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내 인생의 특별한 책
채널예스 담당자 님과 통화를 했다. "꼭 한 권이어야 하나요?" "아니요" 아, 안도의 한숨. 나 같이 이것 저것 좋아하는 게 많은 P형(주: MBTI라는 성격 유형에 P형과 J형의 구분이 있는데 P형은 일을 시작하길 좋아하고 J는 일을 마치길 좋아한다 -- 당연 P형의 책상이 더 어지럽고 이것 저것 건들기 좋아한다) 사람에게 "가장" 좋아하는 걸 골라달라고 하면 그만큼 고통스러운 게 없다.
전산학의 노벨상, 튜링상(Turing Award)을 수상한 컴퓨터 영웅 앨런 케이(Alan Kay)에게 누가 부탁했단다. 책 10여권만 추천해 주세요. 앨런 답하기를, "10여권은 어렵소. 나는 일 년에 300권이 넘는 책을 읽고, 논픽션만 집에 일만권이 넘소이다. 수백권 이하로 추리기는 참으로 어렵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 목록의 일부를 공개합니다." 본인이 비록 다독하는 축에 끼인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반대로 다독하지 말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앨런 케이의 목록에서 본인이 읽은 책은 30여권도 채 못된다. 앨런 케이처럼 지식의 각 분야를 두루 훑을 수 있는 추천 목록을 보여드리기에는 본인의 내공이 딸린다. 그래서 약간 꾀를 부려서 좀 색다른 측면에서 책 선정을 해볼 셈이다.
책은 재미있다
가장 먼저 소개할 책은 『서유기』이다. 에이 김샌다. 뭐야 이거. 여기저기 야유가 들려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필자 마음인걸.
본인은 나름 모범생으로 초등학교를 다녔다. 수업시간에 딴 짓했던 기억은 없다. 특히나 교과서 속에 이상한 책을 숨겨서 읽는다는가 하는 짓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아, 『서유기』 앞에서는 필자 같은 모범생도 무너져버렸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인가 그랬다. 학급 문고에 『서유기』가 꽂혀있었다. 『서유기』는 이미 만화영화와 동화책으로 섭렵을 했던지라 별 관심을 주지 않으려 했는데 스윽 꺼내 후르륵 넘겨보니 "어라 글자가 왜이리 많아?". 작은 글씨가 촘촘히 박힌 문고판이었다. 『서유기』가 이런 책이었다니 하는 놀라움과 호기심이 발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건데 그 책은 완역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화책은 아닌, 어중간한 요약판이었던 것 같다 -- 문고판이라고는 하나 두께가 상당했다. 동화책에서 봤던 내용은 그 책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훨씬 더 많은, 훨씬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다.
무협지를 제외하고 필자가 본 책 중에서 그렇게 중독성이 강하고 재미난 책은 『서유기』 외엔 없다. 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양손으로는 교과서 펼쳐들고 서랍속에 『서유기』를 넣어두고 수업 중에 선생님 몰래 읽을 정도로 말이다.
그 때 느꼈다. 오리지널이 더 재미있다(근래에 서유기 연구회에서 완역본을 냈는데 한 번 사볼 참이다). 그 이후로 비슷한 강도의 재미에 근접한 책은 드물었다. 하나 빼놓고. 미첼 월드롭의 『카오스에서 인공생명으로』란 책이다. 절판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출판되어 나왔다. 산타페 연구소에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여서 복잡계 과학을 빚어내는 이야기이다. 과학이나 수학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복잡계 과학에 매료될 수 있는 책이다.
같은 주제의 책이라도 판이하다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누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방학이라 잠시 집에 내려와 있었다. 대학이란 곳에서 뭘 배우는지 너무도 궁금했던 나는 누나의 대학교과서를 훑어보게 되었다. 그 중 새파란 잉크색의 두꺼운 하드커버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제목이 『대학 물리』(University Physics, 저자는 Sears, Zemansky, Young).
필자는 고등학교 물리 교과서와 수업에 한참 실망하고 있었다. 일단 이해가 안된다. 교과서를 읽어도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명쾌하지가 못하고, "왜" 질문이 꼬리를 문다. 수업 시간은 고교과정 문제풀이력 증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만 같다.
