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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열의 음악앨범> 현재형의 사랑은 안되나요?

미수와 현우는 첫 만남의 주파수를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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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열의 음악앨범’이 필요했던 건 1994년이라는 배경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2019.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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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포스터

 

 

가을은 멜로의 계절인가? 한동안 황금빛 낙엽 분위기의 멜로가 실종된 지 오래였다. 올해만큼은 예외적으로 가을이 오니 멜로도 찾아왔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이다.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앨범’은 실제로 1994년 10월 1일 시작하여 2007년 4월 15일까지, KBS Cool FM(수도권 89.1 MHz)에서 오전 9시부터 두 시간 동안 매일 청취자를 만나며 무려 13년 동안 전파를 탔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유열의 음악앨범’은 어떤 이에게는 잊힌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잊을 수 없는 방송으로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경험을 상기시킨다. 빠른 1975년생 미수(김고은)와 그냥(?) 1975년생 현우(정해인)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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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의 한 장면

 

 

‘유열의 음악앨범’이 처음 방송하던 날, 미수와 현우는 첫 만남의 주파수를 맞췄다. 썩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다. 미수가 있는 빵집에 와서 두유도 아니고 두부를 찾는, 그것도 존대인지, 경어인지 어쨌든 툭툭대는 투로 말을 거는 현우가 미수는 썩 재수 없으면서도 그게 또 나쁜 의도는 아닌 것 같아 관심이 갔다. 

 

다음 날, 별안간 아르바이트생 구하지 않느냐며 찾아와 좁은 빵집에 몸을 들인 현우에게 미수는 ‘벙찐’ 표정으로 환영 인사를 대신한다. 이들의 만남을 축복하는 건지, 혹은 이들의 질긴 인연을 예고하는 것인지 오전 9시 ‘땡’ 시그널과 함께 라디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열의 음악앨범’이 배경 음악을 넘어선 의미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유열이 앞으로 청취자와 만나게 될 13년의 세월만큼 미수와 현우에게 만나면 매끄러운 방송이, 헤어지면 지지직 파열음이 나는 것처럼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의 주파수를 부여한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시작된 만남, 그리고 12년 전에 끝내 맺어진(듯한) 사랑, 오지 않을 그 날을 어둡게 회고하기보다 찬란했던 그 날을 추억하는 듯한 분위기의 <유열의 음악앨범>을 두고 혹자는 ‘레트로 감성 멜로’라 수식한다. 복고풍의 사랑을 말하는 것 같다. 왜 지금 이 시점에 복고일까, 레트로가 유행이라서? 지금은 실종된 감성의 사랑이라서? 어쨌든, 이 사랑은 과거형이다. 과거형의 사랑을 말하기 위한 라디오 프로그램 중 ‘유열의 음악앨범’을 특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의 말이다. “라디오가 그때도, 지금도 존재하듯이 보편적인 ‘사랑의 감성’은 언제나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 이 제목은 점점 자기 자리를 찾게 되었다. 우리가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제목의 힘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은 ‘음악’처럼, ‘앨범’처럼 우리는 이렇게 영화 속의 시간과 함께 흘러가게 될 것이다.”

 

정지우 감독이 언급한 ‘보편적인 사랑의 감성’은 그의 말을 덧붙이자면, “그 시간, 그 시절 DJ 유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들은 때론 행복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의 찰나들을 환기한다.” 이 말로 유추하건대, 추억과 기억을 매개로 할 수 있는 사랑의 감성을 보편적이라고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보편에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현재형’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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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의 한 장면

 

 

드물게 등장하는, 그래서 반가운 한국의 멜로영화는 왜 현재의 사랑에 시선을 맞추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자꾸’ 과거를 돌아보는가. <유열의 음악앨범>의 시작 배경인 ‘1994년’은 영화를 비롯해 한국의 대중문화가 즐겨 소환하는 시대다. 그 시작을 열었던 <건축학개론>(2012)과 <응답하라 1994>(2013)의 1994년 또한, ‘유열의 음악앨범’이 등장했던 것처럼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사랑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다양했던 시대다. <유열의 음악앨범>의 사연도 1994년이라는 다양성에 또 하나의 레이어를 추가하는 셈이다. 

 

그 다양성이 현재형을 지향한다면 어땠을까.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유열의 음악앨범’은 시대를 소환하는 장치로는 특별해도 이 라디오 프로그램 자체가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미수와 현우의 사랑에 특수성을 부여하는 건 아니다. 아니, 특수성을 부여하기는 해도 ‘유열의 음악앨범’이 아니라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을 끌어들인다고 해도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라는 점에서 왜? 라는 의문이 든다. ‘유열의 음악앨범’이 필요했던 건 1994년이라는 배경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1994년이 많은 대중에게 익숙한 배경으로 자리 잡아서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도 <유열의 음악앨범>이 충분히 어필 가능하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터다. 거기에 동세대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정해인과 김고은 배우도 출연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극 중에서 나누는 사랑과 이별과 재회의 과정에 끼어드는 설정 중 하나로 돈 많은 자본가 계급과 진심 아니면 가진 거 없는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자의 구도로 극적인 드라마를 만든다고 한다면 이는 보편으로 앞세운 레트로한 감성보다 낡은 쪽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정지우 감독의 영화에서 ‘사랑’은 늘 결정적인 정서였고 소재였다. <해피엔드>(1999)에서는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자의 욕망을, <사랑니>(2005)에서는 17세 남학생과 30세 여선생의 사랑을 다뤘고 한국의 엘리트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는 <4등>(2015)에서조차 엄마의 엇나간 ‘사랑’이 중요하게 등장했다. 그리고 이들 작품에 내재한 ‘현재형’은 긍정적인 논의든, 부정적인 논란이든 동시대와 주파수를 맞춰 작품 이상의 무언가를 생산했다. 정지우 감독이 꼭 현재형의 사랑을 다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현재형의 사랑에서 낭만을 찾아내기보다 약속이나 한 듯 과거로 돌아가는 ‘그땐 그랬지!’ 의미를 부여하는 한국 대중문화가 준(準) 유행처럼 된 상황에서 정지우 감독’까지’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한국의 멜로영화는 현재형의 사랑을 아주 포기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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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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