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배려의 의미
자연스레 나누어야 할 것
당신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면, 그건 눈앞의 여자에게만 자리를 내어주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아기, 외출한 여자와 아기의 안부를 염려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 된다. 그만하면 친절을 베풀 만하지 않은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가끔 볼일을 보러 나가거나 금요일 저녁에 신촌으로 강의를 하러 갈 때면 임산부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게 참 힘든 일이구나 싶었다. 임신 초기에는 배가 나오지 않아서 자리를 양보받기 어려웠고 그 뒤에는 어르신들이 활동하는 시간대와 대중교통 이용시간이 겹치다보니 빈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임산부 배려석이 종종 눈에 띄었지만 제구실을 못하는 듯했다.
만삭이 아니라 서서 가는 게 많이 힘들지 않았지만, 부른 배를 계속 힐끔거리면서도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느라 고개를 푹 숙인 사람들을 보거나 노약자석에 가지 왜 여기에서 배를 내밀고 서 있느냐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면 너무하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임산부들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를 갖거나 낳는 게 유세는 아니지만 충분히 보호받을 만한 일이 아닌가. 결혼하거나 아이 낳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서 그들은 몸도 힘들고 매일 마음까지 다치며 일터와 집을 오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자 마음이 짠했다.
물론 나도 안다.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그저 엉덩이를 내려놓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을 내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한숨 같은 휴식이나 다디단 토막잠을 양보하는 행위라는 걸.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런 배려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당연히 양보받아야 한다는 듯 호의를 무시하며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면, 그건 눈앞의 여자에게만 자리를 내어주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아기, 외출한 여자와 아기의 안부를 염려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 된다. 그만하면 친절을 베풀 만하지 않은가. 그러니 임산부들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 그가 비록 임산부처럼 보이는 배 나온 여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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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