자, 그런데 누나의 교과서를 펼쳐드는 순간, 눈 앞에 광채가 비추었다. 아, 이거였구나. 이래서 그랬구나.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뻔했다. 나를 이해시킨 책이다! 이 교과서는 분명 영어로 되어 있고, 더 두껍고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더 상위과정을 위한 텍스트다. 하지만 더 쉽게, 더 명확히 이해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 『대학 물리』를 나의 규화보전이자 비밀무기로 삼고 싶었다 -- 아쉽게도 누나는 방학이 끝나면서 그 책을 다시 학교로 갖고 가버렸다. 그러다가 누나가 물리학 개론을 "졸업"했고, 이 잉크색 책은 내 차지가 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 책은 내 방 서가에 고이 모셔있다. 지금 눈으로 보면 그리 특출난 물리학 개론서가 아니지만 필자에게는 파인만 물리학 강의록만큼이나 의미가 있다.
그 때 내가 처절히 느낀 것은 같은 주제의 책이라도 그 질에 있어서는 정말 판이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해가 안되면 오히려 상급수준의 책을 보는 독특한 전략이다. 이해가 안되는 것이 정보의 과다가 아니라 오히려 부족 때문일수도 있다는 발상이다.
나는 그 때 이후로 읽다가 도무지 이해가 안되거나 재미가 없으면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을 찾아든다. 그러고나서 다시 원래 책으로 돌아오면 훨씬 쉽게 이해가 된다 -- 심지어는 오류까지 찾을 수 있기도 하다.
책은 독법에 따라 가치가 변한다
대학 수업을 들으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간혹 해당 대학출판사에서 출판된 책들을 교과서로 삼는 경우가 있다. 딱 그 수업을 위해 만든 책이고, 여기 저기서, 누가 쓴 글인지도 모를 글들을 모아 만든 사례를 많이 보았다.
내가 들은 교양 철학 수업 교과서가 학교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당연히 교과서나 수업에 대한 기대감은 바닥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수업을 내가 대학교에서 들은 수많은 수업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넣는다. 왜?
담당 교수는 칸트 철학을 전공하신 박영선 교수님이셨다. 그 분은 독특한 숙제를 매주 내주셨다. 일주일에 두시간 있는 수업을 위해 숙제는 오직 한가지. 다음 시간에 다룰 챕터를 미리 읽고 질문을 두어가지 적어오라는 것. 뭐 그정도야.
하지만 신기한 현상을 목격했다. 내가 책을 읽는 태도가 바뀌는 것이다. 허접한 교과서 따위를 읽는데 이렇게 온 정신을 집중하다니! 매주 수업이 있기 전날 밤에는 대략 2시간 정도를 따로 비워놓았다. 다음날 할 챕터를 집중해서 읽고 의문나는 점, 논박할 대목 등을 집어낸다. 나는 몰아지경 속에서 글자를 하나씩 씹어 먹으면서 책을 읽었다. 내 뇌에서는 분명 알파파가 강하게 발생하고 있었을 것이다.
수업의 진행 방식 또한 놀라웠다. 학생들은 수업전에 교탁에 자기가 뽑아온 질문을 올려놓는다. A4 용지가 수십장이 쌓인다. 교수님은 수업 전에 이 질문 목록을 한번 살펴보시고는, 수업 시작과 동시에 선정한 질문을 읽어주신다. 그러면 학생들이 직접 답하고 토론한다. 교수님은 가끔씩 거들어 주시다가 맨 마지막에 총 정리를 해주신다. 수업 중에 책에 대한 언급은 특별히 없다. 진도라는 개념도 없다. 가르치는 행위가 따로 없다. 그렇지만 가르쳐진다. 학생들은 자기가 질문을 뽑아왔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서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서 철학을 배우지 않았다. 철학하는 법을 배웠다. 철학은 묻는 것이다.
또한, 이 수업을 통해서 책은 독법에 따라 가치가 변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 허접한 교과서로 이런 놀라운 교육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질문을 책읽기에 이용하는 것은 로빈슨(F. P. Robinson)의 소개로 널리 알려진 SQ3R이라는 독서법에서도 볼 수 있다. 여러 학교에서 독서법 교육시 이 SQ3R을 모델로 삼고 있다.
