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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러 ‘가는’ 행위에 관한 즐거운 추억들

음식의 맛이 아닌, 먹으러 '가는' 소풍의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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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맛집은 있게 마련입니다. 정말 유명세를 제대로 타서 주요 방송사 무슨 코너에 소개되었다는 현수막이 치렁치렁한 집부터, 어디 꼬불꼬불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서도 간판조차 없어 알음알음으로 찾아가야만 맛볼 수 있는 집까지…. 그런 집에 하루 마음이 동해서 가볼라치면 또 혼자서는 맛이 나질 않습니다.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우르르 몰려가거나, 아니면 단둘이서 호젓하게 가거나… 여하튼 혼자 맛난 것 먹으러 가는 건 좀 쑥스럽기도 하거니와 음식 맛도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맛난 것 먹으러 가는 즐거운 길에 흥이 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석제의 산문집 『소풍』은 작가가 그동안 살면서 겪어온 ‘맛’에 관한 산문이지만,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음식 그 자체뿐 아니라 음식을 먹으러 가는 과정, 즉, 지인들과 함께 먹으러 가기 시작해서부터 먹는 과정, 또 먹고 나서의 이야기까지를 다채롭게 다룬 말 그대로의 ‘소풍’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뭔가 즐겁고 흥이 나는 맛난 것 먹으러 가는 길에 관한 작가의 경험들이 ‘솔찬히’ 묻어납니다. “날도 더운데 냉면이나 한 그릇 먹으러 가지~”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이 한 마디에서, 성석제는 ‘가지~’에 방점을 찍습니다. ‘먹다’라는 단일동사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은 ‘먹으러 가다’라는 혼합동사입니다. ‘먹으러 가다’에서 가장 큰 목적은 ‘먹다’이지만,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가다’에 실려 있습니다. 집에 오는 길, 노점에서 팔던 호떡 냄새가 계속 생각나 아내의 손을 잡아끌고 호떡 하나 사먹으러 나가는 순간이 소풍일 것입니다. 굳이 먼 거리의 야외로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함께 좋은 음식, 좋은 향취를 즐기러 일상의 시간을 잠시 벗어나 ‘먹으러 가는’ 길이 바로 소풍입니다. 소풍은 그렇게 특별한 행사도 아니며, 그렇다고 늘 먹는 ‘그 나물에 그 밥’도 아닌, 일상에서 살짝만 벗어나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삶의 순간입니다. 책에 수록된 많은 에피소드는 사실 요즘에는 쉽게 얻기 어려운 정서이기도 합니다. 에피소드들에 등장하는 많은 음식과 음식점은 사실 요란하게 유명한 집보다는 정말 특정 소수만이 알고 있을 법한 무명의 집이 더 많은데, 요즘처럼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이름을 알린 뒤 사업을 크게 키운 대형 음식점이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 맛집의 대표주자격이 된 이 시대에 책에 등장하는 집들처럼 작고 알려지지 않은 맛은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작가 스스로가 알려주기를 거부합니다. 대략 한 사십여 개의 음식 에피소드 중에 작가가 직접 가게 이름을 거론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모 국도변을 지나가다가 만약 ㅊㅈ식당이라는 간판을 봤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이런 식으로 독자를 약 올리기만 할 뿐, 어느 집에서 실제로 그 맛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절대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 점은 일반적인 식도락 기행문과 음식을 주제로 한 문학과의 경계를 확실히 나누는 부분이며, 실제로 작가가 겪었던 맛을 독자가 쫓아가서 경험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작가의 ‘소풍’이 정말 자신만의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혹시라도 이름이 책에 그대로 나올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 “작가 성석제도 격찬하고 간 그 맛!” 같은 요란한 현수막이 맛집 고유의 맛을 망칠 수 있는 사태를 방지하기도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집의 무슨 음식이 맛있다, 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작가가 무슨 음식을 맛보았느냐를 읽을 것이 아니라, 작가가 무엇을 먹으러 가면서, 혹은 먹으면서 어떤 느낌을 겪느냐가 이 책의 감상 포인트입니다. 서두에도 이야기했듯이 누구나 자신만의 맛집이 있고 추억이 있습니다. 