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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뛰어넘어라. 남들보다 반 발만 더: JTBC의 토크쇼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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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의 롤을 수행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망설임이 생기면 사람들의 기대치는 금방 하락한다. 선구자로 스스로 포지셔닝한 이가 경쟁하고 넘어 서야 하는 대상은 제 라이벌이 아니라, 과거의 자기 자신과 오늘날 세간의 기대치니까 말이다.

(‘<썰전>이 구축한 스테이션 칼라 - 금기를 뛰어넘어라. 남들보다 반 발만 더: JTBC의 토크쇼들 (1) ’에서 이어집니다.)
 
<썰전>의 성공적인 런칭은 JTBC에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그간 예능이 쉽게 다루지 못했던 정치 영역을 건드렸다는 파격부터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태도, 기계적인 중립을 취하지 않고도 시청자들에게 방송이 불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게 만드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썰전>을 성공시켰던 2013년 여름, JTBC는 그간 방송이 미처 다루지 못했던 또 하나의 금기를 살짝 넘어 보기로 했다.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마’성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는 명목으로 ‘마녀’라는 단어를 가져왔지만, 그 정체는 기실 섹스의 영역까지 포괄하는 19금 연애상담 프로그램이었던 <마녀사냥>을 런칭한 것이다. 과거 MBC <놀러와>의 ‘트루맨쇼’가 다루려 했으나 끝내 가닿지 못한 지점을 넘어 보려는 시도. 모두 알다시피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오랜 세월 Mnet <슈퍼스타K> 시리즈가 압도한 탓에 지상파조처 넘보지 못했던 금요일 밤 11시대의 왕좌를 잠시나마 CJ E&M으로부터 빼앗아 올 정도였으니.
 
 
이미지는 세게, 실제 수위는 그리 높지 않게
<마녀사냥>과 <비정상회담>이 디딘 절묘한 반 발
 
<마녀사냥>은 야한 농담의 달인 신동엽을 내세워 노골적인 성애 담론의 이미지를 심어주면서도, 정작 이론적으로 중요한 내용들은 각자 ‘무성욕자라서’, ‘전문가라서’라는 핑계로 덤덤한 톤을 유지했던 허지웅과 곽정은에게 맡겼다. 또한 청춘들의 연애 상담이 주를 이뤘던 방송답게, 그 명성에 비해 실제 방송 수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진하고 센 이야기를 다룬다는 이미지는 취하면서도 너무 노골적이거나 불쾌한 지점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균형을 잡았던 셈이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되 너무 깊게는 들어가지 않는 태도와, 이성애자 남성들끼리만 점유하는 토크의 비중이 더 높으면서 전문가 패널로는 여성을 초대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방송이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기술, <썰전>이 정치 토크를 다룰 때 성공적으로 활용했던 공식은 <마녀사냥>에도 착실하게 적용됐다. 금기를 넘되 딱 반 발자국만 넘어가는 아슬아슬함. 하나둘씩 토크쇼가 사라져가며 토크쇼 전성시대가 끝나는 건 아니냐는 불안한 토로가 나오던 시기에 이룬 성취였기에 더더욱 빛을 발했다. 

 

   1.jpg
다분히 이성애자 남성 중심적 시각의 토크쇼였음에도,
<마녀사냥>은 여성 전문가(곽정은)와 성 소수자(홍석천) 패널을 앉힘으로써
쇼가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마녀사냥> ⓒJTBC. 2013~2015

 

이와 같은 태도가 가장 극대화됐던 순간은 JTBC 예능국이 <비정상회담>을 선보였던 2014년이었다.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재한 외국인들을 모아서 각종 사회적 의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한 것은 과거 KBS <미녀들의 수다>가 시도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비정상회담>은 V자 형태의 무대 세트로 구성되어 있던 <미녀들의 수다>와 달리 실제 회담장을 방불케 하는 ㄷ자 형태의 세트를 마련해 패널들이 MC를 거치지 않고도 격렬하게 토론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다. 출연진들의 평균 한국어 실력 또한 <미녀들의 수다>에 비해 월등히 높았고, 덕분에 오가는 대화의 수준 또한 전에 보기 어렵게 깊었다. 특히 오랫동안 프로그램의 진지한 토론 분야를 지키는 보루였던 미국인 패널 타일러 라쉬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프로그램을 하차한 탓에 좀처럼 언급되지 않지만 월등한 입담과 좀처럼 굽히지 않는 강경한 태도로 프로그램 초창기 토론 분위기에 함께 불을 지폈던 터키인 패널 에네스 카야의 존재는 프로그램이 단순한 예능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보와 보수, 자유와 평등, 다원주의와 민족주의, 개인주의와 가족중심주의 등 서로 상충되는 입장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토론의 장으로도 기능하게 만든 요소였다.
 
