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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의 뒷면] '엄살원'의 숨은 주인장 찾기 - 『엄살원』

<월간 채널예스> 202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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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과 아픔과 이야기를 모은 안담 작가를 꼭 한 번은 주인공의 자리에 모시고 소개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2023.07.11)


작년 가을, 자신의 집을 '엄살원'으로 운영하는 안담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슬아 작가가 한 일간지에 쓴 칼럼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여자들」 을 통해서였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손님을 초대해 솜씨 좋게 비건 만찬을 차려주고 이야기를 듣는다.  부엌일하느라 어수선했던 담의 마음은 손님 앞에서 정연해진다. 손님들의 이야기는 웃기고 통탄스럽고 굉장하다. 손님이 머물다 떠난 집에서 담은 긴 인터뷰 원고를 쓴다.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이라는 설명도 그렇고 '엄살'과 '의원'이라는 의외의 조합으로 만든 이름도 그렇고, 어딘가 가상의 공간 같은 인상을 풍기는 곳이지만, 엄살원은 엄연히 실재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안담, 한유리, 곽예인이라는 세 명의 주인과 '여름', '쪼이', '준짱', '장혜영', '무모', '미어캣'이라는 여섯 명의 손님이 나눈 웃기고 통탄스럽고 굉장한 이야기는 내가 그 존재를 알기 한참 전부터 이미 안담 작가가 만든 온라인 공간에 연재되고 있었다. 그곳에 모인 이야기들을 다시 엮어 책으로 내기 위해 그 가을, 엄살원을 찾았다.

오래된 주택가에 교회 십자가를 단 4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1층엔 교회, 4층엔 엄살을 들어주는 엉터리 의원이라니. 그래, 십자가는 교회에도 있지만 의원에도 있지. 입구부터 재밌는 구성이라고 생각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그날 그곳에는 여러 용무로 모두 아홉 명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도 테이블은 넉넉했고 말소리는 차분했다. 안담 작가의 유일한 식구인 얼룩개 '무늬'는 그 정도 규모의 손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잇따라 낯선 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서도 아주 침착하고 여유로웠다.

우리가 모여 앉은 그 거실 겸 부엌, 그러니까 엄살원은 분명 여느 가정집처럼 특별할 것 없는 구조였는데, 그곳을 떠올려보면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른 세계에 들어선 것 같았던 기분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손님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공간도 저절로 쭉쭉 늘어날 것 같은 신비한 장소.

엄살원의 중심에는 안담 작가가 있다. '주인장'이라는 자리에 걸맞게 엄살원이라는 콘셉트를 기획하고 엄살원이라는 장소를 꾸리고 엄살원이라는 크루를 조직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된장국을 끓이고 파스타를 삶고 파이를 굽고 전을 부치며 아주 가끔 100인분의 만두를 빚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집은 '엄살을 들어주고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엄살원)이 되었다가, '내 글의 고유한 무늬를 찾아가는 글방'(무늬글방)이 되었다가, '큰일 난 마감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 한번 들어오면 다 쓰기 전에는 못 나가는 지독한 글쓰기 모임'(마감고지클럽)이 되었다가 '아침에 눈뜨기를 힘들어하거나 영영 눈뜨고 싶지 않아 하는 친구들을 위한 눈뜨기 연습실'(눈뜨기 연습)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다 '그사람들의일'이라는 회사까지 차렸는데, 소개말에 따르면 '프리랜서들이 출근하는 느슨하고 이상한 회사'라고 한다. 최근에는 자신의 미발표 글을 낭독하고 그것에 대해 동료 작가 이끼와 함께 이야기 나누며 청취자들을 자신의 '최초의 독자'로 초대하는 팟캐스트 <최초의 독자>를 오픈했는데, 구성과 회의와 진행과 녹음과 편집 모두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일을 그렇게 아담한 거실 겸 부엌에서 해낼 리 없다는 생각에 나는 자꾸만 내가 가보았던 그 방과 집이 늘어나는 상상을 키우는 것도 같다.



혼자 일어나고 밥 먹고 글 쓰고 일하는 어려움에 꺾이지 않으려 끊임없이 동료를 모으는 사람, 그 활동의 중심에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밥을 차리는 사람, 거기서 쌓은 공부와 대화와 이야기들을 선뜻 대중과 공유하는 사람. 『엄살원』은 주인 세 명에 손님 여섯 명, 다 해서 아홉 명의 대화와 글로 완성된 공동의 결과물이지만, 그 중심에서 엄살원이라는 세계를 최초로 만들고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과 아픔과 이야기를 모은 안담 작가를 꼭 한 번은 주인공의 자리에 모시고 소개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엄살원』은 안담 작가의 첫 책이다.



엄살원
엄살원
안담,한유리,곽예인 공저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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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형희(위고 출판사 편집자)

위고 출판사 편집자.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안 하기로 결정하는 편이라서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고 보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것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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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한 분의 손님을 초대해 비건 만찬을 차려드려요. 그 대신 손님께서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자기 일도 아닌 문제에 자기 일처럼 화를 내는 게 직업인 여섯 명의 사람들. 이들의 떨리는 목소리, 굳센 목소리, 비뚤어진 목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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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은 싸우는 이들의 피와 살이 되고, 정책이 되고, 제도가 되고, 역사가 된다: 함께 밥을 먹어야만 할 수 있는 대화, 함께 밥을 먹어야만 낼 수 있는 힘엄살원의 손님들은 활동가이다. 자기 일도 아닌 문제에 자기 일처럼 화를 내는 게 직업인 사람들. 여성, 장애인, 성노동자, 퀴어, 빈민, 홈리스, 청소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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