비 오는 어느 여름날, 정말 맛있다며 여자친구가 손 붙잡고 데려갔던 어느 학교 앞 허름한 떡볶이집의 어묵국물맛, 주머닛돈 다 털어서 허기를 달래려고 큰 빵을 샀는데 먹어보니 공갈빵(속이 텅 빈 채 커다랗게 만든 빵)이었던 기억, 이런 것들이 다 자신만의 소풍이며, 굳이 작가가 겪었던 맛을 반복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작가의 그러한 의도는 에피소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햄버거에 관한 소풍 기억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에는 Hicke Burger라는 음식이 등장합니다. 작가가 미국 여행 중에 국도변에서 만난 촌스럽고 자그마한 식당에서는 Hicke Burger라는 독특한 음식을 팔았는데, 작가는 친구와 함께 Hicke가 ‘히케’냐 ‘하이키’냐를 두고 투덕대는데, 알고 보니 Chcken Burger의 간판이 낡아서 C와 N이 떨어져서 Hicke Burger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작가와 그의 동행은 Hicke Burger 두 개를 사들고는 ‘세상에 이런 맛이 안 알려졌다니’ 하면서 감탄했는데 알고 보니 치킨버거였다는 이야기 속에서 결국 음식보다는 그 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맛과 추억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상이기에 특별히 귀하고 맛깔스러운 진미에 대한 이야기도 별로 없습니다. 막걸리, 라면, 냉면, 김밥, 생태찌개처럼 일상에서 가볍게 맛볼 수 있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심지어는 라면이 아닌 라면 수프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실려 있어 이야깃거리 자체는 별반 대단한 게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음식일수록 삶의 맛이 구수하게 퍼지는 이야기가 들어있고, 그런 특별하지 않은 우리네 이야기가 작가의 손을 거쳐 더욱 맛깔 돋우는 글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이 책의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식은 오감을 생짜 그대로 자극하는 본능적 특질 때문에 다른 예술 장르보다 직접적이고 매혹적입니다. 요리할 때 들리는 ‘지글지글’ 소리와 냄새, 재료와 양념이 어우러진 먹음직한 색감, 한입 깨물었을 때의 맛과 입안 가득히 채우는 촉감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인간의 본능을 건드리기에 많은 작품이 음식을 소재로 인생을 펼쳐왔습니다. 지난주 채널 포커스에 소개되었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비롯해 영화 <식신>, 만화 『식객』에서부터 드라마 <대장금>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예술이 음식을 소재로 하여 대중을 사로잡은 바 있습니다. 특히 문학의 경우는 가장 본능에 가까운 음식 이야기를 가장 관념적으로 풀어내기에 그 표현과 감상의 폭이 남다르며, ‘글맛’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평소에도 푸짐한 이야기보따리꾼을 연상케 하는 글 솜씨를 보여 온 작가 성석제의 ‘먹으러 다닌 이야기’는 글맛에 굶주릴 듯한 초여름쯤의 독자들을 설레게 할 만한 책이 될 듯합니다. 마무리를 짓는 저도 살짝 배가 고파집니다. ------------------------------ 작가 성석제는 누구? 1960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하여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문학사상』(1986)에 시를,『문학동네』(1995)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새가 되었네』『재미나는 인생』『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호랑이를 봤다』『홀림』『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등과 장편소설『왕을 찾아서』『궁전의 새』『순정』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1997), 동서문학상, 이효석문학상(2001), 동인문학상(2002), 현대문학상, 오영수문학상(2005) 등을 수상했다. ------------------------------ 산문집 『소풍』은 어떤 책?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의 작가, 성석제의 신작 산문집. 음식과 맛에 얽힌 추억 속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건져 올린 맛깔스러운 책이다. 저자는 음식을 만들고 먹고 나누고 기억하는 행위가 곧 일상을 떠나 마음의 고삐를 풀어놓고 한가로운 순간을 음미하는 소풍과 같다고 말한다.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며 오감이 총동원되는 총체예술”이며, “필연코 한 개인의 본질적인 조건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다”는 지론은 곧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사람살이의 다양한 세목을 되살려온 성석제 소설세계와 상통한다. 십수 년간 각종 매체에 연재하며 갖가지 음식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낸 작업이 ‘음식의 맛, 사람의 맛, 세상의 맛’을 함께 음미하게 하는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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