 
다시 금기 뒤에서 망설이는 순간
인기는 하락한다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점검하며 대안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비정상회담>은 분명 <미녀들의 수다>가 가고자 했으나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지점까지 도달했지만, JTBC는 그 또한 딱 반 발만 내딛는 쪽을 택했다. 제작진은 토론이 깊어지려 할 때마다 맥을 끊으며 치고 들어오는 MC진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에 <비정상회담>은 어디까지나 예능이지 토론이 주가 아니라는 식의 입장을 밝혔다. 프로그램은 종종 동성애에 대한 근거가 희박한 혐오 등의 ‘틀린 것’을 ‘서로 다른 것’으로 포장하고 넘어가거나, 여성혐오에 대한 세간의 문제 제기에도 젠더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MC들의 발언을 거르지 않고 내보내기도 했다. 특히 회사 생활 경험이 없는 성시경이 한국 기업들의 불합리한 문화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대해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던 회차는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았다.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외국인들의 눈으로 보고 비판하는 쇼에서, 그것도 여러 의견을 중간에서 중재해야 할 책무가 있는 MC가 적극적으로 '틀림'을 '다름'으로 옹호했기 때문이다.

 
2.jpg

비교적 방영 초반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이후 <비정상회담>이 답습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예견할 수 있었던 장면. '틀림'은 어떻게 '다름'으로 둔갑해 존중받는가?
<비정상회담> ⓒJTBC. 2014~

 

딱 반 발만 더 나가는 것으로 성공을 거둬왔던 쇼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 이 시점이었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은 전세계적으로 혐오에 대한 저항과 저항으로서의 혐오가 치열하게 진행되는 시기이고, 한국 사회에서도 사회적 금기의 선이 매일 같이 새롭게 그어지고 있는 시기다. JTBC의 예능들은 일개 TV 프로그램이 금기를 반 발이나마 월경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기를 끌었지만, 사회적 담론이 업데이트되는 속도에 맞추지 못한 탓에 눈깜짝할 사이에 다시 금기 뒤에서 망설이는 쇼가 되었다. <마녀사냥>의 주된 시청자 층이었던 2049 여성층은 어느 순간부터 여성을 ‘된장녀’와 ‘개념녀’로 나누는 식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표현하는데 망설임이 없는 MC들이나, 여전히 이성애자 남성 중심으로 쏠린 대화의 무게추를 옮기지 않는 프로그램의 태도에 진력을 내기 시작했다. <비정상회담>의 거침없는 토론에 매료되었던 시청자들은 틀림의 문제까지 다름으로 눙치는 프로그램의 무난함에 조금씩 실망했다. <마녀사냥>은 시청률 하락으로 폐지됐고, <비정상회담>은 패널들을 교체해 분위기 쇄신을 꾀하는 중이지만 그 실험이 유효할지는 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어디가 새로운 금기의 선인지 끊임 없이 살피는 것
선구자로 포지셔닝한 이들의 숙명
 
금기를 딱 반 발만 넘는다는 건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전략이다. 금기를 넘어 도발적인 매력을 뽐내는 동시에 반 발만 앞으로 가는 것으로 안정을 바라는 이들을 안심시키는 것은 얼핏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전략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한번 금기를 넘는 것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면 끊임 없이 그 다음 금기에 도전할 것을 요구 받게 된다. 그 다음 반 발자국을 떼는 시점과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를 치열하게 살피지 않으면, 다시 말해 선구자의 롤을 수행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망설임이 생기면 사람들의 기대치는 금방 하락한다. 선구자로 스스로 포지셔닝한 이가 경쟁하고 넘어 서야 하는 대상은 제 라이벌이 아니라, 과거의 자기 자신과 오늘날 세간의 기대치니까 말이다.
 
추신
 
모든 TV 프로그램들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고 채널이 돌아가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것일 테다. 그러나 예능만큼 그 속성이 노골적으로 두드러진 장르는 없다. 드라마나 보도, 교양 장르가 차마 하지 못하는 일들을 예능은 기어코 저지르고 만다. 논두렁에서 엎어지고 구르는 슬랩스틱부터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예능판 TV 영화를 만드는 일까지, 전통적인 말장난부터 뮤지컬이나 영화, 연극과 미술 등 다양한 타 예술 장르의 차용까지, 21세기의 예능은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치운다.
 
21세기 TV에서 가장 중요하고 압도적인 장르가 되어버린 예능을 다루며, 각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위해 구사하는 전략들에 집중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 전략들은 기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기 위해 꾸미는 생존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치열해지는 경쟁 구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상대를 매료시키고 내 뜻을 설득해 내가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예능 프로그램들을 통해 답해보려는 것이 이 코너의 목적이었다. 연재가 끝난 지금, 내가 과연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는지는 미지수다. 그저 읽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어 가셨기를,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분야인 예능의 사례를 보며 자신의 삶을 기획하는 방식에 대해 재점검해 볼 기회가 되셨기를 바랄 수 밖에.
 
이번 회차를 마지막으로 9개월 남짓한 연재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 코너는 예능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한 코너인지, 그래서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느 쪽인지에 대해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시작한 이 불친절한 코너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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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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