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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프로 따위가 된 거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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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특별한 책은 바로 삶의 국면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말을 걸어오는 책이 아닐까? 내게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그런 귀한 책이다.

책이란 것이, 요망하게도 사람과 닮아서, 살면서 스쳐 보내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특별해지는 책이 있다.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 하시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평생을 마주하고도 끝내 진정을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하고 첫 만남에서부터 영혼 깊이 통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 특별한 책은 바로 삶의 국면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말을 걸어오는 책이 아닐까? 내게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그런 귀한 책이다.

삶은 절대로, 복잡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워 때의 신도림역에 가보면 누구나 삶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알 수 있다.


1998년, 소설 속 주인공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직장에서 쫓겨난 그 해에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영화를 해볼 거라고 대학 때부터 영화반이다 방송반이다 부지런히 쫓아다녔던 나는 졸업과 동시에 당연하게도, 백수가 되었다. 취업정보센터에 게시된 이런저런 회사들에 원서를 집어넣고는 도서관 휴게실에서 컵라면을 먹는 게 그즈음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갔다. 정말 배고픈 시절이 찾아왔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어떤 회사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방배동에 위치한 작은 방송물 외주 제작사였다. 그곳에서 방송아카데미를 함께 졸업한 J를 만났다. 면접자 대기석에서 그를 마주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도 영화에 뜻이 있고 나 역시 그러하니 지원하는 회사가 비슷비슷했다. 둘이 멀뚱멀뚱 마주 보면서 면접을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불려 들어갔다. 면접관은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3루 외야석 카메라 한번 잡아볼래요?”

잠시 후, 나와 J가 교대했다. 나는 J가 ‘6개월간 무보수예요. 차비는 조금 지원해줄게.’ 라는 뒷말을 듣고 나서도 그 질문에 예, 라고 대답했을지 그게 정말 궁금했다.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아무리 이쪽 일이 하고 싶어도 먹고는 살아야겠다고, 말해버리고 나온 참이었다. 그가 면접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2호선을 탔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린 신도림역에서 헤어졌다. 다신 그런 자리에서 만나지 말자. 그게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그러고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책을 잡으면 판권 면부터 뒤적이는 출판 편집자가 되어 있었다. 2004년 어느 날, 공덕동 언덕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 선배에게 감자탕을 얻어먹고는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벌써 11쇄였다. 잘나가네? 읽고 싶던 책이었어요. 그렇게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처음으로 만났다. 프롤로그를 지나 1부를 채 못 읽고서, 이것도 말장난이네, 라고 나는 집어던졌다. 전작인 『지구영웅전설』에서 느낀 실망이 선입견이 되어 결국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다.

그러고는 또 시간이 흘렀다.

주변 여기저기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팬클럽들이 창단되기 시작했다. 그게 재밌어? 이해를 못하겠네. 그러다가 결국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언제나 옳다. 책에 대한 평가는 초기에는 엇갈리며 파동을 그릴지언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 책이 지닌 내재가치로 수렴된다.

그렇게 다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마주했고 다 읽고 나서는 어떻게 이렇게 가볍고 재밌는 글이 먹먹한 감동까지 줄 수 있는지, 과연 그게 가능한 사람은 누구인지, 책날개의 저자 사진과 소개글을 몇 번이고 다시 들춰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끄러운 콘서트 도중 빠져나왔을 때 그렇게도 탐닉하던 음악은 아득한 배경음이 되어버리고 텅 빈 로비에서 자기가 내는 구두 소리를 차분히 듣게 되는 순간의 적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열어주는 지평이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작가가 삼천포에 있다고 말하는 진짜 인생을 엿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이 책은 그저 수많은 ‘좋은 책’들 가운데 하나였다.

“지면 어때?”조성훈이 얘기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졸음이 몰려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06년, 어느 무료한 일요일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무기력에 빠져버린 나는 방바닥에 눌어붙어 반쯤 졸며 이리저리 리모콘을 돌리다가 우연히 'VJ특공대'를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일어섰다. 카메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J를 엔딩 크레딧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는 결국 VJ가 되어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고 너무나 놀라웠다. 아울러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시절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러니까 바로 그때! 신기하게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화면은 이미 코미디 프로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의 잔상은 여전히 남아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쩌다…… 프로 따위가 된 거지?”


3루 외야석 카메라맨의 제의를 받은 그날로부터 무려 8년의 세월이 흘러 있었다. 내가 고작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지 못했던 길을 그는 묵묵히 걸었다. 그를 마주하자 모든 게 분명해졌다. 지금껏 나는 돈을 대가로 나를 팔아왔던 것이다.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진짜 인생이 있다는 삼천포로 빠져보지도 못한 채 나는 여전히 프로들의 세계에서 허겁지겁 살아가고 있다. 그저 먹고살려고, 고작 먹고살기 위해. 그 수많은 자기합리화를 어찌 감당하려고 나는 여기까지 왔을까? 사람에 대한 평가가 간단하게 연봉으로 환산되는 프로들의 세계를 흉내내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고, 죽지 않는다고 알려주는 사람을 왜 지금껏 만나지 못했을까? 그런 책을 그때 만날 수만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쯤 인천문학경기장 3루 외야석 카메라 뒤에 한가하게 앉아 서너 명의 관중들과 함께 오후의 야구를 유유자적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진짜 인생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삼천포로 빠진 게 J인지 나인지, 과연 그곳에 진짜 인생이 있는지 어떤지조차. 하지만 이런 특별한 책들과의 만남이 있는 한 어쩌면 여기가 삼천포인지도 모르겠다.



출판 기획?편집자로 9년째 일하고 있다. 10년을 채워 프로인생을 살아볼 거라고, 삼천포로 빠지고 싶은 유혹을 애써 외면하며, 오늘도 악착같이 일하고 있다. 자신만의 야구는커녕 3루 외야석 중계 카메라도 잡아보지 못한 채 그렇게 허망한 것들에 속아 살고 있다. 늘어지는 뱃살이나 빼볼 요량으로 작년 내내 한강변을 달리다가 얼결에 『한밤의 운동장 달리기』라는 책을 냈다. 덕분에 다시 쓸 일 없을 거라고 치워둔 정서정이라는 필명으로 열심히 읽고 쓰고 있다.



한밤의 운동장 달리기
정서정 저| 랜덤하우스 중앙

날씬한 외모와 잘나가는 커리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여자들을 위한 자기개발 우화. 뚱뚱한 몸 때문에 삶의 자신감마저 잃은 주인공 ‘조나선(<갈매기의 꿈>의 갈매기 조나단의 이름에서 따온)’이 스트레스와 기름진 음식에 묻혀 있던 자신의 몸을 발견하고 소통하고 화해하는 과정, 그리고 궁지에 몰리게 된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여정을 소박하지만 공감가게 그려낸 우리 시대 평범한 여성들의 솔직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행복한 인생 찾기’ 프로젝트를 따라가는 중간 중간에 만나는 운동과 다이어트, 직장 내 생존과 성장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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