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대표 엄마 성병숙, 연극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연극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제가 성우로 제일 처음 신문팔이 소년 역을 맡았는데, 남자역이라서 무척 힘들게 녹음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들으니까 결국 다른 사람 목소리로 바뀌었더라고요. 우리 엄마도 그 하소연 다 들어주시고, ‘너 지금은 시작이라 그렇지 잘 할 거야. 난 믿어!’ 그러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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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혼 변호사는 연애중>, <미생>, <별에서 온 그대>, 영화 <덕수리 5형제>, <코리아>, <황해>, 연극 <황금연못>, <늙은 부부 이야기>, <친정엄마> 등 무대에서 스크린까지 이렇게나 다양한 필모그래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 이 시대 대표 엄마, 배우 성병숙 씨입니다. 성우로 방송활동을 시작해 연극배우, 탤런트, 영화배우, 라디오 DJ까지 수많은 타이틀을 가진 그녀는 무대와 매체를 오가며 다양한 ‘엄마’의 모습을 연기하는 요즘 가장 바쁜 배우 가운데 한 명인데요. 예순의 나이에도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최근 대학로 예그린 씨어터에서 개막한 연극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는 그녀의 실제 모습과 가장 닮은 엄마로 무대에 서고 있다는데요. 연극이 끝난 뒤 성병숙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저는 이 작품 참 좋아해요. 이 작품은 하는 배우도 행복하고, 보고 가는 관객들도 행복해 하세요. 엄마를 다룬 다른 작품은 다들 슬퍼서 울고, 아무래도 좀 묵직하게 슬픈 엄마를 보여주는데, 이건 재밌는 엄마거든요. 그래서 지금 시대에 딱 맞는 엄마인 것 같아요.”

 

연극 제목이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인데, 여기에서 ‘내가’는 아무래도 ‘엄마’인가 봅니다.


“그래서 제가 ‘엄마가 가장 예뻤을 때’라고 말했더니 다들 더 잘 기억하시더라고요. 이 연극은 연출가 오승수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모두들 실제 자기 집 이야기처럼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 집하고도 똑같아요. 여기 나오는 엄마 저랑 비슷하지 않나요(웃음)? 이번에 제 딸 서송희랑 같이 무대에 서는데, 송희도 서른네 살에 백수, 결혼도 안 했거든요. 얘가 대본을 보고 ‘우리 집 얘기네?’ 하더라고요(웃음).” 

 

보통 연극배우들 생각하면 좀 무게감이 있으신데...


“저는 무게감 하나도 없어요. 그냥 솜사탕, 행복여사예요. 많이 까불고, 애교 못 부리게 하면 화내고(웃음).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엄마는 저와 비슷한 모습이 많아서인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100분 연극인데 30~40분은 제 기분에 그냥 해요. 수요일, 토요일은 2회 공연인데, 하루에 4~5번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행복한 엄마라서 요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독보적인 엄마 배우로 자리 잡으신 걸까요?


“초긍정이라서(웃음)? 나이 들어 보니까 엄마가 도처에 필요하더라고요. 사회에서도 집에서도. 모든 일에 엄마를 먼저 찾게 되잖아요. 배고파도 속상해도 피곤해도. 드라마 <미생>에서는 4차원 엄마였는데, 계약직인 아들에게 ‘넌 나의 자부심이야’라고 하죠. 그 대사를 많이들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저도 대본 읽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제가 성우로 제일 처음 신문팔이 소년 역을 맡았는데, 남자역이라서 무척 힘들게 녹음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들으니까 결국 다른 사람 목소리로 바뀌었더라고요. 우리 엄마도 그 하소연 다 들어주시고, ‘너 지금은 시작이라 그렇지 잘 할 거야. 난 믿어!’ 그러셨거든요. 우리 엄마에게도 제가 자부심이었고, 서송희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만, 유치원 영어 선생님 하다 뒤늦게 연기를 다시 하는 거예요. 인생을 돌고 돌아도, 지금 연기하면서 행복해 하니까 언젠가는 우뚝 설 거라고 믿어요.”

