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사람이 되는 꿈 (2)

아는 것과 느끼는 것, 보는 것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존재가 있다는 걸 아는 것과 직접 느끼는 것, 얼굴을 보는 것이 제각각 달랐다. 내 뱃속에 이런 얼굴의 사람이 있다는 것, 옆 사람과 나를 닮은 아기가 이런 모습이라는 것이 나를 좀더 엄마로 만들었다.

29.jpg

 

새벽에 우연히 SNS에서 어떤 남자아기의 재롱이 담긴 동영상을 보았다. 아이의 엄마가 찍어 올린 것인데 누군가의 좋아요, 덕분에 나까지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나와 어떤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아기였지만 나는 그만 홀딱 반해서 그 동영상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다. 그것도 모자라 그 엄마의 공간으로 넘어가 그 아기의 현재부터 과거까지 역주행하며 사진과 동영상을 흐뭇하게 구경했다. 조카나 친구의 아들이라도 되는 듯. 춤을 추고 뛰어다니던 아이는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아장아장 걷고, 의자를 잡고 일어서고, 기어 다니고, 앉아서 손뼉을 치고, 누워서 옹알이를 했다. 결국 백일 무렵, 생후 한 달, 신생아의 모습으로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아마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는 한 아기의 성장 앨범을 보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감격에 젖었다. 뺨을 맞대고 있는 엄마와 아들은 많이 닮아 있었다.


뱃속의 아기는 누구를 닮았을까.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초음파를 볼 때마다 건강하기만 하면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해놓고, 막상 건강하다는 말을 들으니 얘는 어떻게 생겼을까, 누굴 닮았을까 궁금해졌다. 임신 관련 카페에는 종종 입체 초음파 사진과 신생아의 사진을 비교해놓은 게시물이 올라왔다. 보통 출산을 10주 정도 남겨놓고 보는 건데도 싱크로율이 상당했다.


오늘은 얼굴을 보러 간다고 하자 옆 사람은 같이 가겠다고 했다. 축복이는 머리 크기, 다리 길이가 3주 정도 커서 이목구비도 뚜렷한 편이었다.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는 동안 나는 어머, 어머, 를 연발했고 옆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애가 답답하진 않을까요? 하고 물었다. 고개를 돌릴 때의 옆모습이라든가 앙다문 입매가 옆 사람과 몹시 닮아서 신기했다.


존재가 있다는 걸 아는 것과 직접 느끼는 것, 얼굴을 보는 것이 제각각 달랐다. 내 뱃속에 이런 얼굴의 사람이 있다는 것, 옆 사람과 나를 닮은 아기가 이런 모습이라는 것이 나를 좀더 엄마로 만들었다. 나는 의사가 출력해준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두고 이따금 꺼내 보았다.


다른 건 누굴 닮았을까. 임신 기간 내내 바란 것이 있다면 예쁘거나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성격에 대한 것이었다. 아빠 엄마의 장점만 닮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아빠를 닮아라. 내 단점을 닮은 아이를 생각하면 아찔했다.

 

 

 


[관련 기사]


- 여자의 배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메슥거림 (2)
- 아기를 위해 몸과 마음의 공간을 늘리며
- 무리와 조심 사이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5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