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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도 사랑하고 기뻐하며 분노하고 좌절한다 - 『황혼유성군』
얼마 전 70대 노인의 성과 사랑을 그린 <죽어도 좋아>란 영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영화에서 노인들이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 있고, 그 과정에서 성기가 노출된다는 이유로 '제한상영' 등급을 내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70대 노인의 성과 사랑을 그린 <죽어도 좋아>란 영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영화에서 노인들이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 있고, 그 과정에서 성기가 노출된다는 이유로 '제한상영' 등급을 내렸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는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에 '제한상영'이란 '상영불가'나 마찬가지다. 결국 논란 끝에 그 장면을 검게 처리하여 상영을 하는 정도로 타협을 했다. 한국의 실정법하에서 성기의 노출이 금지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라면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크라잉 게임>의 경우 여성으로 등장한 가수가 게이였고, 그가 남성 성기를 노출하는 장면이 검열을 통과한 적이 있다. 만약 그 장면을 자르거나,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다면 영화 전체의 의미가 증발하기 때문이다.(<죽어도 좋아>의 경우는, 직접 보시고 판단하기 바랍니다.)
영화 <죽어도 좋아>의 포스터
성기의 노출 여부가 논란거리의 핵심이긴 했지만, 사실 <죽어도 좋아>의 의미는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죽어도 좋아>는 '노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인 노인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퇴직을 하고, 연금이나 저축으로 생활을 하면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이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유효기간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죽어도 좋아>가 노인의 정사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이유는, 노인의 일상과 즐거움 역시 젊은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파고다 공원에 모여 장기를 두거나, 햇볕을 맞으며 소일하는 것뿐이라고 흔히 생각하는 노인들의 삶 역시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이 파도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는 즐거움과 쾌락이 노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니 중년층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오락을 생각해보자. 영화, 대중음악, 문학 등은 대부분 젊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만화의 경우는 더 심하다. 만화가 최고의 대중문화인 일본에서도 만화를 보는 사람을 은근히 업신여기는 시선 같은 것이 있다. 만화를 보고 자란 중년의 어른들도 만화를 보기는 하지만, 성인만화의 비율이 낮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히로카네 켄시는 『시마 과장』 『라스트 뉴스』 『인간교차점』 등 주로 성인 독자를 위한 만화를 그려온 작가다. 히로카네 켄시는 일본에도 중년을 위한 만화는 거의 없다면서, 40대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만화를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라스트 뉴스』 나 『시마 부장』 도 40대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만화이지만 근작인『황혼유성군』 은 아예 '노인'들을 대부분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색적인 작품이다.
"마흔을 넘기며 많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불타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마치 석양에 사라지는 유성처럼, 마지막 불꽃이 될지도 모른다. 이 열정을 가슴에 품고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황혼유성군이라 부른다." 작가의 말처럼 『황혼유성군』은 40대가 넘은 인물들의, 그러니까 이제는 인생의 황혼을 맞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인간교차점』처럼 옴니버스 스타일로 전개되는 『황혼유성군』의 첫번째 이야기는 '불혹의 별'이다. 대형 은행의 지점장 모리모토는 일본의 여느 가장들처럼 직장에서의 성공을 위하여 앞만 보고 달려온 53세의 남자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계열회사로의 이직을 권유, 즉 명예퇴직을 명령 받는다. 아내와 딸에게 이야기하지만, 아내와 딸은 체면이 깎인다며 딸의 결혼식이 끝나는 3개월까지는 반드시 있으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겠다며. 착잡한 모리모토는 우연히 지하철의 광고를 보고 스위스의 마테호른으로 향한다. 그리고 세이코라는 이름의 40대 여인을 만난다.
70대의 노건축가와 박물관에 근무하는 20대 여인의 플라토닉한 사랑, 70대 노인이 증기탕의 여성에게 한없이 빠져드는 이야기 등이 펼쳐지는 『황혼유성군』은 의미심장할 뿐 아니라 현실의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가장 황당해 보이는 「별나라 공주」는 증기탕에서 일하는 여성과 70대 노인의 사랑이다. 70대 노인은 자신에게 아직 성기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한없이 빨려들고, 20대 여성은 어린 시절 홀로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를 배신하고 결국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회한을 풀려고 한다. 여기에 남자보다 5살 많은 연상의 아내가 있다. 그녀는 원래 형수의 아내였지만, 형이 죽으면서 일본의 전통적인 풍습대로 동생과 다시 결혼을 한 것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희생으로 자신의 행복이 있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들의 사랑은 과연 어떤 결말로 흘러갈까.
『시마 과장』의 작가 히로카네 켄시
『황혼유성군』의 결말 대부분이 사랑을 향해 가지만, 그중에서도 「별나라 공주」는 무척 독특하다. 수입은 했지만 아직 개봉은 하지 못한 일본영화 <허쉬>에서 한 30대의 여성은 게이인 남자에게 아이를 낳자고 제안한다. 정사를 하자는 것은 아니고, 그 남자의 정자로 아이를 낳고 싶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묘한 가정이 만들어진다. 게이 남자 커플과 한 여성 그리고 아기. 그 안에 '결혼' 같은 것은 없다. 「별나라 공주」에서도 <허쉬> 이상으로 이상한 가정이 만들어진다. 황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식의 '가족'도 가능하다고 열린 생각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 일본의 가족 제도는 지금 엄청난 혼란과 변화의 과정에 들어가 있다. 『황혼유성군』의 가족 대부분이 분열과 해체의 과정을 거듭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황혼유성군』이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 감정이 여느 만화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정서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세상을 걸어온 사람들의, 약간 피로한 듯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놓으려 하지 않는 끈질긴 젊음이 『황혼유성군』에는 드러난다. 그 희미한 젊음에 공감이 가는 나이라면 『황혼유성군』은 한번쯤 필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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