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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함께 돌아다니는 마물들 - 『마계학원』

일본문화의 특징 하나는 받아들인 모든 것을 슬며시 융화시킨다는 점이다. 퍼스컴(개인 컴퓨터)이나 바이토(아르바이트)처럼 외래어를 마음대로 변형하여 신조어를 만들기도 하고 불교나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신사에 가서 기원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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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의 특징 하나는 받아들인 모든 것을 슬며시 융화시킨다는 점이다. 퍼스컴(개인 컴퓨터)이나 바이토(아르바이트)처럼 외래어를 마음대로 변형하여 신조어를 만들기도 하고 불교나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신사에 가서 기원을 하기도 한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미래, 안과 밖이 한데 공존하는 형상이 일본사회에서는 너무나 익숙하다. 신기한 신제품이 날마다 등장하는 등 물질문명에서 최첨단을 달리면서도 가장 원시적인 종교인 애니미즘이 뿌리깊이 생활 속에 남아 있는 곳이 일본이다.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전형적인 표본이라 일본을 부르기도 한다.

동과 서,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기묘함은 대중문화에서도 엿보인다. 일반적으로 ‘장르’는 서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장르가 일본에 들어가면 독특한 방식으로 변형된다. 일본 추리소설의 시조인 에도가와 람포는 자신의 이 이름을 자신이 존경하는 애드거 앨런 포의 이름을 따와 만들었다. 에도가와 람포의 추리소설에는 서구적인 ‘추리’의 과정과 함께 일본의 전통적인 공포까지 함께 담겨 있다. 데츠카 오사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저런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서구에서 ‘재패니메이션’이라고 부르는 일본만의 독특한 애니메이션 형식을 개발했다. 일본인에게 서구는 일종의 표준이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는 언제나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재탄생시켰다. 공포소설 역시 그렇다. 할리우드에서도 리메이크한 <링>의 경우처럼 일본의 공포물은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특이한 질감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퇴마물은 유난히 ‘일본적’인 특성이 돋보이는 공포물이다.

일본의 퇴마물은 서구의 공포소설과는 다른 지평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것을 찾자면 홍콩에서 한동안 만들어졌던 <귀타귀>나 강시 영화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서구의 공포영화는 주로 인간의 세계에서는 금지된 악마나 괴물과 싸우는 내용이다. 우연히 주문을 외우거나 금지된 ‘게이트’를 열어 악마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마물이 사는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천녀유혼>에서 음양도사가 말하듯 인간은 양, 귀신은 음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만, 서로의 세계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균형은 미묘하게 유지되지만 어느 순간 한쪽의 힘이 우세해지는 때가 있다. 그 기회를 노려 지구를 장악하려는 마물들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퇴마물의 주요한 내용이다. 요즘에는 미국의 공포물도 <버피 위드 뱀파이어 슬레이어> <엔젤> <챰드Charmed>처럼 인간과 다른 존재의 공존과 대결을 다루는 내용이 많아지고 있다.

일본 공포물 작가들 중에서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작가는 키쿠치 히데유키다. 인기 있는 대중작가이지만, 키쿠치 히데유키를 일본 최고의 공포물 작가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국내에 일본의 정통 공포소설이 출간된 경우는 거의 없다. 키쿠치 히데유키는 <요수도시> <뱀파이어 헌터 D>등 애니메이션의 원작자로 유명하고, 쉽게 읽히는 장점 때문에 그나마 많이 나온 경우다. 그래봐야 <마계도시 블루스><뱀파이어 헌터 D>정도이지만. 키쿠치 히데유키가 원작을 쓴 <요수도시> <마계도시><뱀파이어 헌터 D>는 가장 일본적인 액션장면을 만들어낸다는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모두 감독을 맡았다. 키쿠치 히데유키의 작품이 그만큼 일본적인 스타일임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서구적이라 할 <뱀파이어 헌터 D>도 일본풍으로 변형된 뱀파이어물이다.

키쿠치 히데유키의 작품은 주로 요괴, 요수, 요마 등이 등장하는 퇴마물 또는 ‘호러 판타지’물로 분류할 수 있다. <요수도시>는 인간과 요수 사이에 맺어진 불가침협정을 깨트리고 혼란을 일으키려는 집단과 싸우는 비밀요원의 혈투를 그린 내용이다. <마계도시>는 도쿄의 도심인 신주쿠에 마진(魔震)이 일어나고, 그곳이 요괴들이 출몰하는 기묘한 공간으로 바뀌어버린 후 벌어지는 이야기다. 원제는 <마계도시 신주쿠>. 목검을 사용하는 소년, 마계의 이단자인 병원장 메피스토, 흡혈귀 사야카 그리고 형사가 한 팀으로 구성되어 요마들을 퇴치한다. <뱀파이어 헌터 D>는 아득한 미래의 지구를 뱀파이어가 장악하고 그들을 물리치기 위한 뱀파이어 헌터가 활약한다는 이야기다. 키쿠치 히데유키 원작,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모두 기괴한 설정과 드라마틱한 전개, 잔인하고 선정적인 폭력묘사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키쿠치 히데유키가 스토리를 쓴 만화로는 <마살노트 퇴마침> <마계도시 헌터><마계학원>등이 있다. 그중 <마계학원>은 일본에서 꽤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다른 세계의 도쿄. 학생연합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곳에 전학생이 온다. 전학생이란, 어떤 학교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공식적으로 요청을 하면 어디에선가 찾아오는 해결사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수많은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한다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서쪽에서 왔다는 미스 버진과 맞서 싸우던 전학생은 마침내 모든 문제의 근원인 오사카로 향한다. 그리고 만난 것은 악의 근원인 미국, 외계인의 존재다. <마계학원>은 그리 뛰어난 만화가 아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기는 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면 우왕좌왕하는 기운이 역력하다. 소설에서 보여주던 극적인 묘사나 인물의 세련됨은 사라지고 엽기적이고 돌발적인 상황을 대충 모아놓은 정도가 된다. 워낙 다작의 작가라, 만화 스토리에는 힘을 덜 기울이는 것이 분명하다.

퇴마물에 극단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키쿠치 히데유키 원작의 만화를 굳이 골라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요수도시>와 <뱀파이어 헌터 D>같은 애니메이션은 굳이 골라볼 필요도 있다. 어떤 종류든 액션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크게 머리 쓰지 않고 적당히 폭력적이고 적당히 감상적인 대중소설을 좋아한다면<마계도시 블루스><뱀파이어 헌터 D>는 찾아볼 만하다. 통속적 재미라는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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