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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흔치 않은 요리는 없을까…

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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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파에야는 ‘파에야 발렌시아나’. 파에야 냄비에 충분한 양의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달군 후 마늘, 양파, 셀러리 등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잘게 썰어 넣고 닭고기나 돼지 갈비와 함께 볶는다. 토마토, 사프란스페인 요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암꽃술을 말린 향신료, 씻어놓은 쌀, 생선 육수나 닭 뼈 육수를 더해 쌀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최소한의 물을 넣고 가열해 완성한다.

 
셰프의 딸
나카가와 히데코 저 | 마음산책
『셰프의 딸』은 여러 나라를 삶의 무대로 삼은 한 코즈모폴리탄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마음이 이끄는 곳을 택했던 사람. 그는 일상에 파묻혀 꿈을 접어둔 이들에게 ‘안주’와 ‘정체’ 대신 스스로 찾아가는 삶의 기쁨,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 우리 집 대문에는 요리 교실 간판이 송구스럽다는 듯 걸려 있었다. 간판 값을 아끼려고 무대 미술 관련 일을 하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합판을 둥글게 잘라, 거기에 아들이 그린 파에야 그림을 옮겼다. 요즘 유행하는 카페나 레스토랑, 세련된 디자인 사무소에 걸려 있는 간판과는 상당히 다르다.

게다가 ‘Gourmet Lebkuchen’, ‘구르메 레브쿠헨’이라고 발음하는 이 단어가 검은 글씨로 파에야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요리 교실에 오는 사람들이야 ‘아하, 요리 교실의 간판이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여기는 무슨 가게인 걸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방수용으로 니스를 바른 간판은 몇 년이 지나자 색이 꽤 바랬다. 아들이 그린 파에야는 파에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 여름방학 때 작은아들에게 커다란 흰 도자기 접시를 주고, 그 안에 스페인 요리에 쓰인 식재료를 그리는 숙제를 주었다. 이번에는 도자기로 만들어서 누가 돌만 안 던지면 언제나 문어가 간판 속에서 춤추고 있을 것이다.

