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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해방촌, 사라지는 것들에 관하여

서울이지만, 서울답지 않은 소박한 동네의 뒷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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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뒷골목에서 마냥 신났던 그 기분을 내 아이도 함께 느끼고, 다양한 상상을 펼칠 수 있다면 좋겠다. 부디 해방촌은 경제의 논리에서 ‘해방’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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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기 일명 ‘핫 플레이스’라 불리는 곳이 많은 서울, 나는 이 곳 서울에서 태어나서 30여 년 넘게 서울 여자로 살고 있다. 갓 대학생이 되던 때만 해도 완전한 ‘도시 여자’의 삶을 동경하고, 고급스러운 느낌, 모던한 분위기를 찾아 다니기 바빴다. 근사한 커리어우먼의 인생을 좇으며, 조금은 ‘있어 보이기는 것’을 의식적으로 찾고, 꿈꿨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카메라와 사진에 관심을 갖고, 출사에 열을 올리면서 늘 찾던 것보다는 낯설지만, 독특한 곳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서울이지만, 서울답지 않은 소박한 동네의 뒷골목에 꽂히게 됐다. 차로는 들어갈 수 없고, 오로지 두 발로만 닿을 수 있는 곳, 내가 찾지 않으면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런 곳 말이다. 그렇게 닿은 동네의 골목들은 새로운 풍경들로 낯선 보물들을 품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장 즐겨 찾았던 곳은 성북동이었다. 서울성곽 쪽으로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가파른 언덕 위에 빼곡하게 집들이 모여있는 작은 산동네를 만날 수 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였던 ‘심우장’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 이곳을 걸어 오르던 그 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길 한복판에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따끈따끈(?)한 개똥도, 정신 없게 전선들이 꼬여있던 전봇대도 마냥 신기했었다. 잘 닦인 도로와 아파트, 빌라 등에 살며 마주하지 못했던 풍경에 매료되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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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골목에서 만난 풍경. 별것 아닌 것이 참 별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런 예스런 분위기를 가진 곳들이 점점 재개발의 여파로 사라져가는 게 현실이다. 최근 이곳 성북동도 재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여러 사람들이 갈등하고 있고, 사람의 삶이 경제의 논리 앞에, 부동산 광풍 앞에 묻혀 사라져가고 있는 게 아쉽다. 어디 이 곳뿐인가. 홍대가 급부상하며, 그 인근의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그곳에서 동네 발전에 궤를 같이 했던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내몰리고 있으니.


얼마 전, 해방촌을 찾았다. 그 동안 지인이 있어 종종 찾았던 곳이지만, 요즘 해방촌은 이태원과 경리단길 상권 부흥의 여파로 한층 더 급부상했다. 그 옛날, 한국전쟁 중 월남한 실향민들이 모여 ‘해방되면, 나가야지’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해서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곳. 아직까지도 해방촌은 꽤 예스런 정취가 많이 묻어난다. 꽤 오래된 상점들, 그리고 작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신흥시장 등 아마 이 곳을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여기가 정말 서울인가?’ 싶을 만큼 신기한 풍경이 많을 것이다.


특히, 최근 방송인 노홍철이 이곳에 작은 동네 책방을 열면서, 흥미로운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순례해야 할 성지가 하나 더 추가됐다. 동네 중간 중간 위치한 작은 공방들과 디자이너 샵, 작은 서점 등 구경거리가 워낙 많아, 가파른 언덕길이지만 오르는 보람은 있는 동네다. 숨어있는 맛집을 찾아 다니는 재미와 분위기 좋고, 사진 찍기 좋은 근사한 카페 구경까지 일단 한 번 찾아가 보면 건질 게 많은 곳이다.


하지만 이곳도 요즘 부동산 시세가 폭등하고 있고, 매물이 없어 못 산단다. 어차피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하고, 시대에 맞춰갈 수밖에 없는 것이긴 하지만 때로는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것들이 아깝고 아쉽게 느껴진다. 꼭 잘 가다듬은 길과 엘리베이터가 놓인 집이 있어야만 살기 좋은 것은 아니다. 빽빽하고 답답한 빌딩 숲 사이에서 가끔은 숨통을 트일만한 소박한 공간 정도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가. 먼 훗날, 아이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곳이 늘 똑 같은 풍경만 있지 않기를 바란다. 좁은 뒷골목에서 마냥 신났던 그 기분을 내 아이도 함께 느끼고, 다양한 상상을 펼칠 수 있다면 좋겠다. 부디 해방촌은 경제의 논리에서 ‘해방’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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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길 풍경 임석재 저 | 북하우스
'골목길'이라는 친숙하면서도 잊혀져가는 서울의 한 모습을 담은 책이다. 서울을 가장 서울답게 해주는 것은 화려한 불빛의 마천루가 아니라 삶의 모습이 알알히 박혀있는 모퉁이 골목길일지도 모른다. 건축학자 임석재가 메모지를 들고 서울의 골목길을 발로 누비며 그리고 적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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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유승연

철저한 프리덤 속에 살던 ‘유여성’에서 ‘유줌마’의 삶을 살며 본능을 숨기는 중이다. 언젠가 목표하는 자유부인의 삶을 꿈꾸며.
예스24 홍보를 맡고 있다.

서울, 골목길 풍경

<임석재> 저13,500원(10% + 5%)

'골목길'이라는 친숙하면서도 잊혀져가는 서울의 한 모습을 담은 책이다. 서울을 가장 서울답게 해주는 것은 화려한 불빛의 마천루가 아니라 삶의 모습이 알알히 박혀있는 모퉁이 골목길일지도 모른다. 건축학자 임석재가 메모지를 들고 서울의 골목길을 발로 누비며 그리고 적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골목길의 의미에서부터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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