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부엌이란 공간은 예전엔 정말 유순한 형태의 감옥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말에도 떡하니 ‘부엌데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전근대 여성의 생활공간이 얼마나 한정되어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언어적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사노동이라는 특정 부분에 자신의 일생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갔던 많은 여성들의 삶은 가사노동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하루 세 끼의 식사를 담당하던 부엌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사일 중에 가장 반복적이며 고된 부엌의 노동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장 창조적이고 예술성이 가득한 노동이기도 한 이중성을 띠며, 경우에 따라서는 부엌일 자체가 여성에게 무한한 힘을 실어주는 상상도 가능합니다. 그 상상을 소설로 풀어낸 경우가 오늘 소개할 책,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티타는 홀어머니가 키우는 딸부잣집의 막내딸입니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막내딸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집안일을 도맡아 어머니를 봉양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티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 페드로가 있고 둘은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집안의 전통과 완고한 어머니의 반대로 일은 이상하게 꼬여 갑니다. 티타에게 청혼하기 위해 티타의 어머니 엘레나를 찾아간 페드로는 티타 대신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라는 엘레나의 말에 “평생을 티타 옆에서 살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동의하고 맙니다. 티타는 결국 사랑하는 남자가 형부가 되는 결혼식을 위해 웨딩 케이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티타의 슬픔이 가득 담긴 눈물은 케이크 반죽에 방울방울 떨어지면서 케이크를 먹은 이들이 심한 구토를 하게 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이렇게 시작되는 티타의 삶을 요리를 테마로 삼아 풀어갑니다. 전체 장의 구성은 총 12장으로, 장의 제목은 1월 ‘크리스마스 파이’부터 ‘차벨라 웨딩 케이크’, ‘장미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등을 거쳐 12월의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까지 모두 요리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 설명과 실제로 티타가 요리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각 장의 첫머리는 어느새 티타의 이야기를 슬그머니 끌어내면서 전체 흐름을 맛깔스럽게 가져가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티타의 요리는 단순한 요리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남미 특유의 다양한 요리재료가 갖는 색감과 향취를 고스란히 살려내면서 전체 소설에 다양한 감각의 재미를 부여하고 마술과 환상의 요소를 얹어, 먹는 요리를 넘어선 감정표현의 요리로 거듭납니다. 티타가 연인 페드로의 결혼식을 위해 만들던 웨딩 케이크에는 그녀의 슬픔이 담긴 눈물이 섞여 먹는 이들에게 심한 구토감을 남기고, 티타가 한때 연인이었던 형부를 위해 만든 메추리 요리에 그녀의 피가 섞이면서 먹는 이들이 강렬한 성적 충동을 느끼게 하여 둘째 언니 헤르트루디스로 하여금 혁명군 장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게까지도 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총 열한 가지의 요리(6월의 레시피는 요리가 아니라 성냥 머리를 만드는 반죽 설명입니다) 는 하나씩 마술을 부리면서 소설의 전개를 이끌어나갑니다. 요리 하나 때문에 욕정이 발동해 집을 나가고, 요리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기운을 느끼며, 심지어 주인공이 태어날 때 하도 울어서 눈물에 떠내려와 엄마 뱃속에서 나온다는 독특한 설정들은 중남미 소설의 특징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이 잘 드러나는 요소입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동화적 상상이 중남미 소설 속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여러 마술적 상황도 실제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이지만, 자연스럽게 소설 속의 전개를 이끌어내면서 티타와 페드로의 감정을 설명하고 주변 인물들의 행동을 제어합니다. 이러한 마술적 전개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갖는 또 하나의 문학적 매력으로, 특히 요리와 마술이 어우러진 독특한 구성은 조화를 이룬 요리재료와 양념과도 같은 궁합을 과시합니다. 남미 특유의 향토색이 진하게 배어나는 요리라는 테마와 마술적 리얼리즘의 도입을 통해, 소설은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중심 테마, 즉 여성의 삶과 그 억압의 역사, 그리고 해방의 과정을 독특한 분위기로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서두에도 이야기한 바 있듯이, 부엌이라는 공간은 여성에게 억압의 장소로 기능 해 왔습니다. 특히 주인공 티타의 경우는 그 부엌 외에도 가문의 전통이라는 일종의 인습 속에 갇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오로지 부엌에서 일생을 살아야 하는, 전근대의 억압 받는 대표적 여성상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녀의 풍부한 감성과 지혜는 가사노동 중 예술에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요리라는 분야를 통해 빛을 발하고, 그 맛과 향으로 먹는 이들을 변화시키는 마술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자신을 가두는 제약을 그 틀 안에서 빚어내는 새로운 힘을 통해 극복하고 자기 자신의 온전한 자유를 향해 부드럽게 걸어가는 길을, 소설은 요리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천천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주인공 티타 개인의 여성상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마 엘레나와 그녀의 딸들이 이루고 있는 가정은 분명 여성 중심의 가정임을 말하며, 가문의 전통인 ‘막내딸이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보필하는 것’ 또한 소설 속의 가정이 모계 사회임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요소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성적인 욕망이나 움직임 또한 철저하게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소설 전체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주인공과 그 가족의 변두리 인물(연인, 연적, 강간범 등)로 부수적인 역에 머무릅니다. 