‘Gourmet Lebkuchen’의 ‘Gourmet’는 프랑스어로 ‘미식가, 식도락가’라는 의미다. ‘Lebkuchen’은 독일어로, 진저브레드 같은 독일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과자를 뜻한다. 벌꿀, 시나?이나 클로브(정향나무)의 꽃봉오리를 따서 말린 향신료, 오렌지나 레몬 껍질 절임, 초콜릿 등으로 맛을 내기 때문에 약간 씁쓸한 맛이 나는 독특한 독일 과자다. 일곱 살 때 독일에 가서 처음 먹었을 때, 시나몬 같은 향신료의 맛이 찌릿찌릿하게 느껴졌던 레브쿠헨은 그 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가 되었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간단히 말하면 ‘미식가로 살기’를 지향하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레브쿠헨의 이름을 따서 요리 교실 이름을 ‘Gourmet Lebkuchen’이라고 지었다는 얘기다. 스페인 요리를 중심으로 지중해 지방의 요리를 가르치는 우리 요리 교실의 간판 레시피는 파에야로, 요리 교실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음식이다. 파에야는 원래 바닥이 넓고 깊이가 얕고 손잡이가 달린 철제 냄비를 이르는 말이다. 파에야 냄비로 만든 요리 자체를 파에야라고 부르면서 그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파에야는 ‘파에야 발렌시아나’. 파에야 냄비에 충분한 양의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달군 후 마늘, 양파, 셀러리 등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잘게 썰어 넣고 닭고기나 돼지 갈비와 함께 볶는다. 토마토, 사프란스페인 요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암꽃술을 말린 향신료, 씻어놓은 쌀, 생선 육수나 닭 뼈 육수를 더해 쌀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최소한의 물을 넣고 가열해 완성한다. 파에야 냄비가 없어도 바닥이 얕은 큰 냄비나 직경이 큰 프라이팬으로 대체할 수 있다. 어쨌든 한 사람이 먹는 요리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먹는 요리라서 결혼 전에는 거의 만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결혼한 뒤에는 집들이와 돌잔치 등 신혼집에 손님들을 초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흔치 않은 요리는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끝에 파에야가 떠올랐다. 아직 서울 시내의 레스토랑에 파에야라는 메뉴가 없었던 때였다. 파에야는 전혀 맵지 않은 음식인데도 감자탕 국물로 만든 볶음밥 비슷한 맛이 나 한국 사람들에게도 호평받았다. 새우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 한 파에야는 일본인, 미국인, 중국인, 독일인, 호주인 모두가 굉장히 좋아했던 메뉴다. 이로 미루어볼 때 일본의 스시같이 글로벌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스페인 요리 가운데 파에야만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탓에, 스페인 본래의 요리 체계 안에서 쌀 요리가 가지는 다양성이나 위치가 애매해진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스페인어로 쌀은 ‘아로스’다. 쌀을 사용한 요리 자체도 아로스라고 하는데 아라비아어가 어원이다. 8세기에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한 아라비아 민족에 의해 스페인에 벼농사가 전해졌다고 하니, 스페인 쌀의 역사는 길다. 아로스의 주류는 쌀알이 긴 인디카 쌀이 아닌, 한국이나 일본에서 먹는 자포니카 쌀과 거의 비슷한 그라노 데 티포 메디오, 중간 크기의 둥근 쌀이다. 아라비아 민족이 코르도바나 그라나다 등 스페인 남부를 중심으로 벼농사를 전개한 것과는 반대로, 스페인 사람들은 지금도 벼농사 지대의 중심인 지중해 연안의 발레시아 지방에서 벼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스페인의 식생활에서 쌀은 중요한 기본 식재료 중 하나였다. 스페인의 쌀 요리는 뚝배기로 조리하는 카수엘라Cazuela 요리, 바닥이 깊은 냄비로 만드는 푸체로Puchero, 그리고 파에야 냄비를 쓰는 파에야, 이 세 가지로 구분된다. 발렌시아 지방의 벼농사 지대에서 비롯한 파에야 요리의 원형은 ‘파에야 디 캄포(밭의 파에야)’다. 어패류를 넣지 않고 쌀에 콩과 채소, 토끼고기나 달팽이를 넣고 익혀 먹는 시골풍 요리다. 이 요리와 발렌시아 해안 지방에서 해산물을 넣어 만든 파에야가 합쳐진 것이 현재의 ‘파에야 발렌시아나’(혹은 ‘파에야 믹스타’라고도 한다)인데, 스페인 지중해 지역에 분포한 피서지에 오는 관광객들에 의해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원래 스페인에서 쌀 요리는 아시아 사람들의 주식과는 달리 밀가루나 시리얼 정도로 취급된다. 어디까지나 전채, 즉 메인 요리를 먹기 전에 먹는 음식인 것이다. 하지만 파에야 발렌시아나가 세계적인 스페인 요리로 인식되자, 스페인 사람들도 파에야를 메인 요리로 먹게 되었다고 한다. 요리 교실에서도 쌀 파에야를 몇 개 한 다음에는 피데오 파에야를 가르치는데, 한국에서는 피데오 면이 시판되지 않아서 요리 실습 도중 학생들이 스파게티 면을 손으로 부러뜨려야 한다. “2?티로 하세요” 하고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수작업이다 보니 일정한 길이로 되지 않고 4센티가 되거나 한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육수의 수분으로 팽창한 면이 마치 지렁이처럼 변해서 일본인은 ‘야키소바’, 한국인은 ‘짜파게티’ 같다는 감상을 말한다.

의욕에 불타올라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요리를 만들자!’ 하며 레시피를 정리한 나의 열의는 한풀 꺾였지만, 피데오 파에야는 야키소바나 짜파게티처럼 저도 모르게 계속 먹게 되는 맛인 것 같다. 처음에는 조심조심 입으로 가져가던 포크의 속도가 나중에는 점점 빨라져, 마지막에는 냄비가 텅텅 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음식과 레시피가 있어서, 다른 문화의 음식을 접할 때면 혀가 춤을 추고 위가 노래를 부른다. 그럴 때야말로 음식을 먹는 행복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2011년 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가족들과 먹었던 파에야는 내가 15년 전에 배운 파에야와 달랐다. 옛날 바르셀로나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던 무렵, 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모두 함께 해변의 레스토랑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파에야를 먹는 것이었다. 2011년 가족들과 다시 먹은 3인분의 파에야 발렌시아나에는 새우 두 마리, 홍합 네 개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때처럼 모두들 나눠 먹는 요리가 아니었다. 웨이터가 완성된 파에야 냄비를 테이블까지 가져와 흘끗 보여주고 난 다음, 안쪽에서 디너 접시에 옮겨 담아 다시 테이블로 가져 왔다. 1인분에 26유로(약 41000원). 괜스레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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