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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열등감, 그 비극의 대물림 <사도>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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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에게 학문은 그렇게 자신을 지금의 왕으로 살게 해준 생존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들에게 강조하는 상황은 현재,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 이뤄내길 바라는 부모들의 욕심과 그 교육열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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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주어진 역할이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부드럽고 인자한 포용력을 가진 사람으로 사회적 담론이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이야기의 중심에 두기 어려운 마이너 정서에 다름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거나 등을 돌린 체. 가족이라는 이름에 길게 그늘로 남은 존재였다. 딱히 있어야 할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막상 터지면 골치 아픈 맹장처럼 그들은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버지를 소환해 내어 낭만적 회고담으로 천만 관객을 넘은 <국제시장>의 아버지 역시 현실로 끌어냈지만 동정하기 어렵고 아련한 희생의 아이콘 정도로 그려질 뿐이었다. 하정우의 <허삼관>은 소동 끝에 아버지가 되어보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조금은 더 땅에 가깝고 친숙한 이야기로 다가왔지만 그 정서 역시 주류는 아니었다.

 

그 가운데 2015년 이준익 감독이 <사도>를 통해 다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케케묵어 군내 나는 화두 같지만, 여전히 단단한 구심점이 되어 끝내 현재로 되돌아오고야 마는 그 질긴 관계를 중심에 심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일반 사람들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내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여준 이준익 감독은 역시 <사도>를 통해 왕과 세손이라는 왕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속에 여전히 현재화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애증과 반목, 그리고 끝내 서로에게 전달되기 어려운 진심을 녹여내며 보편적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데일만큼 뜨겁진 않지만 묵직하게 가라앉는 화두는 닻이 되어 마음을 계속 수면 아래로 가라앉힌다.  

 

알려진 것처럼 영조는 적자가 아니면 멸시를 받던 조선시대에 천민 출신의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영조는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왕이 되었지만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영조를 끝내 괴롭히는 근원적 콤플렉스다. 이준익 감독은 오랜 정통비극의 시작이라 할 피의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운명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조선 왕조에 대입한다. <사도>는 자신의 열등감을 자식이 극복해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욕심과 그 욕심이 자아내는 강압에 숨이 막혀 버린 아들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여다본다. 영조(송강호)가 늦게 얻은 귀한 아들 이선(유아인)은 어릴 때부터 총명함을 보여 영조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그는 자신의 아들만은 자신처럼 천대받을 일 없이 정통한 왕으로 올곧게 자라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선은 타고난 용이 아니었다. 이선은 공부보다 무술과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했다. 공부를 통해 정통성을 계승하고 어엿한 왕이 되길 바라는 영조에게 아들의 그런 태도는 끝내 못마땅한 일이다. 영조는 이선에게 “너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니?”라고 꾸짖는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퉁박에 가까운 잔소리는 <사도>의 중간 중간에 왕실의 언어가 아닌 현대적 언어로 툭툭 던져진다. 정통한 왕이 되기 위해 영조는 끊임없이 학문으로 자신을 연마했다.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외에 다른 삶을 향한 출구가 없었을 것이다. 영조에게 학문은 그렇게 자신을 지금의 왕으로 살게 해준 생존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들에게 강조하는 상황은 현재,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 이뤄내길 바라는 부모들의 욕심과 그 교육열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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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갈등은 대리청정을 하며 정점에 이른다. 이선은 15세부터 대리청정을 시작해 14년 동안이나 그 같은 일을 겪는다.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영조와 아들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영화에서는 한명으로 묘사되지만, 옷을 입혀주는 신하 등 이선이 죽인 사람의 수가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선과 영조, 아들과 아버지의 비극은 이들이 결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위치에 있기에 더 골 깊은 비극이 된다.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왕이 되지 못하면 자신도 아들도, 대대손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 조선왕조의 역사였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통해 왕족의 비극을 그려내지만 실제로 알려진 것보다 이선의 광기를 많이 순화시켜 보여준다. 강제된 선택지 속에서 숨이 막혀버리는 청춘의 모습을 보다 설득력 있고, 동정할만한 인물로 그려내기 위한 장치라 생각된다.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가 합쳐진 사도세자의 모습은 여전히 강압에 시달려 숨 쉴 구멍 하나 찾기 어려운 젊은이들의 모습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왜 그랬는지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을 현재에 끌어들여 <사도>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8일간의 일정 속에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 사도세자와 추후 정조가 될 세손 사이의 관계를 되짚어 나간다. 청년부터 노인까지 흔들림 없는 연기로 극의 중심을 탄탄하게 잡아주는 영조 역의 송강호와 <베테랑>과 더불어 쌍끌이 천만 영화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유아인은 팽팽하게 맞서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추석 시즌을 노리는 팩션 사극들이 해학과 풍자, 가벼운 농담 사이에 비극을 녹여내는 유사한 패턴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이준익 감독은 한 인간의 비극이라는 이야기의 무게를 꽉 틀어쥐고, 해학적인 요소를 최대한 걷어낸다. 그럼에도 이준익 감독 특유의 경쾌한 분위기 덕분에 긴 상영시간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지만 여전히 이준익 감독은 여성 캐릭터 자체에 그다지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특히 문근영이 맡은 혜경궁 홍씨는 역사적으로 자식을 살리기 위해 사도세자의 죽음에 동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화 속에서 이준익 감독은 문근영이라는 배우를 알차게 활용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누군가의 어미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희생자 혹은 앞잡이 역할을 해내었던 중전과 후궁들의 캐릭터도 평면적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암투 사이에 어머니는 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도 세밀히 들여다보았다면 <사도>는 더 비극적이고 더 가정사에 집중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도>에서는 소지섭이 맡아 에필로그를 장식했던 정조의 이야기는 2014년 이재규 감독의 <역린>에서 그려진다. 영화 속 정조는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와 함께 권력의 암투 속에서 언제 암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체력을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한다. 영조의 열등감이 불러온 아비의 비극은 여전히 그 아들에게 그림자처럼 혹은 강력한 빛처럼 투영된다. 그렇게 피의 비극은 대를 이어 순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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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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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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