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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돌아가는 세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한박자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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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잠시라도 뒤쳐지면 쫓아갈수없네~ 나는 챔피언, 내가 가는 길이 세상의 길이 되고 앞서가고 싶다면 나를 따라와라~’ 이 노래를 기억하십니까? 슈퍼스타 에릭이 나와서 부르며 빠른 인터넷을 광고하던 CM이었죠. 정말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반드시 앞서가야만 하고, 다들 그렇게 달려가기에 잠깐 한눈팔면 뒤쳐져 버리는 세상입니다. 그 최전선에서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는 에릭의 모습, 저는 거기서 ‘회색 인간’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며 마무리를 지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등장해서 다시금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미하엘 엔데의 장편동화 『모모』에는 회색 인간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평화로운 마을에 들어와서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계산력으로 당신이 시간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고, 사람들에게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삶을 통해 시간을 절약할 것을 종용하지요. 세상은 그들 덕분에 점점 빨라지고,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을 버리게 됩니다. 예컨대, 꽃에 물을 주거나 천천히 점심을 들면서 수다 떨기 같은 일들 말이지요. 회색 인간들은 사람들을 그렇게 시간에 목매도록 만든 뒤, 사람들이 절약한 시간을 몰래 말려 담배로 말아 피우며 삶을 연명합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은 잘 모르죠. 다만 열심히 시간을 아낄 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왜 시간을 아껴야 하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빠른 시간 속에 몰두합니다. 나이 드신 어머님과 이야기하는 것도 반으로 줄이고, 자기 술집에 싸구려 와인 한잔 시키고 죽치고 앉아 떠들던 사람들을 내쫓습니다. 에릭도 우리더러 달려가라고 합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니, 뒤쳐지지 않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그의 노래 속에는 회색인간의 그것처럼 ‘왜?’가 없습니다. 왜 우리는 시간을 아껴가며 빠르게 돌아가야 할까? 제가 에릭이 미워서 이렇게 툴툴거리는 건 아닙니다. 그가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세상이 다 그렇게 달리고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도 우리가 빠른 인터넷을 위해 그 회사제품을 쓰면 돈을 버는 논리로 밥 먹고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회색인간과 같은 거죠) 주인공 모모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바람에 모모에게 시간절약을 홍보하러 왔던 회색 인간이 그만 회색인간의 비밀을 술술 풀어놓게 됩니다. 시간 절약의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면 좋을 게 없는 관계로 모모는 위협을 받게 되고, 이를 지켜보던 시간의 관리자 호라 박사가 자신의 아지트로 모모를 데려옵니다. 그리고 남의 시간을 좀먹는 ‘못된’ 회색 인간들을 무찌르기 위한 모모의 모험이 시작되지요. 미하엘 엔데의 이 동화는 평화로운 아이들 이야기이지만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함축으로 현대 사회 자체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회색 인간의 복장이 타이즈나 쫄쫄이가 아닌 정장 차림이고, 그들의 외모가 영업사원 같다는 이야기는 시간 절약이 자본주의 체제에 기인함을 의미합니다. 중절모자에 회색 정장, 대머리에 시가를 문 모습은 전형적인 산업자본가의 풍자 캐리커처죠. 실제로 책 속에서 그들의 모습도 임노동자의 업무외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효율성을 생산량에 집약시켜 남는 시간을 ‘착취’ 하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언급된 자본가-노동자 간의 계급구조와 일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모와 그의 친구들은 산업 사회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죠. 지지는 허풍으로 관광객들 ‘삥’이나 뜯는 한심한 백수고, 도로청소부 베포는 도심 극빈층입니다. 모모는 부모도 없고 집도 절도 없는 부랑아구요. 다른 사람들이 회색 인간이 외치는 ‘절약과 효율의 사회’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순응해 가고 있을 때 이들은 아예 대책 없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시간을 절약하라구요? 지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좀 봐, 어떤 모습인지. 약간의 편안함 때문에 삶과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들 말이야! 아니, 나는 거기에 끼지 않겠어, 끼지 않고 말고. 아무리 지금 내가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이 없더라도… 지지는 어디까지나 지지야!” …물론 지지는 나중에 지로라모라는 예명을 달고 절약과 효율의 사회에 동참하긴 합니다.. 어쨌든 이후의 스토리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결국 모모는 회색 인간들의 추격을 물리치고 호라 박사가 잠시 시간을 멈춘 틈을 타 회색인간의 생명줄인 시간저장 창고의 문을 열어버립니다. 그 동안 모아둔 시간의 꽃이 모두 금고 밖으로 날아가 버리면서 회색 인간들은 하나 둘씩 서로의 시간 담배를 빼앗아 피우며 버티다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사람들은 다시 빼앗겼던 자신의 잉여 시간을 되찾게 되지요. 그렇게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은 다시 제대로 숨을 고르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일상의 편안함에 다시 안주합니다. 모모는 1970년에 처음 발표된 소설이고, 80년대에 영화화되었습니다. 이미 그 시절에도 국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불러일으켰던 내용이 21세기에 와서 다시 한번 붐을 일으켰습니다. 단지 최고의 인기 드라마에 자주 삽입된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7-80년대에 어린 시절을 겪으며 모모를 한번쯤 접했던 이들이 이제는 아이의 부모님 세대가 되었고, 우연히 드라마에서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를 다시 보게 되자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 저책.. 참 좋은 책이었어…’. 모모가 많은 교훈과 풍부한 감동을 주지 못한 책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 읽었던 한 권의 동화가 이제 어른의 나이로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세상의 아픔을 그대로 재현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또하나의 향수일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갈수록 빨라지는 정신 없는 세상 속에서 모모는 영원히 사람들 가슴 속의 고전으로 남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얼마전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제작된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프로가 되기 위해 다들 달려가지만 왜 프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무도 모르는 세상. 그 세상은 에릭이 노래하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과 다르지 않으며, 회색 인간이 종용했던 절약된 시간의 세상과 동일합니다. 『모모』『삼미슈퍼스타즈.....』, 한박자 천천히 가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두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 어쩌면 우리 사회가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뒤돌아보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모모』는 어떤 책?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빼앗아가는 회색 신사집단, 시간을 저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강팍해지고 피폐해지는 사람들, 그리고 모모. 이 책은 아이들에게는 그들의 마음으로 읽히고, 어른들에게는 또 그 나름의 감동으로 읽히는 아주 특별한 동화이다. 시간은 삶이고 삶은 우리 마음 속에 깃들어 있다는 메시지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나면 삶이 보다 더 풍족해진다.

--------------------------------------------- 미하일 엔데는 어떤 사람? 남부 독일에서 태어났다. 1960년에 첫 작품 『기관차 대여행』을 출간하고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70년엔 『모모』를, 1979년엔 『끝없는 이야기』를 출간함으로써 어린이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다. 엔데는 이 두 소설에서 인간과 생태 파국을 초래하는 현대 문명 사회의 숙명적인 허점을 비판하고, 기적과 신비와 온기로 가득 찬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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