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일기 - 우리는 시작부터 늙은 아빠였어
수영장이나 찜질방처럼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장소에 가면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 보게 된다. 머리가 벗어지고 배가 불록 나온 40대 남자들이 서너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을 안고 있는 모습. 서른다섯에 결혼해, 서른여섯에 첫째를 얻고, 3년 터울로 얻은 둘째가 세 살이 되면 나이는 벌써 마흔둘이다. 머리가 어느 정도 벗겨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평균수명이 올라가고 결혼 나이가 늦어진 요즘 시대로 보면 당연한 모습일 수 있는데, 어째 적응이 안 된다.
오래된 사진첩을 뒤지다보면, 쌩쌩한 스포츠머리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아버지가 양팔에 자식을 하나씩 매달고 찍은 사진이 나올 것이다. 결혼 정년이 20대 초중반이었던 60년대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들이 지금의 삼촌처럼 젊었다. 그들은 젊어서 그런지 아이들을 서넛씩 낳고도 힘에 부친 기색 없이 가정을 참 힘차게 일궈냈다. 헌데 요즘 나이든 아빠들은 조촐한 가정 하나 건사하면서도 픽픽 나가떨어진다. 요즘 아빠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남성들의 평균 결혼연령은 초혼 기준으로 31.1세(2007년 기준, 계속 올라가는 추세)다. 우리 나이로 서른둘이나 셋에 결혼하는 셈이다. 평균의 삶을 지향하는 나는 결혼도 엇비슷하게 맞췄다. 서른한 살에 결혼해 서른둘에 첫째를, 서른여섯에 둘째를 얻었다. 동갑내기 친목회 12명을 따져 봐도 꼭 중간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조금 더 일찍 결혼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드는 게 사실이다. 나보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내가 “가정 하나 이끌어가기도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면, “이제 시작인데 벌써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은 벗어나야 숨 한번 크게 쉬겠더라. 고생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라고 겁을 준다.
결혼 나이가 평균인데도 ‘초보 아빠’ 소리를 듣다보니, 앞으로 견뎌내야 할 무게가 한 백만 톤쯤으로 다가온다. 두 아이의 교육비도 교육비지만, 둘째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 이미 50대 중반을 넘어설 나이가 더 무섭다. 두 딸을 제대로 시집보내려면, 환갑이 넘어서까지 죽어라 일하고 있어야 한다. 서른한 살에 결혼한 사람이 이 정도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흔 가까워서 결혼하는 남자들은 그 고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늙은 아빠와 평생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 입장도 그다지 탐탁해 보이지 않는다. 함께 롤러브레이드를 타기에도, 마라톤을 하기에도, 비디오게임을 하기에도 아빠들은 너무 대하기 어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학교 운동회에서 함께 손을 잡고 달리는 순서가 있다면 어딘가로 도망치거나, 아빠에게 “잠시 숨어 있어줘!” 이렇게 부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요즘은 자식들 기 세워주는 게 미덕이니, 씁쓸하게 운동장을 빠져나와 호프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겠지.
늙은 아빠 입장에서는 두말할 것 없이 섭섭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4남매 중 막내 외아들로 살아온 입장에서 솔직히 말한다면, 부모는 조금이라도 젊은 게 좋다. 철없는 소리지만, 학창시절 내내 젊은 엄마를 둔 친구들이 부러웠고 중학교 때 이미 노인성 질환에 걸려버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으며, 알콩달콩 신혼 재미를 느낄 겨를도 없이 부모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순간이 다가와 많이 힘들었다. 요즈음에 태어나는 어린 친구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것들을 경험하며 자라게 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늙은 아빠’들의 득세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자식들도 결혼을 늦게 한다면, 일흔다섯에 첫째를 결혼시키고, 여든에 손주를 보는 게 평균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좋다. 수명이 늘어났으니, 결혼 정년이 늦춰지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겠다. 늙은 아빠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어린 자식들 고생하지 않게, 사는 날까지 최대한 건강해야 하고, 보험도 거의 완벽하게 들어두어야 한다. 그래야 늦게 결혼? 미안함을 최소화할 수 있고, 죽어서까지 처자식에게 핀잔 듣는 일은 면할 수 있다. 늙은 아빠의 슬픔이다.
