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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 시점이라는 장치

'문지혁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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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은 작가와 인물,(화자와 주인공) 그리고 독자 사이의 아주 복잡한 관계, 궁극적으로는 어떤 '특정한 거리'를 만들어 주는 장치거든요. (2023.08.03)


격주 목요일, <채널예스>에서
소설가 문지혁의 에세이 ‘소설 쓰고 앉아 있네’를 연재합니다.


언스플래쉬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플롯, 문장, 메타포, 스토리텔링, 디테일, 결말... 모두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무엇보다 제일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은 바로 '시점'입니다. 저는 시점이 소설의 전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어요.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은 곧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니까요.

사전적으로 시점이란 '포인트 오브 뷰(point of view)', 그러니까 어디에서 볼지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라보는 위치(vantage point)'라고도 하죠. 카메라를 생각하시면 쉬워요. 위에서, 아래에서, 측면에서, 부감으로. 같은 장면, 같은 사물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카메라의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를 얻게 되는 거죠.

소설에서는 어떨까요?

카메라 대신 인물을 선택해야 합니다. 소설을 쓰기로 한 이상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기로 작정해야 해요. 그럼 그냥 그 인물이 되면 될까요?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쓸까요? 그렇게 쉽다면 참 좋겠지만, 시점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시점이라고 하면 대개 1인칭, 3인칭 같은 용어가 먼저 떠오르곤 하죠. 1인칭 주인공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같은 분류처럼요. 이렇게 시점을 기계적으로 구분하는 방식도 유용하지만 그보다는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해요. '시점'은 작가와 인물,(화자와 주인공) 그리고 독자 사이의 아주 복잡한 관계, 궁극적으로는 어떤 '특정한 거리'를 만들어 주는 장치거든요.

수업에서 제가 즐겨 사용하는 비유는 자동차입니다. 예를 들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셔서 어딘가로 함께 이동할 때, 제 딸들은 항상 고민하거든요. 누구 차를 타고 가지? 아빠 차? 할아버지 차? 목적지는 같지만,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아이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선택하는 경로, 운전 스타일, 차종과 시야, 승차감과 서스펜션,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탑승자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마저도요.

물론 독자가 시점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일단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독자는 작가가 선택한 시점(자동차)과 초점 인물(운전자)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자동차를 타는 것처럼요. 여기가 시작점입니다. 독자는 마치 투명 인간이 된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조수석에 들어가 앉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는 운전자가 자기 마음대로 운전을 하죠. 자기 생각과 내면도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조수석에 타고 있는 독자는 그걸 모두 듣게 되지만, 자동차 바깥세상에는 아마 들리지 않겠죠.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어떨까요? 운전자는 역시 자기 마음대로 운전을 하고, 내면도 거리낌 없이 말하겠지만, 그의 목적지는 누군가에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관찰자 시점의 운전자에게는 쫓아가는 대상이 있어요. 주목해서 지켜보는 진짜 주인공이 자동차 바깥에 있습니다.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하더라도, 내(독자)가 탄 자동차의 운전자가 주인공이냐 관찰자냐에 따라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게 전개될 수 있는 거죠. 이것이 바로 '시점'이라는 장치의 힘입니다.

3인칭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이 자동차 비유가 (아주 약간) 쓸모 있는 이유는 3인칭 시점 때문입니다. 3인칭 시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죠. 객관적 시점, 제한적 시점, 그리고 (문제의) 전지적 작가 시점. 이 중 객관적 시점은 아까 논했던 우리의 전제를 배반합니다. 독자는 자동차에 타지 않아요. 인물 대신 카메라를 선택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누구의 내면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들어가서도 안 되고요.

제한적 시점은 '전지적 시점에서 뭔가를 제한한다(limited)'는 뜻입니다. 무엇을 제한하는 걸까요? 전지적 시점이 세상의 모든 자동차를 다 탈 수 있다고 으스대는 시점이라면, 제한적 시점은 그것을 (대체로) 오직 한 자동차에만 적용하겠다는 시점입니다. 3인칭의 서술과 묘사가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1인칭 시점과 매우 유사해지죠. 1인칭의 '나'가 3인칭의 어떤 '이름'으로 바뀌는 정도의 변화입니다.

이제 시점 중의 시점이자 시점의 왕, 아니 악의 근원이기도 한 전지적 작가 시점 이야기를 해볼까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누구의 내면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으며, 무엇이든 가능하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나머지, 결과적으로 가장 망하기 쉬운 시점입니다. 말 그대로 작가가 신이 되는 거니까요. 물론 이 시점을 잘 사용하면 마치 신의 시선(God’s view)처럼 저 아래 방황하는 개미 같은 인간들을 굽어살피는 매우 위대한 이야기를 창조해 낼 수도 있습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나 코맥 매카시의 『로드』처럼요. 하지만 대개는 '아무 차나 다 잡아탈 수 있는' 이 몹쓸 능력 덕분에 초보 작가들에게는 재앙이 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A와 B가 싸우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하는 작가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죠. 'A의 내면도 보여주고, B의 내면도 보여주면 이 둘의 갈등이 더 잘 드러나지 않을까?' 그리고 작가는 실제로 그렇게 해버립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바로 소설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실수, '머리 넘나들기(head-hopping)'를 범하게 됩니다.

아까 자동차 이야기 아직 기억나시죠. A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A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탑승해야 합니다. 그리고 달리는 거죠. 그러다 갑자기 B의 자동차가 옆으로 따라붙습니다. 조수석에 탄 우리에게 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B가 운전하는 자동차로 옮겨 타세요.

...네?

지금 여러분의 표정이 바로 제 표정입니다. 가능할까요? 목숨 걸고 한 번은 해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차에도 타고 싶지 않을 겁니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미숙하게 다루는 소설에서 이런 머리 넘나들기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어떤 소설을 읽는데 이상하게 피곤하다면 바로 이런 이유가 숨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두 사람 이상의 내면에는 들어갈 수 없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의 차를 멈추고 다른 차로 갈아타게 해주는 거예요. 소설에서는 한 장면에서 한 사람 이상의 내면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 됩니다. 카페에서 싸울 때는 A 내면에 들어가 있다가, B가 A의 얼굴에 물컵의 물을 끼얹어버리고 카페를 빠져나온 다음에는 B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잘 사용하는 작가들은 이런 방식으로 지나치게 센 힘을 조절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죠. 요즘은 1인칭으로도 이런 시점 변환을 자주 합니다. 특히 서스펜스나 미스터리 소설에서 유용하죠. 챕터마다 초점 인물이 바뀌는, 소위 다중 시점 혹은 혼합 시점이 이런 '자동차 갈아타기'의 좋은 예가 됩니다. 물론 실전에서는 1인칭과 3인칭을 섞을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시점을 불분명하게 할 수도 있으며, 2인칭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죠. 하지만 원칙과 원리를 아는 것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룰을 아는 사람만이' 나중에는 그 룰을 어길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저 | 정영목 역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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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저 | 정영목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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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지혁

2010년 단편소설 「체이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중급 한국어』 『초급 한국어』 『비블리온』 『P의 도시』 『체이서』, 소설집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사자와의 이틀 밤』 등을 썼고 『라이팅 픽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등을 번역했다. 대학에서 글쓰기와 소설 창작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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