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마감을 했다!

창작과 임신의 공통점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막상 글을 쓰고 나면 그 외의 모든 ‘나머지’ ‘기타’적인 시간들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골 지점에 도착해서도 아직 흥분이 체 가시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산후조증’일까?

예전에 한 칼럼에서, 책을 쓰는 일련의 과정 중 내가 가장 즐거울 때는 첫째, 얼개를 잡고 초고를 내키는 대로 써나갈 때, 둘째는 교정지 상태로 처음 원고를 볼 때, 마지막으로는 책 제목을 고민할 때다, 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나는 지금 후자 두 개의 즐거움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얼마 전, 초고를 쓴 지 9개월만에 새 소설을 탈고, 즉 끝냈기 때문이다. 형언하기 힘든 그 속 시원하면서도 허탈한 체감은 아기를 낳았을 때의 그것과 어찌나 흡사한지. 그러고 보니 9개월이라는 시간도 한 아이를 임신해서 낳기까지의 기간이다. 

 

수 차례 보고 또 보며 수정을 거듭해온 소설 원고를 마감날짜에 맞추어 드디어 담당편집자에게 이메일로 보내니 그녀는 ‘정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젠 한시름 놓으세요’라고 답신을 보내왔다. 마치 ‘아이 낳느라 정말 수고했다, 이젠 몸조리에만 신경 써라’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사실 소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교정지로 받아서 마무리 수정을 하기까지의 한달 남짓한 시간은, 마치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이직하면서 가지는 틈새 휴가처럼, 인생에서 주어지는 가장 달콤한 ‘방학’ 중 하나다. 어떻게든 글은 쓰여졌고, 중간에 여러 불안한 과정도 거쳤지만 이젠 무사히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들어질 날을 기다릴 수 있다. 해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아직은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져 독자들의 손으로 넘어간 상태가 아니기에 아직까지는 나(와 편집자)만이 애틋하게 보듬을 수도 있다. 어쨌든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반짝 주어지는 선물 같은 시간인 것이다.   


ed_IMG_2153.jpg

9개월간 함께 고생해준 나의 친애하는 노트북, 맥북에어 

 

힘들게 수정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마감하고 나면’ 하고 싶은 것들,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여유가 없어서 보지 못했던 영화나 전시를 보러 가거나, 쌓아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거나, 챙기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격렬하게 쉬고 싶다고 갈망해왔다. 그런데 실제로 마감하고 나면? 그 강렬했던 욕구들은 어느새   시들시들해져 있다. 김연수의 산문 『소설가의 일』에서 ‘소설가는 소설 쓰는 일 외에 애시당초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시간관리를 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같은 선상에서 막상 글을 쓰고 나면 그 외의 모든 ‘나머지’ ‘기타’적인 시간들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골 지점에 도착해서도 아직 흥분이 체 가시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산후조증’일까?

 

그래서 지금의 나는 마라톤 완주 후에도 호흡을 고르기 위해 또박또박 걷듯이, 아직도 마음 놓고 놀지 못하고 매일 아침이면 카페에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나가, 이것저것 끄적거리고 있다. 그것은 다음에 쓸 산문일 수도 있고 곧 만들어질 소설의 책 제목 후보 안이나 홍보카피이기도 하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글 쓸 때는 그리도 외로워하면서도 어느덧 그 외로움에 익숙해져 심지어 고독을 즐기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면서 한창 소설 원고를 수정하던 시기를 아스라히 그리워하게 된다. 반면 그 안에서 힘들었던 부분 ? 초고수정을 하며 자학했을 때, 연이어 수정하면서 체할 때, 편집자들의 뼈아픈 중간리뷰를 받을 때 ? 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언제 원고지 600매를 채웠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마치 아이를 낳고 나면 임산부였던 시절을 추억하면서도 그 중 고생한 부분은 선택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아 또 다시 임신할 수 있는 것처럼. 

 

올 초, 지난 번의 책을 출간하자마자 이번 소설의 작업에 바로 들어간 나를 보며 친구인 가수 요조는 ‘예술가는 느긋하게 좀 놀 줄 알아야 한다’고 가장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예술가적인 성향도 별로 없거니와 타고나길 급하고 느긋하지 못한 성격을 결국 여태 어떻게 하지도 못했다. 이러면서 다시 원고작업에 들어가면 또 마감일만 목 빼고 기다리겠지. 

 

 

[관련 기사]

- 임경선 “사랑은 관대하게 일은 성실하게” 〈Across the universe〉
- 완전한 개인의 탄생을 환영하며 : 임경선 ‘나라는 여자’
- 좋은 편집자란
- 밥벌이의 덫
- 읽을 책이 없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임경선 (소설가)

『태도에 관하여』,『나의 남자』 저자

소설가의 일

<김연수> 저11,700원(10% + 5%)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김연수의 신작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페르난두 페소아의 말이 떠오른다. “산문은 모든 예술을 포괄한다. 한편으로 단어는 그 안에 온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고, 다..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