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나그네라도 길 위에서 잠시 쉬어가야 한다 <에브리띵 윌 비 파인>

우리의 인생과 삶, 그리고 그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사고처럼 다가온 사건이 인생을 흔들어 놓아도, 길을 이탈하는 법 없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지, 내 인생을 뒤틀어 버린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없고 항상 결정은 해야 한다.

당신의 2015년은 어땠는가? 길이 사라진 곳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는가? 노련하고 현명한 인생의 가이드가 있다면, 끝도 길도 모르는 막연한 이 여행을 유연하게 이끌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는가? 하지만 여전히 막연하고 길이 없는 것 같은 인생의 여정 위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고처럼 다가온 사건이 인생을 흔들어 놓아도, 길을 이탈하는 법 없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지, 내 인생을 뒤틀어 버린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없고 항상 결정은 해야 한다. 빔 벤더스의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그런 우리의 인생과 삶, 그리고 그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2015년의 마지막 날 개봉하는 상징이 그 안에 담겨 있기도 하다. 이는 이 영화 속에 2015년을 마무리하면서, 혹은 2016년을 시작하면서 함께 생각해볼 거리가 아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movie_image.jpg

 

빔 벤더스의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이전의 영화와 확연히 다르지만, 인생이라는 길 위를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일종의 ‘로드 무비’라 할 수 있다. 단지 이전의 영화들이 길 위를 부유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되짚는 영화였다면 이번 영화는 인생이라는 큰 길 위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조금 더 넓어졌다. 영화의 시작은 눈밭이다. 하얀 눈밭 아래 길이 사라졌다. 길을 되짚는 것은 오롯이 사람들의 기억이다. 기억으로 되짚어 간 길 위에 인생을 뒤덮어버리는 ‘우연’이 도사린다. 어떤 것도 계획되지 않았지만, 비극은 돌부리처럼 걸어가던 길 위에서 불쑥 솟아 누군가를 넘어뜨리고야 만다. 빔 벤더스는 그렇게 안온한 일상 속에 똬리 틀고 있다 불쑥 덤벼들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리는 ‘사건’을 배치한다.  주인공은 주술처럼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이라고 되뇐다. 알다시피 우리 인생은 괜찮다는 말 한 마디로 괜찮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어 바닥을 기더라도, 사실 진짜 죽지는 않는 것이 또 인생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극중 토마스(제임스 프랑코)는 호숫가에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아내 사라(레이첼 맥아담스)와 따로 떨어져 지낸다. 눈보라 치는 어느 날 사라를 만나러 가는 길에 토마스는 눈길에 갑자기 뛰어든 작은 소년을 자동차로 친다. 사고의 죄책감에 폐인처럼 지내던 그는 사라와도 결별한다. 하지만 비극적 경험을 녹여낸 책으로 작가로서는 계속 성공 가도를 달린다. 10년 뒤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죽은 소년의 형인 크리스토퍼가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쓴 것이다. 애써 덤덤한 체 살아오던 토마스는 흔들린다. 토마스의 사고는 크리스토퍼와 그의 엄마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크리스토퍼는 다시 토마스의 삶을 흔들어 놓을 것인가?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빔 벤더스가 무려 7년 만에 연출한 극영화이다. 빔 벤더스의 세계는 70세를 넘기며 개인의 삶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던 이전과 달리 조금 더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로 넓어졌다. 이 점이 혹자에게는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조금 쉽게 관객들과 만나는 지점을 찾았다. 조금 더 낮은 시선에서 빔 벤더스 감독은 비극적 사고를 겪은 후 충격과 상처를 극복해 가는 사람들의 삶을 잔잔하고 관조적으로 바라본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세 인물은 토마스(제임스 프랑코>, 사라(레이첼 맥아담스), 그리고 케이트(샬롯 갱스부르)이다. 이들은 각각 죄책감, 위로, 상실과 극복이라는 상징을 맡아 인간의 삶과 그 궤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삶 위에서 부유하지만, 또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속한 곳에서 길을 걸어야만 하는 토마스는 인생의 나그네일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한다. 그는 적당히 속물이고, 평범하게 비겁하고, 일반적으로 우유부단하고, 견딜 수 있을 만큼 무책임한 사람이다.

 

movie_image (1).jpg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10년이라는 시간을 점프하면서 ‘하나의 사건’에 얽힌 여러 사람들의 삶과 어쩔 수 없이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버린 관계를 쫓는다. 잔잔하지만 영화는 줄곧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기대하게 만드는 충돌과 사건의 가능성을 영화 전체에 관통시키면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한다. 빔 벤더스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다소 난해하다고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선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두어도 된다. 어려운 상징과 은유 대신, 삶의 궤적을 무난한 시선에서 이해 가능한 속도로 그려낸다. 이에 잔잔하고 넓은 이 작품이 빔 벤더스의 범작이라며 아쉬움을 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건’과 맞닿아 있는 소년 크리스토퍼와 토마스의 충돌과 만남, 그리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 뜬금없고 시시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서로 모른 체 하면서 10년을 지내온 두 남자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방법은 의외로 그렇게 간단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충돌과 만남은 10년이라는 세월이 죄의식이라는 두통에 시달려온 그들에게 준 처방이기도 하다.

 

우연한 사고 이외에 딱히 극적인 장치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는 세계적인 배우들이 촘촘하게 메운다. 죄의식에 시달리지만 작가로서 멀쩡한 삶을 이어가는 토마스는 제임스 프랑코를 만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덧입었다.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지 않지만, 레이첼 맥아담스는 토마스의 상처를 묵묵히 안아준다. 레이첼이 가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캐릭터에 씌워져 기운 없는 영화에 활력을 안겨준다. 프랑스 배우 샬롯 갱스부르는 <안티크라이스트>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님포매니악> 등 세계적인 문제작에 출연하면서 퇴폐와 관능을 넘어선 허무와 고독, 상실을 온 몸으로 연기하는 독보적인 여배우가 되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아이를 잃고 상실감에 시달리는 엄마이지만, 또 오롯이 그것을 극복해 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임스 프랑코를 만나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덧입었지만, 여전히 토마스의 태도에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길이 사라진 곳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 나그네라는 가정을 해본다면, 어떤 것도 뚜렷하게 결정하지도 돌이킬 수도 없는 우유부단한 토마스가 어쩌면 연약하기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 모습에 가까운 것 같다. ‘모든 것이 괜찮을 거야’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죄 많은 나그네라도 길 위에서 잠시나마 쉬어가라는 주술 같은 소망인지도 모른다.

 

 

 

[추천기사]


-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여행 <와일드>
- 청산되지 않은 역사 체증의 소화제 <암살>
- 피의 열등감, 그 비극의 대물림 <사도>

- <응답하라, 1988> 청춘들의 데뷔작
- 찢어진 마음을 깁는 슬픔과 눈물의 가치 <인사이드 아웃>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