일상적인 소설의 남녀 관계를 돌이켜 볼 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러한 여성중심의 시각은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성정치적으로 매우 색다른 느낌을 던져 줍니다. 특히 음식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여성의 삶을 그려낸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먹는 것은 인간의 욕망 중에서도 가장 크고 원초적이지만, 그 욕망을 채워주는 부엌이라는 장소는 여성의 욕망을 억압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제였습니다. 그 억압된 장소에서 타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아오던 한 여성이 그 굴레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신의 욕망을 자유롭게 만끽하며 맞이하는 결말은 소재와 주제가 잘 융화되어 독자에게 살아있는 맛 그대로의 감동을 전해주는 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제도와 전통이 억압했던, 페드로를 향한 티타의 사랑은 수많은 요리와 우여곡절을 거치며 마침내 결말에는 빙 둘러온 오랜 세월만큼이나 짜릿한 황홀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티타의 사랑과 욕망을 가로막던 모든 사람과 제도가 사라지고, 그녀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게 되는 순간은 마치 성냥이 타오르듯 황홀하고도 짧은 한순간으로 사라집니다. 요리도, 사랑도, 욕망도, 불꽃도 모두 한순간의 경험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요리도 그 맛을 레코드에 기록해 둘 수 없고, 어떤 매체도 사랑의 기쁨을 직접적으로 되새겨줄 수 없듯이 이 모든 감정과 감각은 찰나적입니다. 그러나 그 한순간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또한 인간이며, 그조차도 억압받아왔던 것이 여성의 역사겠지요. 아마도 문학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기는 것은 그 남길 수 없는 찰나의 감정을 글로써 이만큼이나마 전달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어떤 책?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원작소설. 사랑과 성을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경쾌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멕시코 요리의 화려한 색깔과 달콤한 냄새가 시종일관 독자의 오감을 자극한다. 인간의 욕망을 잘 차려진 요리에 비유한, 밝고 생동감 넘치는 소설. 1910년부터 1933년 무렵의 멕시코 시골 마을. 주인공 티타는 엄하고 강압적인 어머니 마마 엘레나의 세 딸 중 막내딸인데, 데 라 가르사 가문의 전통에 따르면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티타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페드로를 처음 보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저자는 두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을 요리책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빌려서 에로틱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 년 열두 달을 나타내는 열두 개의 장마다 각각 ‘장미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차벨라 웨딩 케이크’ 같은 요리를 정해 놓고, 요리 만드는 법과 티타의 사랑 이야기를 절묘하게 섞어서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 저자 라우라 에스키벨은 누구? 1950년 9월 30일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원래 직업은 교사였으나 아동극 워크숍을 하면서 마땅한 대본이 없음을 느끼고 스스로 극본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어서 아동극 대본뿐 아니라 아동소설, 영화 시나리오까지 그 영역을 넓히게 된다. 장편소설로서는 처녀작인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역시 처음에는 시나리오로 구상하였으나, 영화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 따라 소설로 완성한다. 1989년에 발표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33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45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그중 미국 내에서만 2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1년 이상 베스트셀러에 머물렀다. 이어서 1994년에는 원작인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미국출판인협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책’ 상을 받았다. 작품으로는 『사랑의 법칙 La ley del amor』(1997), 『불가사리 Estrellita marinera』(1999), 『휘몰아친 사랑 Tan veloz como el deseo』(2001), 『마음이 없는 이성의 소리 El libro de las emociones: son de la razon sin corazon』(2002) 등이 있다.
<라우라 에스키벨> 저/<권미선> 역9,000원(10% + 5%)
1910년부터 1933년 무렵의 멕시코 시골에 사는 데 라 가르사 가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티타는 엄하고 강압적인 어머니 마마 엘레나의 세 딸 중 막내딸인데, 데 라 가르사 가문의 전통에 따르면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티타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페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