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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다큐멘터리의 생생함이 묻어나오는 책

책으로 읽는 다큐멘터리 어드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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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바보상자라는 별명을 달고 사는 천덕꾸러기이긴 하지만, 산뜻한 정보와 흥미로운 볼거리를 동시에 제공해서 새로운 교육의 장이라고 찬사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 찬사 속에 사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죠. 누구나 즐겨보는 동물의 왕국 시리즈부터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인물과 유적을 찾아나서는 다큐멘터리까지 정말 다양한 정보와 재미가 공존하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무언가 신비스러운 사건과 역사에 접근할 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빛을 발합니다. 잊혀진 문명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전문가들이 랜드로버를 타고 사막을 횡단할 때는 마치 그 뒷좌석에 앉은 양 저 또한 티벳의 모래바람을 혼자 음미하기도 합니다. 여기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 든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죠. 이집트, 마야, 인도, 아랍 등 우리에게 신비롭고도 흥미로운 역사 속의 문명들이 사용했던 의술과 약초들을 소개하는 책이긴 하지만, 그 추적 방식이 무척이나 남다릅니다. 딱딱한 약리학이나 생리학이 아닌 일종의 기행문과도 같은 방식이라는 거죠. 각각의 단락은 담당 전문가가 각자 쓴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글쓴이는 자신의 연구를 정리해서 결과만 모은 것이 아니라, 그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마치 TV의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그 과정처럼요. 고대의 지혜들은 언제나 신비롭고 아득한 무언가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에 그 맥이 끊어진 문명들의 경우 우리에게는 마치 마법의 시대와도 같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지요. 그런 신비로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문이 특히 그들 문명 중에서도 각종 의식과 주술, 그리고 치료술입니다. (이는 보편화된 서구 문명에서도 연금술과 같은 부분이 지금까지도 판타지 소설의 주요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 신비로운 고대 문명의 약초 세계를 학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탐구한 과정과 결과를 현장의 발자국 소리까지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약초학이 어땠는지를 연구하는 1장의 내용은 유명한 투탄카멘 왕 미이라의 발굴 현장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왕의 코에서는 후추 알갱이가 발견되었는데, 도대체 이 후추 알갱이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미이라의 DNA를 분석해서 유전적 병원을 찾아보고, 왕의 관에 놓여졌던 메마른 꽃다발을 살아있는 식물로 찾아내 재구성해 보고 무언가 약리작용이 있지 않나 탐구해 봅니다. 물론 유명한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상형문자) 속에서도 증거를 찾으려 애를 씁니다. 치료 장면이나 약초가 그려진 내용들 속에서 발견한 과거의 약초가 현재도 자라는지를 확인해보고, 직접 현대 이집트의 재래 약초시장을 돌아다니며 물어보고 만져보며, 전승되는 재래식 치료법의 달인들로부터 그들만의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합니다. 재래 시장에서 작가는 아직까지도 민간 요법으로 처방되고 있는 고대 이집트 당시의 약초를 발견하고 환희로 가득차기까지 합니다. 이쯤 되면 일반적인 역사, 의학물은 아닌 것이죠. 고대의 치료지식을 복원하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은 비단 이집트에만 국한되진 않습니다. ‘아유르베다’라는 방대한 치료지식의 전승으로 유명한 인도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고대의 지식들을 재현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현재까지 시골에서 강력한 치료술로 인정받는 인도의 전승 병원을 찾아 그들이 현재 처방하는 약재들을 살펴보고, 문헌상에 남아있는 고대 약초와 비교해 보며, 실제 약초의 현대적 약리까지도 검토합니다. 마야 문명의 약초 지식 속에서는 다양한 환각제와 주술용 약초의 효능을 발견하고, 신화 속에 등장하던 약초들이 실제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약초 뿐 아니라,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던 풍습으로부터 발달한 해부학 개념이라던가 왕의 건강을 위해 도입된 사우나실의 흔적 같은 문명의 전반적인 모습을 풍부한 사진과 함께 보여줍니다. ‘아랍’ 편에서는 사실상 서구 근대의학의 단초를 마련해 주었던 아랍의 발달된 의술과 약제술, 당시 사회의 치료 시스템 작동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의학자, 약리학자, 병리학자, 고고학자 등 다양한 전공으로 구성된 필진들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나, 고대 문명의 역사 속에서 약학과 치료술에 대한 연구가 문명 전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얼마나 소중한지를 문맥 속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치료술은 지금처럼 의학이라는 분과 학문으로서 형성되기보다는, 주술과 제례 등의 정신적 영역과 함께 하면서 정치-종교-치료의 일체화를 이루고 있었고, 그렇기에 고대의 지식은 치료술과 치료술을 포함한 당대의 문화영역 전반을 아우르는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탐구 과정은 단지 약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고대 문명이 당시 가졌던 정신세계 전반을 큰 맥락에서 읽어 나가고, 그것이 치료술이라는 조금은 신비로운 분야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 봅니다. 결과적으로 치료술을 통해 당시의 고대 문명이 어떤 모습을 했는지가 역사책보다도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인류가 실질적으로 완치할 수 있는 병은 현대 의학으로도 30가지를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 속에서 치료법은 끊임없이 진전해 왔고, 최근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 발표 이후 일어났던 신드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치료술은 인류의 기술과 문명 진보에서 최일선에 자리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약학의 진보사를 다룬 것이 아니라, 각 문명이 가졌던 최고의 기술과 정신을 실제 유적과 물질적 단서들로부터 추론해 나가는 새로운 개념의 역사서입니다. 상형문자 탐구, 미라로부터의 표본검사와 같은 추리적 요소부터 이집트, 마야, 인도 등 다양한 국가들의 전통양식, 첨단 실험실의 검사법까지 경계없는 분야를 넘나들며 고대 지식의 재현을 위해 뛰는 학자들의 숨가쁜 발길을 풍부한 사진자료와 흥미로운 글쓰기 속에서 함께 하고나면 마치 휴가로 시공간을 초월해 피라미드와 타지마할을 누비고 온 듯한 즐거움에 휩싸여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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