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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담의 추천사] 쇠질할 때 듣는 플리

안담의 추천사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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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맞는 스테로이드라는, 합법 부스터라는, 틀기만 해도 봉무게는 그냥 들린다는, 톰 하디도 운동할 때 들을 것 같다는 쇠질 음악 속에서 땀을 흘린다. (2024.05.08)


저거 들 수 있을까? 헬스장에 새로 등록한 지 2개월 정도가 지나면 질량을 지닌 존재를 대하는 관점 하나가 추가된다. 걸어가면서 무슨 사물을 볼 때마다 저거 내가 들면 들릴까 가늠해 보곤 하는 것이다. 현재 내 다리 근육으로는 최대 50kg의 쇠봉과 원판을 어깨에 지고 두어 번을 앉았다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까 저기 버려진 TV나 의자는 가뿐히 클리어. 우리 집에 사는 25kg의 대형견도 무리 없이 안아 올릴 수 있다. 그가 참아준다는 전제가 있을 때의 얘기지만. 쌀도 반 가마니 정도 가능하지. 하지만 쌀을 땅에서부터 뽑다가 허리 나갈 수도 있으니까, 누가 내 어깨에 얹어주고 시작한다면 좋을 듯. 정류장에서 7715번 버스를 함께 기다리는 저 여성분도 잘하면 가능. 프론트 스쿼트처럼 몸 앞에 매다는 건 쏟아질 위험이 있으니까 업어서 앉는 편이 낫겠다. 아니면 쇠로 된 바처럼 단단하게 몸을 펴주실 수 있는지 물어보거나.

헬스장과 나의 관계를 재정립할 생각을 한 게 대체 몇 번째인지 잘 모르겠다. 10년 전에 한 번, 그리고 5년 전에 한 번 꽤 열심히 근력 운동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사이에 크로스핏 박스를, 바디컨트롤 짐을, 수영을, 요가를, 필라테스를, 유튜브와 함께 하는 고독의 홈트레이닝과 달리기를 고루고루 시도했던가. 말만 들으면 상당한 활력을 뽐내는 신체의 소유자일 것 같지만, 내 몸을 보고 운동 좀 하시지 않냐고 운을 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몸에 유효한 변화가 있을 만큼 운동을 지속한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운동에 대해 나는 주워들은 지식만 많은 생초보다. 일주일 머물렀던 이국땅을 평생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나의 헬스장은 누군가의 파리요, 베를린이요, 홍콩이다. 꽤 많은 운동과 이번에야말로 안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제발 2년 차가 되고 싶다. 여전히 초보이지만, 새로 시작하는 사람의 흥분이 가신 초보가 되고 싶다. 나는 늘 새로 시작하고, 그러므로 늘 흥분해 있다. 그 이후의 상태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나는 전문적인 초보다.

2년 차가 되기 위한 수련을 n번째로 다시 시작한 이유는 첫째로 목과 어깨에 자주 찾아오는 고통 때문이다. 둘째로는 목과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 엄한 얼굴로 운동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운동하고 있다고 대답하기 위해서다. 작년부터 목에 담이 오는 빈도가 갑자기 늘었다. 담이 걸리는 계기도 황당할 정도로 사소하다. 누가 불러서 뒤를 돌아보다가, 옆을 지나가는 자전거에 놀라서, 아침에 기지개를 켜다가 별안간 신호가 온다. 때로는 목에서, 때로는 어깨에서, 때로는 견갑골 사이에서 피어난 통증은 반나절이면 온 등으로 퍼진다.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채로 밤을 꼴딱 새우고 병원에 가면 대략 이런 처방이 내려진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 것. 이 삶의 병명은 이 삶이므로. 비싸고 아픈 체외충격파 치료를 2회 만에 포기하고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2주 만에 훨씬 편안해진 상체를 느꼈을 때 생각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우울에도 무기력에도 사회적 소외에도 가난에도 운동을 처방하는 운동 만능론자가 되지 않으려면.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모두가 어떻게든 운동을 하고 있다. 건강과 생명을 향한 집착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동시에 폼롤러를 사고, 삶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끔찍해하는 동시에 필라테스 센터를 알아보고 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운동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을 것 같았던 이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아파서라고 말한다. 아프면 뭐가 문제지? 우리는 자문하고, 아프면 일을 못 하지. 이렇게 자답한다. 아프다고 쓰는 일을 할래도 지금보다 건강해야 한다는 사실 앞에 다른 무엇보다 굴욕감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만나고 싶다. 그를 만나서, 만나서, 너무나 반갑게 만나서… 무얼 하지? 같이 운동 하나….

내가 가는 헬스장에서는 요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라는 가사가 나오는 노래를 주구장창 틀어준다. 아픈 건 딱 질색이라니, 운동을 해야 할 이유로 충분하군, 생각한 뒤 늘 헤드셋으로 다른 음악을 들었으므로 그것이 (여자)아이들의 노래라는 사실도, 그 노래의 앞부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뭔가 잊고 온 게 있는 것 같아. 괜히 이상하게 막 울 것만 같고. 그냥 지나치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생각은 딱 질색이니까. 이런 의미심장한 노래를 완벽한 노이즈 캔슬링 기술로 차단해 주는 내 헤드셋에서는 빵빵한 ‘쇠질 플레이리스트’가 흘러나온다. 귀로 맞는 스테로이드라는, 합법 부스터라는, 틀기만 해도 봉무게는 그냥 들린다는, 톰 하디도 운동할 때 들을 것 같다는 쇠질 음악 속에서 땀을 흘린다. 더 건강해지고 싶다. 더 단순해지고 싶다. “오늘 뭐해?”라고 물으면 “하체.”라고 대답해 보고 싶다. 나는 생각은 딱 질색이니까…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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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담(작가)

1992년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났다.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다가 강원도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 미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에는 예술의 언저리에서만 서성였다. 2021년부터 ‘무늬글방’을 열어 쓰고 읽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2023년에 활동가들을 초대해 식탁에서 나눈 대화를 담은 첫 책 《엄살원》을 함께 썼다. 가끔 연극을 한다. 우스운 것은 무대에서, 슬픈 것은 글에서 다룬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대개 슬프다고 생각한다. 정상성의 틈새, 제도의 사각지대로 숨어드는 섹슈얼리티 이야기에 이끌린다. 존재보다는 존재 아닌 것들의, 주체보다는 비체의, 말보다는 소리를 내는 것들의 연대를 독학하는 데 시간을 쓴다. 주력 상품은 우정과 관점. 얼룩개 무늬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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