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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전거의 시간

나의 자전거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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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간다. 제자리에서 쳇바퀴처럼 돌고 있는 것 같아도 페달을 굴리고 있으면 앞으로 간다는 게, 그 당시 나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취미를 물어보면 우물쭈물하다 자전거라고 말한다. 주말이면 누워서 핸드폰을 보다가, (옆으로 돌아누워) 또 보다가, TV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밥을 먹고, 조금 더 뒹굴다가, 아주 가끔 자전거를 탄다. 가끔 타는 이유는 시간이 없는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워낙 아름다운 사계절이라 자전거를 탈 만한 날이 일 년에 한.... 20일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20일을 즐기고 있다. 지금은 자전거의 시간이다.


어렸을 때 옆집 친구가 타는 세발자전거가 부러웠다. 얼마 안 가 나도 세발자전거가 생겼고, 뒤에도 짐칸이 있어서 나름 '야타'를 외치며 뒤에 한 명을 태우고 다닐 수 있었다. 세발자전거에 앉기에 다리가 너무 길어지자 다음은 네발자전거 차례였다. 자전거에 달린 보조 바퀴는 정말 충실하게 보조만 해서 플라스틱에 고무를 두르고 평형이 맞지 않은 채로 길바닥마다 드륵드륵 소리를 냈다. 그런 자전거도 분실과 절도가 트렌드여서 어느 날 없어졌는데, '범인은 이 안에 있어'라는 명언에 걸맞게 어떤 꼬마가 신나게 그 자전거를 타고 앞을 지나가는 바람에 덜미를 잡은 기억도 난다.


그 뒤로 몇 번에 걸쳐 새로운 자전거가 집 앞에 세워졌다가, 버려졌다.


세월이 흘러 흘러, 코찔찔이 보조 바퀴 어린이는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학점은 2점대였고, 인문학부인 데다, 혼자 유럽 여행을 갔다거나 인턴십을 했다거나 하는 이력서용 경험은 전무하고 학자금 대출은 생활비까지 포함해 한도까지 알차게 받아놓은 상태였다. 자아 성찰과 직업 탐색을 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당장 어딘가 들어가서 월급을 받아야 했다. 어떻게든 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 조금, 의기소침해 있었다.


기분이 좀 나아지기 위해 문득 자전거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건을 사면 높은 확률로 기분이 좋아지니까. 하지만 돈을 벌지 않고 용돈도 받지 않는 대출자가 감히 새 제품을 넘볼 수는 없었기에 평화로운 중X나라를 한 달여 간 탐색했다. 통장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않을 정도의, 그러나 못생기고 더러워서도 안 되는 자전거를 찾아 헤맨 끝에 연두색 자전거에 마음을 빼앗기고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한 채 거래를 덥석 물었다.


약속한 장소에 나가자 키 크고 위험해 보이는 젊은 남성 두 명이 귀여운 자전거를 인질이라도 잡은 것처럼 사이에 두고 어두운 골목길에 서 있었다. 나는 행여 사기당하고 돈도 털리고 막 나쁜 짓도 당할까 봐 친구에게 재빨리 중X나라 거래 중인데 20분 후에도 문자를 보내지 않으면 큰일이 생긴 거로 알고 경찰에 전화하라는 연락을 남겼다.


아무도 걱정 안 하지만 미리 말하면 결론적으로 그 두 분은 선량한 사람이었고,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돈과 자전거를 교환했다. 호구가 될까봐 자전거에 대해 잘 아는 척 하려고 애썼다. 솔직히 어두워서 뭐 보이지도 않았다. 쿨한 척, 중고 거래는 사흘에 한 번씩 해보는 척 '수고하세요'라고 말하고 행여 쫓아올까 봐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바람이 좋았다.


별일 없이 거래를 마쳤다는 뿌듯함과, 내가 직접 고른 내 소유의 차(?)가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지나가던 사람을 칠 뻔한 건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매우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만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는 걸 까먹은 것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집까지 오는 동안 친구의 상상 속에서 나는 나쁜 놈들에게 납치당해 온갖 험한 일을 당하고 있었다.


자전거 이름은 SNS에 의견을 물어 정했다. 후보군은 다음과 같았다 : 여치(녹색이라), 녹색당(녹색이라), 두발이(두발이라), 씽씽이(강아지는 바둑이 자전거는 씽씽이), 찌걱이(체인이 찌걱대서). 전혀 치열하지 않은 경쟁 끝에 두발이로 결정했다.

 

두발이.jpg


여튼, 두발이를 나는 거의, 사랑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늘 두발이를 끌고 나갔다. 때가 되면 씻기고 오일을 발라줬으며, 두발이와 찍힌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렇게 한강을 달리고 공원을 달리고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었다. 도시락을 싸서 두발이의 손잡이에 덜렁덜렁 매단 채로 학교에 다녔다. 전조등이 고장 나고 후미등을 두 번 도둑맞고 안장은 세 번을 도둑맞을 때까지, 두발이는 내 곁에 있었다. 그나저나 안장은 뭘 그렇게 많이 빼가는지. 나는 안장을 훔쳐간 사람을 지금도 용서하지 않는다. 보고 있나 안장도둑.


자전거는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간다. 제자리에서 쳇바퀴처럼 돌고 있는 것 같아도 페달을 굴리고 있으면 앞으로 간다는 게, 그 당시 나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여차여차 취직을 했다. 사람이 변하면 사랑은 곧 식게 마련이라고, 나는 두발이의 녹슨 나사와 쓸데없이 무거운 차체가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에게 입양을 보내고 나서, 한강을 질주하는 우람하면서도 가볍고 화려한 자전거들을 틈틈이 검색하고 길을 가다 보이는 자전거 편집숍마다 들어가 주인을 귀찮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월급도 받고 돈도 있는데, 비싼 자전거 살 수 있는데,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나한테 필요한 건 더 빠른 속도보다, 페달이 만들어내는 바람만큼의 위안이었다. 결국 자전거포 아저씨만 실컷 괴롭히고 두발이보다 살짝 더 가볍고 살짝 더 비싼 친구를 다시 중X나라를 통해 입양했다. 두 번째라고 나름대로 가격 흥정도 했다.


종북이.jpg

이 친구다. 이름은 '빨갱이'로 하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건 좀 너무한 것 같아서 ‘종북이’라고 정했다. 혹시 나중에 애가 생기면 이름은 절대 내가 짓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종북이는 여전히 있다. 미친 여름을 이겨내고 바람을 만들어준다. 차를 살 나이지만 자전거가 있다는 건 나쁘지 않다. 토끼도 거북이도 고양이도 개도 못 키우는 청춘이라면 자전거 정도는 키워도 되지 않나. 다시, 지금은 자전거의 시간이다. 나의 자전거와 이 시간을, 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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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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