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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 아아! 중쇄!

남무성의 『Paint it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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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아내는 손을 잡고 말했다. “유명 작가들은 모두 스킨 스쿠버를 하는 것 같아. 자기도 해야 해. 이 생생한 묘사. 깊이 있는 지식.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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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문학적 입지처럼 흐릿해진 절도일기

 

 

7. 20.


이 글은 핑크플로이드의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수록곡인 「Any Colour you take」를 들으며 쓰고 있다.
 
펜이 잘 안 나온다.
 
마치 나의 문학적 입지처럼 흐릿해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펜으로 종이 위에 직접 쓰는 이유는 이런 허세가 생을 즐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지나치지 않을 정도라면, 허세 있는 인간이 좋다.
 
인간이 기계가 아님을 입증할 무수한 것이 있지만, 그중에 특출한 면모가 바로 허세라 생각한다.
 
스위스 시계가 허세를 부리며 ‘어. 난 오늘 좀 늦게 돌아가겠어. 나처럼 몸값이 비싼 존재는 조금씩 늑장을 부려줘야한다고’ 라는 태도를 취할 순 없다.
값비싼 롤렉스라도 마찬가지.
 
이런 말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허세를 향유하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고 말했지만, 나는 ‘인간은 허세의 동물이다’고 말하고 싶다.
 
방금 벨기에서 사온 독일제 만년필이 사망해버렸다.
흐릿하던 잉크가 아예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하여, 비행기에서 받은 ‘아시아나 볼펜’으로 바꿔 쓰기 시작했는데, 글씨가 엉망이 된다.
허세가 사라지자, 멋도 사라진 것이다.
 
내가 멋을 추구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는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을 들으며, 이 글을 쓰는 것과 유사하다.
 
말하자면 작가가 음악을 들으며, 그 리듬에 손가락을 맡긴 채 음악의 진행속도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지적 유희이자, 지적 허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타자를 치는 게 아니라, 피아노를 연주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듣고 있는 곡을 연주하는 밴드와 협연하는 기분마저 든다.
 
일상에서 범하는 사소한 허세가 일상을 조금이나마 풍족하게 만드는 것이다.
남무성의 『Paint it Rock』 2권을 읽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언제 2권이 나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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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Paint it Rock』 1권은 밴드를 막 시작한 무렵, 감명 깊게 읽었다.
 
록밴드의 역사를 만화로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한 탓에, 나 같은 무지렁이도 록의 계보를 이해할 수 있었다.
 
30대에 접어들고서야 이 책을 접했지만, 아마 20대에 접했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물론, 20대에 이 책이 나오진 않았다. 이런 유의 책을 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10대에 접했더라면, 록에 깃든 저항정신에 매료되어 말끝마다 ‘록앤롤!’을 붙이는 록 키드가 됐을지 모른다.

“우리에게 두발 자율화를! 록앤롤!”
“영혼을 속박하는 교복 따윈 입을 수 없습니다! 록앤롤!”
“아, 선생님. 때린 데 또 때리지 마세요. 아아. 피스!”
 
Deep Purple의 「Fireball」을 수차례 들었다.
몸 안의 록의 불덩이가 계속 굴러다니는 것 같다. 
 


7. 23.


은희경의 『중국식 룰렛』에 실린 표제작을 읽었다.
 
‘중국식 룰렛’을 읽고 나서야, 며칠간 붙어 있었던 록의 화구(火球)를 가까스로 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랑받는 작가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알 수만 있다면, 훔치고 싶다.
 
그간 잠자던 절도 본능이 꿈틀거린다.
 


7. 24.


성공작들의 유전자를 어떻게 내 작품에 이식시킬 수 있을까?
 


7. 25. 

 

인기작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7.26. 


나도 책을 팔아보고 싶다! 
 

7.28.

 

아아, 중쇄를 찍어본 적이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7.29.

 

오해는 마시길. 그렇다고 해서 초판은 좀 팔린다는 말은 아니니까. 
 


7.30.

카페에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고 있던 아내가 책을 덮고 말했다. 
 

“성공작들의 비결을 알았어!”
그게 무어란 말인가.
도대체 그런 게 있단 말인가.
나는 서둘러 물었다.
“뭔데?!”
 
아내는 내 눈을 보고 말했다.
“스킨 스쿠버! 스킨 스쿠버야.”
“응? 스킨 스쿠버?”
“그렇다니까. 『7년의 밤』에도 스킨 스쿠버가 나왔는데,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도 스킨 스쿠버가 나와!”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아내는 손을 잡고 말했다.
“유명 작가들은 모두 스킨 스쿠버를 하는 것 같아. 자기도 해야 해. 이 생생한 묘사. 깊이 있는 지식.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거야.”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아니야?”
아내는 정색하고 답했다.
“무슨 소리야. 출판 시장은 여름이 대목이고, 여름에 읽을 때엔 독자들이 흔히 경험하지 못하는 스킨 스쿠버가 들어가야 제맛이라고!”
 
그러나 내가 스킨 스쿠버를 하기엔 너무나 많은 난관이 있었다. 일단, 나는 수영조차 제대로 못 했다. 하여, 중쇄를 찍겠다는 일념으로 마포 평생 학습관에서 8만 원짜리 초보 수영 강습부터 신청했다(고무판을 잡고 발버둥 치는 클래스다). 이제 나는 일주일에 3일 수영을 하러 가야 한다.

혹시 삼각팬티를 입고 허우적거리는 나를 독자가 알아보지나 않을까 불안해하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그럼, 다음 여름엔 하와이로 스킨 스쿠버 하러 가는 거야?”
 
유명 작가가 되기 위한 길이 너무 멀다. 
 
게다가, 아내는 내게 독특한 경험을 해야 한다며 브라질리언 왁싱과 눈썹 문신도 해보라고 했다. 음모를 깨끗하게 밀고, 그 사라진 음모만큼이나 진하게 눈썹에 문신을 하는 게 도대체 문학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한낱 무명작가인 나로선 이해하기 벅차다.
역시 나는 중쇄를 찍을 수 없단 말인가. 아아! 중쇄! 
 
허세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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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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