미유키』 12권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미유키』를 보았을 때는 마지막까지 보지 못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이미 오래 전 만화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미유키』『일곱빛깔 무지개』가 완결됐다. 완결편인『미유키』 12권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미유키』를 보았을 때는 마지막까지 보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만화가게에는 중간 정도까지밖에 없었다. 기억나기로 그때는 제목도 참 황당한 『크로스 로드』라는 해적판으로 나왔었다. 예전에 본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제목에는 ‘H1’ ‘크로스 로드’ 같은 이상한 것이 끼어 있었다. 해적판이었고, 주인공의 이름도 한국어였다. 이제는 ‘터치’라는 제목을 찾은 『H1』은, 근작인『H2』의 전편이라는 의미에서 따온 제목이었다. 황당하기도 해라.『H2』의 H는 히로와 히데오의 이름 첫 자 알파벳에서 따온 것이다.『터치』『H2』는 고교 야구와 연애물이라는 것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주인공인 타츠야를 영어로 표기했을 때 첫 자는 T다. 죽은 동생의 이름은 카즈야고.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가 늘 그렇듯, 인물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캐릭터가 비슷비슷하기는 하다. 그래도『터치』라는 엄연한 제목을 내팽개치고 ‘H1’이라고 한 것은 해도 너무했다.

‘미유키’라는 제목을 버리고, 크로스 로드를 붙인 것은 그럴 만도 하다. 극중 일본 이름도 ‘금다래’ ‘설다래’로 바꾸는 판에, 미유키를 제목으로 쓰기에는 난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 듯한 크로스 로드란 제목을 달았고, 한동안 나는 『크로스 로드』가『미유키』란 것도 모르고 있었다. 투니버스에서『미유키』를 방영할 때, 아, 예전에 본 만환데, 하고 무릎을 치는 정도였다.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작인『미유키』는 이상하게도 스포츠가 끼어들지 않은 순수 연애만화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보면서 서로 소년만화니, 소녀만화니 우길 수 있는 영역에 서 있는 독특한 청춘물이다. 사랑이 중심이지만, 그걸 담아내는 방식으로 주로 스포츠가 쓰인다. 그러면서 일상의 평범한 상황에서, 별 것 아닌 단어에서 포착하는 여운과 소용돌이가 일품이다.

하지만『미유키』에는 스포츠가 없다. 그냥 청춘 연애물이다. 주변 인물 중에도 크게 스포츠에 열광하는 인간은 없다. 마지막에야 등장하는 어릴 적 친구가 축구를 하고, 동생 미유키에게 청혼을 하기는 하지만……. 하여튼『미유키』는 오로지 연애만 파고든다.『미유키』는 두 미유키를 사랑하는 소년 마사토의 이야기다. 하나는 동급생 미유키, 그리고 또 하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재혼으로 동생이 된 미유키다. 동생 미유키는 6년이나 헤어져 살다가 돌아왔고, 마사토와 단 둘이 ‘가정’ 생활을 시작한다. 설마 동생에게 연정을 품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미유키』는 그 수많은 영화와 소설 등에서 반복되었던 바로 그 남매의 사랑 이야기다. 그 애절하지만 단순한 이야기로『미유키』는 무려 12권을 끌어간다.

늘 엇비슷한 이야기이지만,『미유키』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마사토가 그냥 평범한 소년이라는 점이다. 아니 평범 정도가 아니라 공부나 운동도 잘 못하고, 길 가다가 부딪치거나 넘어지기도 잘하는 어리숙한 소년이다. 하지만 마음은 착하고, 무엇보다 헌신적이다.『H2』의 주인공은 야구를 잘 하고,『러프』의 주인공은 수영을 잘한다. 신작『카츠』에서도 권투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터치』의 타츠야는 뭐 하나 잘 하는 것 없었던 마사토 같은 소년이었지만, 동생인 카즈야가 죽은 후 그의 소원을 대신 이루어주기 위해 마운드에 선다. 그리고 갑자기 정상에 오른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그건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H2』의 2루수 야나기가 말하듯, 꿈을 주는 사람들은 선택받은 녀석들인 것이다.

그러나 마사토는 진짜 평범한 소년이다. 그런 소년이 최고의 소녀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도대체 마사토의 미덕이 무엇이기에? 진정한 악인이 없다는 것은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진정한 동화다. 악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주인공에게는……. 마사토는 헌신적일 뿐 아니라, 결코 질투하지 않는다. 잘 생기고, 일본 최고의 축구 스타인 사와다 유이치에게조차 질투심을 갖지 않는다.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사와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다. 되고 싶지만, 될 수 없음을 알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냥 순수하게 부럽고, 그래서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는 것이다. 역시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작 중에서 주인공이 응원단장을 하는 만화가 있다. 그 소년은 말한다. 누군가 힘을 내도록 도와주어서, 그가 꿈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고. 그래서 그는 열심히 응원을 하고, 진정으로 행복해한다. 마사토 역시 그런 소년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에 찬탄하고, 위대한 것을 존경한다. 그리고 열심히 박수를 친다. 아마 두 소녀가 보았던 것도 마사토의 그런 순수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그런 마사토를 두 소녀가 사랑하고, 마사토는 동급생 미유키와 연애를 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 미유키와 있을 때는, 언제나 저 미유키를 생각하게 된다. 『미유키』는 정말 잔잔하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를 그저 충실하게 따라가며 일상적인 사건들을 변주할 뿐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게 또 그의 특기다. 어떻게 보면 아다치의 만화는 모두가 동일한 것을 변주한 작품이다. 심지어 사랑의 형식이나 삼각관계까지도 거의 비슷하다.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다치의 만화는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우리의 삶이란 것 늘 비슷하고, 다른 사람들과 닮아 있기 때문에. 아다치는 그 비슷한 것들 사이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들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잡아낸다. 단편집『숏 프로그램』에 실려 있는 만화들을 보면,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실감할 수 있다.

『일곱빛깔 무지개』『미소라』가 재미없다고 흔히 비판받는 이유도 그것이다.『일곱빛깔 무지개』『미소라』는 아다치 특유의 일상을 그린 만화가 아니라, 황당한 농담으로 마구 어디론가 헤엄쳐가는 만화다. 목적도 없고, 이유도 없다. 나는 그 농담도 즐겁지만, 그걸 강요할 생각은 없다. 아다치의 진심이 청춘 연애물에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청춘 연애물은 언제나 짜릿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미유키』를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한 사실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