오수 -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삶의 피로신경숙이 쓰고 구본창이 사진을 찍은 에세이 『가거라, 네 슬픔아』를 읽다가, 〈광화문, 서울, 1988년〉 대목에선 페이지가 넘어가질 않았다. 꽃을 팔다 지쳐서 자신의 팔에 얼굴을 파묻고 잠을 자는 한 남자의 사진 때문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오수, 꽃 살 일이 아무리 급해도 그를 깨워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정말 너무 오랜만에 단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신경숙도 글에서 ‘저 남자를 누구라도 방해해선 안 될 것 같다. 누구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피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진 속 남자는 바로 대다수 30대 후반 남성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피곤한 거지?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잠을 많이 자도 피곤하고,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피곤하다. 피로가 풀릴 틈이 없이 누적된 것이다. 며칠 밤을 새도 거뜬했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체력은 순식간에 떨어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자가 운전을 하든, 매일 아침 집에서 회사까지 이르는 여정은 거의 비몽사몽이다. 정거장 몇 개를 지나치거나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리는 일도 있고, 직접 차를 몰고 가다가 잠깐 조는 바람에 앞차를 들이박는 일도 있다.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8년 전쯤의 일이다. 어느 신도시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될 무렵, 적잖은 사람들이 서울 생활에 지쳤다며 그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주 초창기, 전원생활에 의욕 충만했던 그들은 그곳에 ‘조기축구회’도 만들고 볼링과 등산모임까지 만들면서 자신들이 꿈꾸던 삶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헌데 그건 정말 짧은 순간의 ‘개화’였을 뿐이다. 그리고 한 1년쯤 지났을까? 그 이주민들의 얼굴이 흑빛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한두 사람씩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3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을 1년 넘게 견뎌내는 동안 몸이 상할 대로 상한 것이다. 조기축구회도 유야무야 사라졌고, 그들은 다시 서울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도 서울에서 출근 시간만 자가용으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용인 수지에 살고 있다. 출근할 때마다 아주 먼 곳으로 출장 가는 기분이다. 덕소 이주민 선배들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것이다. 출근하다가 졸음이 쏟아져 길옆에 차를 세우고 잠깐 잠을 청하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잠깐 잔다는 것을 한 시간 넘게 자는 바람에 상사에게 핀잔 들은 일도 적지 않다.
처음에는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길 생각도 해봤다. 헌데 한번 내려오고 나니 다시 올라갈 일이 까마득하다. 원래 한번 빠져나오면 그렇게 눌러 앉는 게 지방 살이다. 더욱이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면, 서울행은 나만의 못 이룰 꿈처럼 보인다. 수도권 신도시는 유명 유치원이나, 사립초등학교, 다양한 학원들이 즐비한 반면 유해시설은 거의 없다. 아내에게 가끔 ‘서울행’을 이야기해보지만, “어린 아이 키우기에 수지만 한 곳도 많지 않다”는 말에 이내 말문을 닫는다.
오늘도 먼 곳으로 출근하는 기분으로 차를 몰고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아내가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메모한 쪽지를 건네준다. 점심시간에 은행에 들러서 신용대출 가능액에 대해 알아보아야 하고, 퇴근하는 길에는 남대문시장에 들러 가장 저렴한 안경점에서 일회용 콘택트렌즈를 사야 하며, 할인매장에서 둘째 기저귀도 한 박스 사 가지고 와야 한다. 집에 들어가면 열 시가 훌쩍 넘을 것이고, 다음 날에는 여섯 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혹시 누군가 나와, 나와 비슷한 30대 후반 남자들의 오수를 보게 된다면 어깨를 토닥여주었으면. 핀잔주지 말고 ‘그래 잠깐 자라.’라고 말해주었으면. 정말 많이 피곤하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