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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엄마가 되는 여자들 (2)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된 ‘그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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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질 때까지 불도 켜지 않은 채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딱 하루만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고요하게 보내고 싶었다. 마지막에 에바가 케빈을 끌어안으며 영화가 끝났다는 것이 미미한 온기, 희미한 빛처럼 느껴졌다.

한몸의시간

 

저녁 무렵, 해가 저물어갈 때 <늑대아이>를 생각하며 좀 외로웠다면 어둠이 완연히 내려앉은 밤에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떠올라 침울해졌다.

 

옆 사람과 같이 <케빈에 대하여>를 본 건 2012년 여름이었다. 영화에 대한 정보라곤 좋아하는 틸다 스윈튼이 주연을 맡았다는 것과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꽤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평 정도였다.


평일 낮이라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뚝뚝 떨어져 앉은 채 관람했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팔뚝에 돋은 소름을 몇 번이나 쓸어내려야 했다. 내게 그 영화는 모성애나 사이코패스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지만 하드고어에 가까운 공포영화였다.


극장에서 나와 카페에 자리 잡은 우리는 한동안 다른 얘기만 나누었다. 그리고 팔뚝의 소름이 완전히 가라앉았을 때쯤 이 문제적 영화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천천히 털어놓았다. 내 눈에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에바는 조용하고 자기애가 강하고 자유를 갈망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사람 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가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된 여자, 그래서 엄마가 될 준비나 모성애 모두 결여된 여자로 보였다. 나는 겁에 질리고 공허한 눈동자로 아이를 응시하는 그녀를 이해했다가 책망했다가 가여워했다.


영화의 원제가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케빈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지만 그건 에바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훨씬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케빈이 처음부터 괴물이었거나 엄마에게 존재를 거부당하고 사랑받지 못해서 괴물이 되었거나, 괴물이 된 아이를 본다는 건 고역이었다.  

 
나는 공포영화라고 생각했지만, 틸다 스윈튼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해 ‘엄마와 아들의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답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했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불도 켜지 않은 채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딱 하루만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고요하게 보내고 싶었다. 마지막에 에바가 케빈을 끌어안으며 영화가 끝났다는 것이 미미한 온기, 희미한 빛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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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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