본인은 그 때의 감동을 다시 접할 기회가 있었다. 동무의 "격치고"에 빗대어, "닥치고"라고 부르는 책이다. 원제는 『입 다물고 가르치기』(Teaching with Your Mouth Shut)이다. 한마디로 교사가 말을 적게 하면서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필자가 하는 일의 성격상 남을 가르치는 일이 빈번한데, 이 책은 나의 교육철학과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멋모르고 봤다가는 까무라치는 초강력 핵폭탄급 책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경험담을 참고하시라.
필자가 대학 철학 개론서를 한 글자씩 아작아작 씹어 먹으면서 익혔던 태도와 습관은 나중에 철학 원전을 꼼꼼히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독법에 따라 책의 가치는 달라진다.(필자가 사용하는 독법 목록을 정리해 둔 것도 있으니 참고)
책은 아는만큼 보인다
필자는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것을 즐긴다. 내가 설명을 하면 그들은 "그거 말되네요!"(Oh, that makes sense!)를 연발하고 나의 질문에 꼬박 꼬박 정답을 맞추는 과정, 그리고 약 한 시간 후에는 어떤 한글도 소리 내어 읽으며 스스로의 능력에 경이로워하는 모습을 즐긴다. 그렇다. 딱 한 시간이면 한글을 가르칠 수 있다. 나에게 한글을 한 시간만에 배워간 독일인은 집에서 애엄마 모르게 자기 아들과 비밀 메세지를 주고 받을 때 한글을 사용한다고 한다 -- 한국어는 모르니 독어를 한글로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소리글일 것이다.
내가 한글을 외국인에게 한 시간만에 가르칠 수 있었던 데에는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이 큰 도움을 줬다. 내가 『훈민정음해례본』 제자해를 읽으면서 느꼈던 전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필자의 한글과의 첫 만남도 인상적이었다)
해례에서 설명하는, 훈민정음을 만든 원리는 다음과 같다. 글자를 만든 이치는 말소리의 이치와 같다. 말소리는 사람이 만든다. 사람은 자연에 속한다. 따라서 글자를 만든 이치와 자연의 이치는 같다.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이 음양의 이치를 따른다면 그 속에서 난 글자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이고, (나의 생각에) 얼마나 그런 이치를 더 잘 드러내냐에 따라 "자연과 인간을 따르는 글자"가 될 수도 있고 어색하고 불편한 글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훈민정음 제자해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의 말소리에는 음양의 이치가 들어 있다. 이제 훈민정음을 만듬에 처음부터 머리로 꾀하고 힘을 들여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말소리에 있는 이치를 다하였을 뿐이다." 정말 대단한 발언이다.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자연 속에 있는 것을 잘 드러나게 도와줬다는 정도로 들린다. 여기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옛 사람들이 자연의 원리라고 봤던 음양오행이 실제로 세상의 지배적 원리가 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그런 원리와 자연의 관찰을 통해 나온 글자체계가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문자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제자해의 글자를 만든 원리를 통해 한글을 가르치면 정말 아침나절 지나기 전에 순식간에 배운다. 디자인에 있어 학습성(learnability)과 작업능력(performance)은 항상 양자택일의 대상이기 쉽다. 예컨대, 배우기 쉬운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그걸로 전문가의 능력을 발휘하기는 어렵고, 반대로 전문가가 최고의 능력을 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초보가 배우기 어렵다. 현 추세는 학습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단 사람들이 구매하고 봐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거기에 구속되어 버린다. 그리고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배우기 쉬운 것만 강조한다면 이 세상에는 두 발 자전거 대신 세발 자전거만 존재할 것이다. 또 그렇다고 해서 초보가 몇 번 학습을 시도하다 지쳐 포기하는 것을 그냥 방관할 수만도 없다.
우리는 정말 가끔 이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소해 버리는 탁월한 디자인을 보게 된다. 한글이 그렇다. 배우기 쉬우면서도 전문적인 글자생활에 아무런 손색이 없다.
