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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밥 먹으면 좋잖아

영화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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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우리들’이 있다. 특별한 적의도 사악한 마음도 없었지만 서로를 조금씩 무너뜨리는 우리들이. 우리집의 균열을 막아보려는 소녀의 분투는 그래서 더욱 눈물겹다. (2019.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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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집> 포스터

 


식구니까, 같이 밥 먹자고 열두 살 ‘하나’는 노래 부른다. 그 노래는 경쾌하기는커녕 불안이 섞여 답답하고, 듣는 가족은 서먹하다. ‘우리집’은 하나의 마음 같지 않다. 각각 다정한 아버지 어머니 친근한 오빠건만, 이 네 사람의 조합인 우리집은 왜 이 모양일까.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은 아침 식탁에서 시작해서 아침 식탁으로 끝난다. 싸우는 부모에게 눈치 보며 밥 먹자고 해보지만 뜻이 꺾이는 첫장면에 대답하듯 그들은 마지막에 마침내 한자리에 앉았다. 그것도 하나가 차려준 식탁이다. 부모가 이혼할지도, 화해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하나는 오로지 ‘든든하게 밥 먹자’고 채근한다.
 
윤감독의 전작 <우리들>이 그렇듯이 어린 배우들 디렉팅은 투명하다. 감독은 자신이 요구하는 대사를 가능한 배제하고 상황 안에서 배우가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시나리오로 상황을 먼저 만들고 어린 배우에게 온전히 맡기는 방식이다.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하는 성인분들에게 드리는 당부의 말’이라는 8가지 촬영 수칙이 인터넷에서 퍼지면서, 어린 배우를 존중하는 감독의 사려 깊은 태도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 배우들이 같이 모여 있을 때 거기가 우리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을 확장해봤으며, 같이 사는 집만 우리집이 아니라 마음 맞는 사람끼리 만나면 거기가 우리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윤감독은 고백한다. ‘마음 맞는’ 촬영 현장에서 어린 배우들은 존중받으며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성장하는 시간을 보냈으리라.
 
하나는 불화하는 가족들 틈에서 막내로서 우리집을 지키겠노라고 다짐한다. 또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유미’ 자매의 집도 언니로서 지키겠다고. 유미네는 지방에서 일하는 부모와 떨어져 자매 둘이 살고 있고, 그 집에 발 들이고 좋아하게 된 하나는 책임감을 느낀다. 열두 살의 단단한 의지는 세상 물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세상 물정과 상관없이 뭐든 해보겠다는 순수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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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집>의 한 장면
 

 

햇살 가득한 유미네 옥탑방 앞, 세 소녀는 얼마나 밝고 눈부시던가. 누군가 돌봐주는 이 없어도 서로에게 빛이 되었다. 하나가 해주는 밥을 나눠 먹고 종이 박스로 쌓아올리고 달걀포장지로 지붕을 얹은 꽤 그럴듯한 집도 만들었다. 현실에는 없는 가볍고 밝은 종이집이다.
 
그러나 이사가 빈번한 탓에 친구 없이 외롭고 힘든 유미는 또 떠나야 할 처지다. 하나는 그 이사를 막아보려 한다. 하나는 부모와 연락이 닿지 않아 초조한 유미에게 멀리 바닷가에서 일하는 부모를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세 어린이가 길을 떠나는 여행 시퀀스는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다. 버스는 목적지와 다른 곳에 내려주는가 하면 곧 어두워질 시각의 공포는 노숙자 곁을 지나며 휴대폰까지 떨어뜨리고 도망치게 만든다. 서로 의지하던 하나와 유미는 감정이 폭발한다. 그동안 각자 맞닥뜨린 집 문제를 참고 견뎌야 했던 두 소녀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 들썩이는 어깨, 세상의 어른들은 보아야 한다. 자신들이 서로 싸우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보지 못했던 어깨의 흔들림을.
 
바닷가에는 느닷없는 출산 기운으로 황급히 떠난 부부의 텐트가 놓여 있다. 배고픈 세 아이가 그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여기 진짜 좋다, 우리집이면 좋겠다, 그럼 우리집 할까, 뭐 먹고 살까, 나란히 누운 세 아이는 다 알면서도 싱거운 말로 서로를 다독인다. 결핍으로 서로를 할퀴지 않고 그 순간의 행복을 만끽한다.
 
<우리집>에는 ‘우리들’이 있다. 특별한 적의도 사악한 마음도 없었지만 서로를 조금씩 무너뜨리는 우리들이. 우리집의 균열을 막아보려는 소녀의 분투는 그래서 더욱 눈물겹다. 같이 밥 먹으면 좀 좋은가. 이 소녀의 바람은 단순하되 깊다. 세상 어디에 있든 일단 집으로 돌아오면 함께 밥을 먹자. 그게 식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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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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