 

극중에서도 ‘엄마’를 부르실 때 뭉클했는데, 작품하면서 어머니 생각도 많이 나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 엄마 정말 좋은 분이에요. 죽이 잘 맞는 친구고 애인이고. 엄마한테 받을 것 아낌없이 다 받았어요. 돌아가신 지 3년 됐는데 정말 많이 생각나고, 아직 내 마음에 살아 계시고,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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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무대에서 연기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10월 14일에 처음으로 같이 무대에 서요. 송희는 지금 부풀어 있죠. 가슴 두근두근, 엄마랑 딸이 같이 무대에 선다고 하니까. 백수라서 돈이 없다며, 이게 제 환갑 선물이래요(웃음). 저와 연습을 한집에서 하니까 대사 한마디 툭 치면 딸이 딱 받고. 같이 동네를 한 시간씩 산책하는데, 걸으면서 연습하기도 하고. 정말 행복했어요.”

 

딸의 연기는 흡족하세요?


“연기를 지도하지는 않고요,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죠. 연기에는 정답이 없더라고요. 사람마다 다 다르게 표현하고, 남들이 울어도 나는 웃으면서 표현할 수도 있고. 이 작품에 딸 셋이 나오는데 모두 자기만의 색깔로 연기하거든요. 물론 배우로서 소질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즐기는 거, 좋아하는 거예요. 타고난 게 적어도 열과 성을 다 하면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고, 다른 길로 풀릴 수도 있거든요. 그날그날 행복하다면 인생 길게 봤을 때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그것보다 얼마나 행복하고 후회 없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딸의 결혼을 재촉하잖아요. 댁에서도 딸에게 결혼하라고 재촉하세요?


“그거 하나는 서두르지 말라고 해요. ‘서둘러서 결혼하면 한가할 때 후회한다!’ 어떤 연극의 대사였는데 명언이지 않나요? 물론 결혼은 해야죠. 결혼하면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채워지고 동지가 생기니까 정말 힘이 돼요. 그런데 잘 만나야지 잘못 만나면 없느니만 못하죠. 그리고 내가 준비가 돼 있을 때 만나야 해요. 내가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남자를 만나도 깨지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말 멋진 배우들의 엄마를 많이 연기하셨는데, 사윗감으로 좋겠다고 생각한 배우도 있었을까요?


“다 탐나요, 요즘 배우들은 어쩜 그렇게 근사하고, 성품도 좋고, 성실하고, 잘 생겼는지. 성준이도 좋고, 박해진도 좋고, 다 좋더라고요(웃음). 박해진을 보고 있으면 좋아서 자꾸 입이 벌어져요(웃음). 그런데 내가 봐서 좋은 사람보다는 딸이 좋은 사람, 딸이 좋은 사람보다는 딸을 많이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연극은 시간이 참 많이 들어가잖아요.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와는 출연료 등에서 차이가 많을 텐데, 그런데도 꼬박꼬박 무대를 찾으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맞아요, 꼬빡 두 달을 연습하고, 두 달 공연하고, 지방까지 다니면 연극 한 편 하면서 5개월이 훅 가요. 그런데 출연료는 드라마나 영화와 엄청나게 차이가 나죠. 연극할 때는 돈을 생각하면 안 돼요. 연극은 갈고 닦는 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에서는 한 부분이지만 연극에서는 여러 부분, 전체를 끌고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나이 먹어서도 연기자한테는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연극은 저의 뿌리니까. 성우도 나의 뿌리지만, 성우할 때부터 밤에는 계속 연극을 해왔으니까 저한테는 뿌리라서 그 맛이 아주 좋아요.”

 

성우, 연극배우, 탤런트, 영화배우 등 타이틀이 굉장히 많은데, 어떤 이름으로 불릴 때, 또는 어느 순간 ‘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우리 딸 송희가 ‘엄마 예뻐, 엄마 좋아!’라고 할 때가 가장 좋아요(웃음). 그리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도 그렇지만 나이 들면서 좋은 작품이 참 많네요. 이 나이 돼서 연기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놀며 연기하며 살다 가면 정말 좋겠어요.”

 

빨간 구두를 신고 탱고를 추는 엄마의 모습, 웃으며 이별하는 모녀. 엄마, 모녀를 다룬 여타 작품에서 꼭 흘리게 되는 묵직한 눈물을 연극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산뜻한 웃음으로 대신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인생에서 수많은 상황에 대처하는 ‘초긍정 배우’ 성병숙 씨의 삶의 방식과도 닮아 있어 그녀는 이 무대에서 저렇게나 행복하고 편안한가 봅니다. 연극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11월 22일까지 예그린 씨어터에서 공연됩니다. 친구 같은 모녀의 사랑스러운 이별 공식, 이 시대 대표 엄마 성병숙 씨와 그녀의 딸 서송희 씨가 함께 선보이는 리얼 모녀의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감상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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