단순히 한글을 배우고 가르치는 데에만 쓸모가 있는 게 아니고, 그 디자인 철학도 심오하며 계발적이다. 필자가 아는 한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 최고의 디자인이다. (필자가 쓴 한글창제원리에 대한 글 참고)
본인이 애초부터 해례의 가치를 알았던 것은 아니다 --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하지만 음양오행을 어느 정도 알고난 후에는 해례의 의미가 드러났다. 숨겨진 99%의 빙산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 내가 왜 이렇게 엄청난 책을 몰라봤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교적 최근에 한글에 대해 훌륭한 책이 출간되었다. 한의사 김명호씨가 쓴 『한글을 만든 원리』(학고재)란 책이다. 국문학과 출신의 아내에게 권해줬더니 감격해 한다. (혹시 외국인 친구에게 권하고 싶다면 『한글, 자연의 모든 소리를 담는 글자』란 책을 한번 살펴보라. 국문과 영문이 좌우 페이지에 병치되어 있다. 따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글을 만든 원리』를 많이 참고한 듯 싶다 -- 감수자에 김명호씨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오늘이 10월 9일인데, 한글날 훈민정음에 대한 글을 쓰게 되니 더더욱 뜻깊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책은 삶을 바꾼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두가지 방법. 하나는 "흠, 계획이 틀어졌군. 다음번에는 처음부터 좀 더 정확하고 세밀한 계획을 세우도록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어차피 계획은 틀어지게 마련인 걸.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그때 그때 해결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높히도록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전자가 창조론적 사고에 가깝다면 후자는 진화론적 사고에 가깝다.
어둠 속에서 목표물을 맞추는 방법도 두가지가 있다. 목표물의 정확한 방위, 고도, 거리 등을 측정하고, 당시의 기온, 습도, 기압, 풍속 등을 고려한 다음, 사용하는 탄환의 종류, 총신의 길이 등을 적용해서 계산기를 돌린다. 그리고 나온 방향으로 총을 쏜다. 단, 조건이 몇가지 있다. 환경이 변하지 말아야 하고, 목표물이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더 똑똑해져서 더 나은 목표점으로 마음을 바꾸는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 다른 방법은 예광탄(빛을 발하는 탄환)을 일반 탄환 다섯개에 하나씩 장전해 두고 일단 쏘기 시작하면서 예광탄의 궤적을 보고 자동차 운전하듯이 방향을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단, 개별 총알의 비용은 싸게 하면서, 한 발 맞았을 때에도 어느 정도의 타격이 있도록 해야 한다.)
전자는 답이 나와야 행동에 옮기는 주의(learn and do)이고, 후자는 행동해 가면서 답을 구해나가는 주의(learn by doing)이다.
필자는 진화론적이고, 예광탄적인 문제접근법을 선호한다. 글을 쓰거나, 서가를 관리하거나, 공부를 할 때에도 이 방식을 사용한다.
필자가 이런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고, 더욱 체계적이고 세련되게 문제해결방식을 다듬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이라는 책 덕분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의 목표는 인간성과 생산성를 모두 높히는 것이다. 그 접근 방식은 협동적이고 진화적이며 여성적이다(본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런 익스트림 프로그래밍과 기존 방식의 차이를 여성성과 남성성의 차이로 비유했다).
이 책의 원래 독자는 소프트웨어 개발 주변의 사람들(개발자, 고객, 관리자 등)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독자층에게 가치를 준다. 예를 들면 락밴드 리더가 서평을 썼고, 대학에서 영화이론을 가르치는 사람이 서평을 "그렸으며", 동아시아 지역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서평을 쓰기도 했다.
필자는 결국 그 책이 인연이 되어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컨설팅을 업으로 하고 있다.
나는 책 한 권이 이렇게 나의 사고와 생활 패턴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책은 정말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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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애자일컨설팅이라는 회사의 대표로 있고, 애자일이야기(//agile.egloos.com)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화두는 인간적이면서 생산적인 길 찾기, 나날이 자라기, 나와 주변의 긍정적 변화이다.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테스트 주도 개발』이라는 세권의 책을 번역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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